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철의 생활하는 시
나팔꽃 담장
-신진철
나팔꽃은
담장을 따라 자라고
담장은
그런 나팔꽃에게 팔 벌립니다
기대고 이끌어주며
자라고 꽃 피우기를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함께 살아갑니다
추운 겨울 나팔꽃은
담장밑에 씨를 숨깁니다
그리고는 추위를 견뎌내며
봄을 기다립니다
오늘 손으로
담당의 덩굴을 뜯어냈습니다
그러자 아파 울어대는 건
나팔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 무게는 별 거 아니라고
충분히 견딜만하니 그만하라며
담장도 같이 울어대는 통에
사내는 난감해졌습니다
결국 뜯다가 말았습니다
나팔꽃은 담장에 다시 손 내밀고
담장은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다시 넝쿨을 잡아 올립니다
놔둬야지 어쩌겠습니까
올 늦가을 담장 손을 봐야하는데
담장도 다 낡아 위태위태한데도
나팔꽃을 다시 등에 업었습니다
긴 장마 가운데 모처럼 맑은 오늘
나팔꽃은 철없이 활짝 웃습니다
힘겹던 담장도 잠깐 시름을 잊고
푸른 하늘을 보며 활짝 웃습니다
신진철
충북 제천 덕산에서 일하며 시 짓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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