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적으로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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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적으로 먹기
  • 캐롤라인 그리피스
  • 승인 2016.05.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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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에세이

저녁에 초대받으면 사람들은 자주 이런 질문들을 한다. “당신은 채식주의자입니까 혹은 계란도 먹지 않는 골수 채식주의자입니까?” 아니면 “요즈음은 생선, 계란, 우유를 먹습니까?” 나는 이런 이름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하거나 정의, 세계기아, 동물학대, 열대 우림의 파괴와 야생동물의 소멸,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독극물 매립, 인본주의를 대체한 소비주의, 그리고 나의 건강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으며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을 설명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나는 이 간단한 질문들에 답변하려고 꽤 애쓰지만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지난 10여년동안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우유, 계란 등 모든 동물식품을 먹지 않았지만, 사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나의 중요한 원칙은 아니다. 대신 나는 비폭력적으로 먹으려고 애쓴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소비가 생명의 신성함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생명을 파괴시키는가, 나의 선택이 공동체를 양성시키는가 아니면 소외감을 더 조장하는가에 대해서 깨어 있으려고 한다.

특히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내 삶이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들은 세계의 굶주린 이들, 농토에서 일하는 이들, 그리고 무력한 동물들이다. 또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관절염과 만성병으로 7년동안 고생하면서 나는 식사습관이 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게 되었다. 무엇을 먹을까 깊이 생각할 때에 이 모든 관심들과 식품들이 함께 비중을 차지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집 같은 목적을 지닌 공동체들에서 5년을 살았다. 이런 공동체들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초점을 두며 일상 식생활에도 비폭력을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웃들과 함께 살게된다. 이러한 삶은 전문 영양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식사를 까다롭게 채식주의자들처럼 별도로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함께 사는 우리들은 대략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식량을 마련하는 방식, 식품 자체가 갖고 있는 삶의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야채와 토마토를 심고, 온갖 종류의 하루 지난 기증 받은 빵을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으로부터 가져온 커피에 찍어먹는 경험을 자주 한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소비 뒤에 숨겨진 영향들 그리고 지구와 우리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치관의 공유를 통하여 일치한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의 식품 선택이 채식주의자나 탐식가의 기준에 맞는가를 확실하게 정의하는 기준은 없으며, 다만 그런 기준보다 훨씬 더 깊은 공통의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원칙은 비폭력이며, 모든 인류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근거한 범 지구적 생명지향의 윤리이고 창조의 신성함에 대한 존중이다.

이런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나는 단출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이런 식생활의 윤리를 지키려고 애쓰게 되었는가? 정의와 단출한 삶에 대해 아주 조금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서 설명하려고 한다.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까닭은?

10년전 대학에 다닐 때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동 기는 고기를 먹는 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 이해하게 되고 건강 식품에 대해 관심을 막연하게 갖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농장에서 자랐고 일리노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일리노이주의 많은 땅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축을 위한 옥수수와 콩이 대단위로 경작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1파운드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하여 16파운드의 곡물과 콩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음으로써 나는 땅을 더 많이 황폐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후에 나는 우리가 우리의 땅을 다르게 사용하기로 결정한다면, 가축 먹거리 대신 사람들을 위한 먹거리를 심는데 사용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식사가 자원 집약적인 육류 소비로부터 채식으로 바뀐다면 세상의 굶주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먹거리가 마련될 수 있음을 배웠다.

생물 전공학생으로서, 나는 들판에 뿌려지는 살충제가 먹거리 사슬로 올라갈 때에(낟알로부터 소에게로 그리고 인간에게로) 얼마나 그 독성이 더 축적되고 집약되는가를 배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육류와 낙농식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살충제가 축적되고 이것은 채소식품보다 암, 신경계통 질병, 학습장애, 그리고 선천적 결손증을 더 유 발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장 질병과 모든 혈관성 질병은 우리 나라의 높은 육류소비 때문에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포화지방+콜레 스테롤=아테륨성 동맥경화증).

우리는 왜 보건 예산을 예방적 정책과 전세계에 보건 혜택을 마련하는 데에 쓰기보다 미리 막을 수 있는 질병들을 다루는 데에 쓰고 있는가? 그러나, 내가 대부분의 식료품가게들을 채우고 있는 육류와 낙농 제품을 피하려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건강에 관한 이유들은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양계장을 방문하고, 젖소에게 호르몬과 항생제를 주사하며 송아지들은 밀실에 가두고 키우며 대부분의 대단위 농장이 얼마나 오염되며 기계화되고 있는지 등등의 사실들은 끝없이 나열된다. 가까이 있는 도살장이나 양계장을 찾아가 보면 얼마든지 발견되는 혐오스러운 현실이다.

