눈에 밟히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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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밟히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이정화
  • 승인 2025.02.0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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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이 영화는 제작과 주연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매력에 이끌려 영화에 대한 줄거리도 정보도 없이 보게 되었다. 킬리언 머피는 얼마 전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서 연기력을 증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작가’로 불리는 클레이 키건의 대표작이자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책은 영화를 본 후 단숨에 읽어버렸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에 살고 있는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상을 하며 아내, 그리고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이 그곳에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내리게 되는 ‘선택’ 에 대한 이야기다.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엄청난 진실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은폐하고 살아가는 이들과,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주인공 빌 펄롱의 고뇌와 갈등을 보여준다.

종교라는 이름의 만행

이 영화 속 수녀원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말,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와 묵인 아래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소위 ‘막달레나 세탁소’가 배경이다. ‘막달레나 세탁소’ 스캔들은 1922년 가톨릭 수녀회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이야기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시설인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숙박업소, 공공기관, 군 관련 시설 등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처리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매춘부, 미혼모, 심지어 성폭행 피해자 또는 고아 소녀들이었다고 한다.

수녀들은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강제 수용된 그녀들에게 무보수, 무휴일의 강제노동은 물론 폭행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이뤄지며 인권을 유린했다고 한다. 종교단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만행이 1996년까지 무려 ‘74년’ 동안 자행된 사건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영화 속에 그런 충격적인 배경이 숨어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단어도 처음 들었다. ‘막달레나 세탁소’ 스캔들이 왠지 중세 시대의 ‘마녀화형’ 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사실 영화와 소설 속 어디에서도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수녀원의 석탄 창고에 갔던 빌 펄롱이 그곳에 갇혀 있는 10대 소녀 세라를 발견한다. 그녀는 출산을 5개월 남긴 미혼모였다. 원장 수녀는 빌 앞에서 세라에게 거짓말을 강요한다. 또한 빌에게는 아내인 아일린에게 주라며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 속에 거금의 돈을 넣어,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빌은 자신도 미혼모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엄마와 자신을 기꺼이 거둬준 윌슨 부인의 환대를 떠올리면서 세라의 처지가 더 참을 수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내 아일린은 “사고를 치는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고 칼같이 선을 긋고, 이 말을 들은 빌은 “당신은 이상하지도 않은 거냐” 며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빌이 자주 가는 술집의 여주인도 수녀원에서 소동이 있었느냐고 물으면서 “그곳과 부딪쳐선 안 돼” “그것이 알려지면 당신 주변이 당신을 손가락질하고 척지게 될 거야“ 라고 조언한다.

선택-미움받을 용기

하지만 크리스마스 새벽, 빌은 그들이 말한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남은 석탄을 수녀원에 배달하러 갔을 때 또다시 창고에 갇혀 ”지금이 낮인가요, 밤인가요“를 묻는 세라를 만난다. 빌은 대체 며칠 동안이나 창고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는 세라를 부축해서 그길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빌은 고개를 숙이거나 댓구하지 않는다. 빌은 자기 집 현관문 앞에 불안에 떨며 서 있는 세라에게 ‘손’을 내민다. 빌이 가족들이 있는 밝고 따뜻한 거실로 세라와 함께 들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사소한 것들이 보이는 삶

빌은 선천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오지랖이 넓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추위에 떠는 사람,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우체국 앞에 줄을 서는 여자들, 사제관 뒤쪽에서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훔쳐 마시는 어린아이를 볼 때 그는 심란하다. 하지만 빌은 왜 자기가 그렇게 우울하고 심란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결심했다. ‘혹독한 시기지만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 하겠다고. 이 학교도 그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 빌의 아내 아일린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르는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라고 한다. 하지만 빌의 눈에는 계속 사소한 것들이 보이고 들린다.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수녀원에 갇힌 아이들의 비명소리, 수녀원 바닥을 쉴새없이 걸레질하는 어린아이들의 작은 손이. 빌 펄롱은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왜 자기가 그렇게 우울하고 심란했는지. 왜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가족만의 안위를 위해서 살 수 없는지. 왜 자기는 수녀원에 갇힌 아이들이 강까지만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그렇게 괴로웠는지. 그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외면하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들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의 삶은 고달프고 피곤하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세심함이, 그 연민이, 그 환대가 누군가의 삶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것 아닐까! 빌은 세심함과 연민과 환대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가 클레어 키건은 “펄롱의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않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세상에서, 남들은 사소한 것들이라며 외면하는 약하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것에 관심갖는 것. 주인공 빌 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이 악한 세상을 구원하는 손길이 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빛을 발하는 킬리언 머피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 연기는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고독을 가득 담고 있는 눈, 절제된 대사, 그리고 고통을 표현하는 호흡과 몸짓. 이제 그는 연기자 킬리언이 아닌 빌 펄롱 자신이었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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