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어두운 부엌에 남아 그녀의 흰 뒷모습을 삼킨 방문을 바라보았다.”
새해 들어 한동안 한강의 소설을 내리 찾아 읽었습니다. 탄핵정국과 미루어둔 일거리를 마무리하고,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한강의 소설은 늘 어둠 속에서 흰빛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채식주의자>(창비, 2007)에서 화자는 ‘어둠’ 속에 앉아 아내의 ‘흰’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한 번도 이야기의 배경이 ‘광주’란 도시와 ‘제주’라는 섬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 광주와 1947~1954년의 제주는 우리 역사와 심혼 한가운데 자리한 상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상처투성이인 채로 광주와 제주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눈처럼, 안개처럼 또렷하지 않지만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가만히 만져주는 흰빛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한강은 수시로 때때로 폭력으로 얼룩진 끔찍한 얼굴을 가진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면서 질문합니다.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
한강의 소설에는 영웅적 서사가 없습니다. 모두가 평범하게 보이고 자발한 일상에서 소박한 행복을 희망하던 이들이 불시에 뜻하지 않게, 사실상 억울하게 불운을 겪고, 좌절하고 살해당합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은 “난 한 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 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강의 소설은 ‘몸’에 대해 말하면서 영혼의 안부를 살피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참혹한 몸으로 아름다운 영원을 만졌던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말입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고 캄캄했던 어느날에,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가로수 밑동에 손을 짚은 적이 있다. 축축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차가운 불처럼, 수없는 금을 그으며 갈라졌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만났다는 것을, 이제 손를 떼고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한강은 아픔을 떠나지 않고 응시하는 눈길을 지녔습니다. 그 안에서 아픔과 아픈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의 언어가 제 몸을 통과해서 흰빛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라는 시집에 담아놓은 한강의 ‘회복기의 노래’를 읽어봅니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빛이 지나갈 때가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새해 처음 맞는 월례미사에서는 한강 작가와 한강의 소설을 읽으면서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참혹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고통 안에서 빛나는 구원에 관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한강의 노래를 듣고, 소설을 읽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녀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물빛같은 언어를 만나 봅시다.
1. 일시: 1월 25일(토) 오후 2시30분
2. 장소: 성분도 은혜의 뜰 (02-318-2425)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한강대로104길 45-3)
3. 프로그램:
1부 2시20분 한강 노벨상 수상 기념미사
주례: 김상식 신부 (예수성심전교수도회)
2부 4시 강의: “한강 소설과 신비주의-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강사: 한상봉(가톨릭일꾼 편집장)
4. 참가비: 2만원
간단한 다과를 제공합니다.
농협 352-1189 4554-13 (예금주: 한상봉-가톨릭일꾼)
4. 문의: 031-941-2736
5. 참가신청: 아래 주소 클릭하시고 신청하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8JGx4eFS96mFtlYCUxP6fmPgu5x6bWpfQrwDMk58q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