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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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길
  • 신대원
  • 승인 2024.09.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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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신부의 雜說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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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고 잠 못 들게 하던 열대야도 막바지로 치닫는 것처럼 하더니, 가을빛이 완연하다던 9월의 초입, 저만치서 “풀잎에 흰 이슬 맺힌다.”라는 백로(白露)가 더위에 지쳐 어정거리고 건들거리는 우리를 가을 속으로 “어서 들어오라.”라고 손짓한다. 손짓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나는 시방 내가 똬리 틀고 살던 여기를 뒤로 하고 또 떠나야 한다. 누가 “인생은 나그넷길”이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초등(국민)학교 시절을 빼놓고는 환갑 진갑 다 넘도록 이곳에서 저곳, 저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쉼 없이 정처(定處)도 없이 떠돌아 여기까지 왔는데, 또 때가 되었으니 “떠나라” 한다.

홀연 아브람의 인생길이 이마 위로 떠 올랐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그러자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 12장)라고 <구약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브람의 발끝도 못 따라갈 못난 인생이지만, “떠나라”라고 하니, 떠날 수밖에. 문제는 떠날 때면, 발의 먼지까지 툴툴 털어버리고 미련 없이, 곧 강남으로 떠날 제비네 가족들이 애써 지은 집을 송두리째 놓아두고 떠나듯이 그렇게 떠나야만 하는 것인데, 그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쓰던 물건, 이미 수명을 다해버린 것들에 무슨 미련이 남아 “혹시나”하는 마음에 달팽이가 제집을 등에 지고 다니듯, 그렇게 한 짐을 바리바리 이고 지고 떠날 것을 생각하니, 하마 숨이 턱 막혀 온다.

비록 열대야가 현재진행형이라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이는 것이,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라는 유년 시절에 부르던 노랫가락이 콧노래로 공명(共鳴)한다. 떠난다는 것에는, 이미 이골이 낫다지만, 그래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희비(喜悲)의 쌍곡선이 교차 되기 마련이다. 살던 곳을 떠나는 것도 가서 살아야 할 것도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공자의 말씀도 여기에 한몫 끼어들 수 있을 것이다. “온고(溫故)”란 언제나 옛 형편이 편하고 안락하게 느껴지고, “지신(知新)”이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내려놓을 줄 아는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떠나야 하고, 내려놓을 때가 오면 미련 없이 움켜잡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이 필요한 것은 우리네 인간의 삶, 곧 “인생(人生)”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인생길은 그대로 마지막 정착지를 만날 때까지 끊임없이 걸어가야 할 “여정(旅程)” 곧 “나그넷길”인 셈이다.

시방 사람들은 제법 날씨가 서늘해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해가 뜨면 여전히 한여름의 기운은 맹렬해서 가을을 노래하기에는 약간은 이른 감이 든다. 그래도 오는 가을을 누구인들 막을 수 있겠는가? 맹위를 떨쳐대는 여름도 그 끝이 조금씩 엿보이는 걸 보아서, 우리네 인생도 이 땅에서는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해본다. 유한한 인생 앞에서 잘 나면 얼마나 잘났고, 못나면 또 얼마나 못났겠는가? 모두들 거기가 거기 아니겠는가? 그러니 잘난 사람 잘났다고 교만 떨지 말고, 못난 사람 못났다고 한숨 쉬지 말지어다.

이제 안동 땅에서 살았던 삶을 내려놓고 다른 땅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는 또 얼마나 머물 수 있게 될까? 얼마를 머무르든 그게 무슨 대수겠냐마는, 그저 새롭게 주신 환경이며 삶 앞에 짐짓 고개 숙여 은총이라 여기며 감사드리고 최악이 아닌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살아가는 수밖에. 옛말에 “물고기는 결코 물과 다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따뜻하면 따듯한 대로 잘 어울려 살아가면 그뿐 아니겠는가? 물고기는 자신이 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만도 그저 고맙고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여긴다지. 그리고 산에 있는 나무도 마찬가지로 산과 다투지 않는다니, 어디에 어떻게 살던 그곳에서 날마다 다투지 않는 “중화(中和)의 삶”을 살아갈 줄 아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道理)” 아닐까? 딴엔.

 

신대원 신부
천주교 안동교구 태화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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