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출판물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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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출판물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 김선주
  • 승인 2024.10.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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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어릴 때 다니던 고향 교회 목사님은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쿵쾅거리며 뛰어다는 걸 불경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예배당 안에서 몸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걸 통제했습니다. 끼가 많은 몇 명의 애들은 그것 때문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떠들고 쿵쾅거리고 몸을 흔들거나 까부는 건 살아있는 생명이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에너지로 충만한 아이들에게 노인의 행동을 요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춤추고 싶을 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나는 몸치라서 춤추는 데는 젬병입니다. 하지만 떠드는 데는 흥이 있습니다. 그 떠드는 게 글쓰기로 변주되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매우 시끄러운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말하면서 논리가 생기고 글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떠드는 것으로 춤을 춥니다. 내가 낸 첫 번째 책이 시집이었는데, 그것을 첫시집이자 4유고시집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첫시집 이후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줄글을 써서 책을 냈는데 원고를 기독교 출판사에 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드는 걸 싫어하는 교회에 밉보이면 책이 안 팔리기 때문에 기독교 출판사들이 책을 내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내 책을 내기로 했던 출판사의 경영진이 바뀌면서 출판이 거부됐습니다. 요즘같은 출판의 불황 시대에 책을 내자고 출판사에 원고를 들이미는 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잘 압니다. 그래도 원고를 버리기는 아까워서 고민하다 기독교 출판사 한두 곳에 출판을 의뢰했습니다.

김미옥 선생의 <미오기傳>을 읽으면서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글로 쓴 이야기는 텍스트와 메시지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문체를 통해서도 독자에게 기쁨을 주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출판시장은 매우 협소하고 연성화(軟性化)되어 있어 탄력 있고 질감 좋은 문체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개의 상업적인 교회 언어 안에서만 사유하는 풍토 때문에 독자가 제한되어 있고 기독교적 담론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일반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기독교 출판사 한 곳에 출판 의뢰를 했는데, 거부된 것입니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팔리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라는 걸 압니다. 나름 감성과 교양을 갖추어 쓴 글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출판사 여직원(대표?)의 태도가 교양도 없고 양식도 없었습니다. 원고를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교양 없는 출판인에게 이렇게 내 말이 거부당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기독교인이 쓴 책도 일반 시민의 교양과 지성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자층이 교회 사람으로 한정되면 그것은 우리만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나는 타종교의 경전과 책들을 읽는 편인데, 요즘 불교의 책들을 보면 버라이어티합니다. 불교철학과 양자역학을 엮어서 논하고 공사상(空思想)과 입자물리학을 연결시켜 불교 담론을 확장시킵니다. 예술과 우주의 신비를 연결시킵니다. 그런데 기독교 출판계는 교회 언어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출판이 거부당한 뒤로 기독교 출판은 역시, 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생각을 더욱 하게 됩니다.

그래, 춤을 추고 싶을 땐 밖으로 나가야지.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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