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 프란치스코의 완전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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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시 프란치스코의 완전한 기쁨
  • 김건중
  • 승인 2024.10.0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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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중 신부의 단편 묵상
사진출처=assisiproject.com
사진출처=assisiproject.com

현시대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기도와 보속, 그리고 자선을 요구한다. 누구나 나름대로 고통과 시련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삭막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영적인 수련과 단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럴 때 아씨시의 빈자(貧者)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된다. 성인에 관한 전설적인 일화들을 담은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묵상의 꼬투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성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Little Flowers of Saint Francis)>로 알려졌으며 아직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 원래 62장으로 된 이 책은 1270~1340년 사이에 살았던 우고리노라는 형제가 “Actus St, Francisci et Sociorum”이라는 제목으로 라틴어로 된 책에 최초로 수록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은 우리말 책에서 제8장에 수록한 “참된 기쁨(Perfect Joy)”에 관한 일화를 영어본에서 옮겨온 것이다.

가장 성스러운 성덕의 모범이 되어도, 이적과 기적을 행하여도, 현명하고 예언자적인 통찰력을 발휘하며 영혼의 비밀까지 밝힌다 해도, 천지 만물의 조화와 우주의 원리나 인간을 꿰뚫어 보며 천사의 노래를 한다고 해도, 심지어는 모든 인간을 회심으로 이끄는 설교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고 성인은 말한다.

이에 레오 형제가 완전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묻자 성인은 문지기가 사악한 사기꾼이나 강도처럼 몰아붙이고 욕설과 폭력으로 대하는 데도 이를 인내와 겸손으로 참아 받으며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분의 고통을 생각하고 그분 십자가의 은총을 나눌 수 있다면 그때 그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이라고 울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한다.

성인은 혹독한 고통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모든 고통을 참아 받아 사랑의 행위가 될 때 완전한 기쁨에 이르는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은총이니 자랑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하나에 색다른 하나를 추가하는 것도 아니다. 기쁨은 오직 십자가에서 오며 사랑에서 온다. 크나큰 상실 중에도 은총 안에서 차오르는 기쁨이다. 주님과 나만이 알고 세상 그 누가 몰라도 상관없는 기쁨이다.

일화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레오 수사(~1271년)는 아씨시 출신으로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년을 동반했던 고백 신부이자 가장 충실하고도 첫 번째였던 형제로 알려지며, 성인의 사후 성 프란치스코 규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저항했고,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에서 선종하였으며, 오늘날 프란치스코 성인이 묻혀있는 대성당 지하 묘소에 함께 묻혀있다.

***

어느 추운 겨울날 성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와 함께 페루지아에서 포르지운콜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했으므로 추위에 몹시 고생해야만 했다.

어느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레오 형제에게 말했다: “만약 하느님께서 ‘작은 형제들(수도자들)’에게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성덕의 위대한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고 하시고 (설령 그렇게 했다손 치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록해 두십시오.”

좀 더 길을 간 뒤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레오 형제에게 (다시) 말했다. “만약 작은 형제들이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뒤틀린 이를 똑바로 펴며, 악령들을 쫓아낼 수 있고, 눈먼 이를 보게 하며, 말 못 하는 이를 말하게 하며,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이를 살아나게 한다고 해도, 이런 것이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

(그리고) 얼마쯤 있다가 곧 프란치스코 성인이 레오 형제에게 말했다: “만약 작은 형제들이 모든 언어를 말할 수 있고, 모든 학문에 정통하며, 기록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으며, 모든 영혼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해도 이런 것이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고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

몇 걸음을 더 걷다가 프란치스코 성인이 울면서 “레오 형제, 하느님의 작은 자여! 작은 형제들이 천사처럼 노래하고,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으며, 모든 동물이나 새들, 물고기나 식물, 돌이나 나무, 그리고 모든 사람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것이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이 울면서 다시 “레오 형제, 작은 형제들이 설교로 모든 인간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회심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마저도 완전한 기쁨은 아니라는 것을 제발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

이런 식으로 대화가 계속되면서 몇 마일의 길을 계속 걷다가 이러한 말씀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레오 형제가 “프란치스코 사부님, 완전한 기쁨에 관하여 가르쳐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에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포르지운콜라에 도착하고 비에 흠뻑 젖어서 추위에 떨고 진창으로 범벅이 되어 배가 고파 기진맥진하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는데도 현관지기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더러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훔치거나 세상을 속이려는 (거지나) 사기꾼이라고 우리를 취급하면서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를 문밖에 눈비 아래 버려두어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고 불의와 매정한 처사를 아무런 불평도 없이 참아 받을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가 믿음과 사랑, 겸손으로 현관지기가 우리를 알아보면서도 거부한 것이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일러주신 것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사랑하는 나의 레오 형제, 이것이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을 부디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레오 형제, 우리가 다시 문을 두드리고 현관지기가 몽둥이와 욕설로 우리를 내쫓으면서 우리를 강도나 다른 범죄자로 취급하는데도 우리가 이를 인내롭게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그래도 우리가 믿음과 사랑, 겸손으로 현관지기가 우리를 알아보면서도 거부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이르신 것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사랑하는 나의 레오 형제, 이것이 비로소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을 부디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라고 다시 말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 번 더 “우리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 문을 다시 두드리면서 현관지기를 다시 불러대며 눈물로 제발 문 좀 열어주어 하느님 사랑의 피난처를 허락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다면, 그런데 문지기가 더더욱 화를 내며 못된 불량배들이라고 부르면서 몽둥이질을 해대고 우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눈 바탕에 뒹굴면서 얻어맞더라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를 참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님의 고통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레오 형제여, 이것이 바로 비로소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을 부디 주의 깊게 적어놓고 잘 기록해 두십시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했다: “레오 형제, 부디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당신 친구들에게 주시는 모든 은총 중에서 으뜸은 그분을 사랑하여 자신을 극복하면서 모든 경멸, 모든 불편, 모든 상처, 모든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또 다른 은총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므로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라고 다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으로 우리는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멘!”

 

[출처] benjikim.com

김건중 벤자민 신부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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