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인본주의”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극적이고 자칫 이단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인본주의는 거룩함과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상충되듯, 이 둘 또한 반대되는 개념은 아닌가? 거룩한 것을 받아들이고 인간적인 것은 배척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한 사람의 특징이 아닌가? 이제까지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그리스도적 인본주의자들”은 “세상”과의 위험한 대화를 통해 그릇된 낙천주의에 현혹되어 자신의 신앙을 타협한 사람들은 아닌가?
요한 복음에서 거기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본성을 택하여 사람이 되셨다면 죄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그런 사람, 그분의 신비체 안에서 인류와 하느님을 일치시키려 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비 자체에서 필수적인 진정한 인본주의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인본주의는 격정, 육신, 죄에 떨어지기 쉬운 경향, 왜곡되고 무질서한 자유주의, 불순종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렇게 창조한 이상 우리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린 그런 가치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상태로 보존하고 건지시고 복구하시기를 원하시는 그런 가치들을 우리는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연법, 시민권,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권리, 다양한 문명의 문화적인 가치, 과학적인 연구와 기술, 의술, 사회과학과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선한 것을 수호함으로써 교회는 지극히 그리스도교적인 인본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며, 다른 말로 하면 창조된 존재 그리고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총체성과 완전함을 지니고 하늘나라의 절대적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의 운명을 지닌 인간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