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 수녀회 백주년 기념미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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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 수녀회 백주년 기념미사를 다녀와서
  • 이정화
  • 승인 2024.10.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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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칼럼
사진=이정화
사진=이정화

가을비라고 하기엔 많은 양의 비가 오는 오후에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리는 ‘메리놀 수녀회 백주년 기념미사’에 다녀왔다. 나를 초대해 주신 분은 강남순 교수와 함께하는 ‘사유하는 아카데미 이론그룹’ 멤버로 인연을 맺은 성미영 수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분이 수녀임을 알지 못했다. 이유는 그분이 여느 수녀처럼 베일과 수녀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메리놀 수녀회 수녀였다. 메리놀 수녀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미국에 본원이 있고 카리스마가 의료서비스라서 메리놀 병원을 운영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기념미사를 통해서 메리놀 수녀회의 역사와 비전, 특히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파견되어서 얼마나 커다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고 거두었는지 알게 되었다.

메리놀 수녀회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여섯 명의 선교 수녀들이 평북 의주에 들어왔다. 그들은 일제 강점의 고통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었다. 빈민 구제, 학교 설립, 의료서비스 사목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였다. 특히 여성을 위한 기술교육을 비롯하여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 사목에 관심을 기울였다. 백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열 번 이상 변할만한 세월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메리놀 수녀들이 한 일들은 이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고 놀랍기만 하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늘 가난한 이들, 학대받는 이들, 노동자들, 여성들, 한센병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머물고 그들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했다.

 

메리놀 수녀회는 국내 방인 수도공동체를 설립하는데 도움을 주라고 초대받아서 1932년 평양 교구에 첫 방인 수도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가 창립되었다. 지금의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한국교회에서 크고 단단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리놀 수녀회의 연대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메리놀 수녀회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돕고, 지금은 그들이 메리놀 수녀들을 돕는다”는 총원장 수녀의 말씀에 박수갈채가 흘러나왔다. 미사 중 제대 앞에 지구본, 메리놀 수녀회 창립자 ‘마더 메리 조셉’ 수녀님 사진, 일기,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초대 원장 ‘장정온’ 수녀님 사진을 봉헌하는 수녀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연대인가!

메리놀 수녀회도 처음에는 베일과 수녀복을 입었다. 그런데 1970년부터 수녀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는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라고 한다. 만약 우리를 초대해 준 성미영 수녀가 수도복을 입고 있었다면 이론그룹 사람들과 지금처럼 자유롭게 만나고 친해질 수 있었을까? 백주년 기념미사라는 이유로 이 빗속을 뚫고 생소하고 낯선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을까? 모르는 성가를 부르고 박수를 치면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같이 밥을 먹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수녀복은 복장 자체로 ‘하느님의 증인’임을 나타내기에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념미사를 위해 미국, 일본에서 온 수녀들의 다양한 옷과 머리모양 때문에 누가 수녀인지 누가 일반인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낯설기도 했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동안 120명이 넘는 메리놀회 수녀들이 활동했는데 이제 한국에는 단 두 명의 수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 한 분이 우리를 초대한 성미영 수녀다. 이제 원장 수녀님이 되어 이 행사를 준비하고 통역도 하고 열 일하느라 살이 엄청 빠졌다고 투덜거린다. 요즘 한국의 모든 본당에서 젊은 수녀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수녀가 되겠다는 지원자가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남자 수도회와 교구 신학생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제 한국은 선교지가 아니라 선교를 나가야 하는 나라가 되었으나 일꾼들이 없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더 이상 신앙에, 아니 교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일까?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타인에게 내어줄 시간과 관심과 희생정신이 메말라서일까? 참다운 선교란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들과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그 모범을 보여준 이들이 메리놀 수녀회다.

메리놀은 이제 100년 전과는 ‘또 다른 100년’을 꿈꾼다고 한다. 앞으로 100년의 비전은 ‘지구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역시 창립자 마더 메리 조셉 수녀의 말씀처럼 “우리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지, 우리가 모든 사람과 모든 창조물과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교종 프란치스코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씀하신 ‘지금 우리의 공동가정인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메리놀 총원장 수녀님은 축하 메시지 마지막에 한국 공동체가 자신들을 받아들여 준 ’환대‘에 감사하고 모든 창조물을 위한 평화와 포용의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한국은 나의 태양'이라면서 다른 수녀님들과 'You are my sunshine'을 합창한다. 낯설고 열악한 환경인 선교지 한국에서 느끼고 경험했을 어려움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넘어 포용과 환대와 감사와 사랑을 말하는 이들은 얼마나 겸손하고 아름다운가!

이론그룹이라는 놀라운 인연이 초대받은 미사를 통해 메리놀 수녀회라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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