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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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4.05.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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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그리스도인들은 회피하는 영성, 핵시대가 창출한 문제와 책임 속에 사는 우리 인간 사회가 갖는 필연적인 의미에 관심을 갖기를 거부하는 또 다른 종류의 세속 숭배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포기하는 동기가 무엇이든 그것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며 그리스도교적 성화에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무관심과 무감각함을 “침잠”이라고 속여서도 안되며 비겁하게 후퇴하는 것을 희생이나 예배의 행위라고 변명해서도 안될 것이다. 수동성을 더 이상 “신앙”이나 “이탈”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절망적인 운명에 놓인 인간에 대한 관심 부족은 비난받아 마땅한 무감각이며 통탄할 만큼 사랑에 무능력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든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그것은 순수하게 인간적이지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교회가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나 리더십을 발휘하기 전에는 일반적인 성격을 띄게 되며 필연적으로 뚜렷하지 못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전세계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의 중대한 주제, 예를 들어 세계 평화와 같은 주제들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적절한 지침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시대에는 실질적인 사회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며 양심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많은 위험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위험부담을 져야 하며, 교황청으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전체 교회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자신은 행동하지 않겠다는 타성이나 의기소침하고 소극적인 “신중함”은 덕이 될 수 없다.

교종 요한 23세께서는 그리스도교적 완전함은 회의주의나 후퇴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야 하다고 명백하게 천명하고 계신다.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문제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분노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마주해야 한다. 교종 요한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자녀들, 특히 평신도들이
세상에 대한 그들의 개인적인 그리스도교적 헌신을
새롭게 하고 증가시키는 대신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오류가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갖는 의무들은 온전하게 유지된다. 정치, 경제, 경영과 산업 분야는 신부나 종교인들이 아닌 평신도들의 분야다. 현시대의 사건들을 다루는 예수회 신부의 방식은 가르멜 수녀의 그것보다 더 진전된 것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의무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요구하면서 요한 23세는 우리가 삶의 방식을 모두 포기하고 정치로 뛰어 들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종교인들도 자신들의 삶을 깊이 성찰해야 하며 대다수 인류가 겪는 가난이라는 문제, 사회적 혼란의 위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면적인 핵전쟁의 위협과 연관짓는 성찰을 요구하고 계신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무관심 할 수 없는데 그것들이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정신적인 병약함의 증세로서 너무나 보편적이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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