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이 아직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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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이 아직도 낯설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8.27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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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세속화 시대, 성직자 권위주의에 대한 유감-5

우리는 미운 사람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반면에 연인들은 서로 말을 섞고 살을 섞고 싶어 안달한다. 하느님 역시 인간에게 말을 섞고 살을 섞고 싶어 하셨다. 그분이 인간에게 섞은 말씀들은 성경으로 남아 있고, 그분이 인간에게 섞은 살은 성체성사 안에서 기념된다. “이는 내 몸이다. 받아먹어라.” 마음이 간절하면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니, 중요한 건 마음이다. 신앙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베네딕토 16세 교종이 선포한 ‘신앙의 해’ 한가운데서 선출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로 여겨진다. 때마침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지낸 직후였으며, 요한 23세 교종이 <지상의 평화>라는 사회회칙을 반포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교종으로 장엄하게 선포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교회헌장>과 <사목헌장>, 사회교리 문헌인 <지상의 평화>는 한결같이 이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시선을 교회 바깥으로,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들과 신음하는 생태계를 위해 투신할 것을 요청해 왔다. 교황청에서 펴낸 <가톨릭교회교리서> 역시 3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회교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이 아직도 낯설다. 견고한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 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안전하다고 여긴다. 이런 태도는 교회 안에서 여성 수도자와 남성 사제들에게 거는 기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여성 수도자들은 본당수녀들처럼 ‘교회의 안 살림’을 맡아서 하는 게 제격이라는 게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견해다. 주교들 역시 수녀들을 바라볼 때마다 딸자식을 바라보듯이, 수녀원 안에서 안전하게 기도만 하라고 부탁한다. 그 자애심을 탓할 수 없겠지만, 수태고지 이후에 나자렛에서 유다 땅까지 당차게 혼자 몸으로 엘리사벳을 찾아갔던 마리아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수도자들을 예수님의 독립적인 제자로 보지 못하고, 늘 남성 사제의 그늘 안에 붙잡아 두었던 교회를 복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성 수도자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처녀이며, 동시에 세상과 인간을 품어 안는 어머니다. 처녀는 순결하고 어머니는 강하다. 처녀는 나자로의 누이 마리아처럼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어머니는 마르타처럼 세상을 위해 헌신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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