시몬 공동체에서 배운 것:  부랑자와 친구하고 쓰레기 구원하기

이런 사실들을 공부를 통해 배운 후 나는 영국 런던에 있는 노숙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평등 공동체인 시몬 공동체에서 첫번째로 공동체살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식량은 가난, 공동체 그리고 기념이라는 맥락 안에서 새로운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겨울 동안에, 건강에 좋고 다양한 채식 식사를 주어진 예산에 따라 유지한다는 것은 이곳에서 어떻게 버려진 식품들을 이용하는가를 의미했다. 그리고 지역의 시장들은 이런 폐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낙원이었다. 젊었고 활기가 넘쳤던 나에게 폐품을 이용하는 것은 어떤 신기로움과 인류학적인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오후에 상자, 창고, 그리고 파장한 후에 버려지는 식품들을 내 헝겊 가방 속에 가득 채우기 위해 훔치는 일은 즐겁고 또한 교육적인 과제였다. 그렇게 채운 후 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나의 몫으로 가장 맛있는 귤을 먹으며 삶의 불균형에 대해 성찰을 하곤 했다. 폐품을 이용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와 전혀 반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나는 명문 의대에서 공부하는 큰 특권의 위치로부터 잠시 쉬고 있었으며 이제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부랑자들”이고 대부분의 저녁식사는 완전히 “쓰레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주워서 먹는 것은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불확실함과 가난한 사람들의 수치스러운 심정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나는 시장에서 만난, 역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피난민들과 노인들에 게 연민을 금할 수가 없었다.

겸손하게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보물들을 서로 나누었다. 내가 저녁식사를 위해 주워오는 것은 거의 늘상 같아서 보통 볶은 요리나 야채꺼리의 형태였다. 이 선물들을 함께 나누면서 나는 특별한 감사와 기념의 느낌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주 욕심 많은 쓰레기 뒤지기가 되었고, 매립지의 운명으로부터 아름다운 수많은 것들을 구원하였으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착취를 지지하지 않고 거부된 과일들을 먹으며 대농의 파괴스러운 농작을 지지하지 않고 그 맛 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속 가능함, 창의성, 저항 그리고 비폭력을 포용하는 문화와 예배

그런데 시카고의 주택지구에 있는 가톨릭일꾼 공동체인 성 프란치스코의 집에 온 뒤에야 나는 우리들의 식사선택이 문화를 창조하는 일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피터 모린은 새로운 사회를 세우는 일은 예배, 문화 그리고 경작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성 프란치스코의 집에서 우리들은 지속 가능함, 창의성, 저항 그리고 비폭력을 포용하는 고유한 문화로 예배(식)를 창조하였다(이상을 공유하는 그룹). 우리는 이것을 경작, 양식 찾기, 쓰레기 모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을 나눔으로써 성취하였다.

나는 성 프란치스코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공동체의 결속을 창조하고 비폭력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음식이 하고 있는 역할을 누를 수 없다고 믿는다. 마치 어촌이 바다와의 교환과 방파제 위에 그 문화를 발전시키고 언제 어느 곳에서 고기가 잘 잡히고 잘 요리할 수 있는지 그 허풍과 지혜를 나누어 가듯이, 우리들의 공동체도 음식 쓰레기를 수집하고 농작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매일같이 우리가 발견한 가장 큰 것들을 나누고 언제 어디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지혜의 전통을 만들어가며, 쓰레기를 뒤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 되뇌이고, 좋은 흙과 비료를 섞어 농사를 지으며 흥겹게 건강한 음식의 저녁식사와 축제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나는 이곳에서는 음식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공동체에 계속 머물게 한 것은 부분적으로 폐기되는 자연음식들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동체가 다른 이들의 낭비로 살고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음식에 의지하도록 유도하며 그리고 내가 발견하게된 사실은 버려지는 것을 찾는다면 그것이 끝도 없이 공급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과 배제의 결과가 무엇인지 비판적인 의식을 계발시키는 데에 우리 나라의 감옥체제를 직접 방문하고 보는 것이 필수적인 것처럼, 우리의 폐품 창고를 방문 하는 것은 이 소비주의 문화의 끝이 어디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나는 우리의 음식 배분과 포장체제가 궁극적으로 소비되는 것보다 버려지는 것이 더 많도록 확고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결국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 완전히 혐오스럽지만, 이 쓰레기는 저항의 행위와 폐품 모으기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만족감도 주고 있다. 나는 우리 노숙자 친구들을 위해 거의 유기 채소에 가까운 창고의 채소와 직접 짜서 만든 오렌지 쥬스, 후식으로 15달러 짜리 파이 혹은 유기 초콜릿으로 식사를 마련할 수 있어 늘상 행복하다.

비폭력적으로 작물 키우기의 중요성

그러나 더 크고 더 필요한 저항의 행위는 땅에서 신선한 식품을 기르는 농작자들의 노동이다. 땅의 소출은 우리에게 그것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알려준다. 우리의 천연비료가 가득한 땅에서 유기적으로 키우는 일은 최상의 영양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준다. 퇴비를 만들고 씨앗을 심으며 추수하고 잡초 뽑는 일까지 함께 할 때에 모든 농작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육체와 영혼에 양분이 충만하게 공급되며 공동체를 세우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식량이 폭력적으로 낭비되며 생산되고 있다. 이것에 저항하는 일도 가능한 대로 해야 하지만 우리가 옳고 생명을 준다고 믿는 것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지구뿐만 아니라 건강한 인간 공동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이다. 어떤 공동체 식구가 열심히 수확한 당근을 밭에서 씻고 있을 때 또 다른 식구가 기증 받은 물품을 잔뜩 갖고 도착한 것을 보면서 그저 한숨만 짓던 일이 기억난다. 그 친구는 땅과 씨앗만으로 우리 텃밭에서 이렇게 수분이 풍부한 뿌리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단순한 행위이면서도 가게에 가서 사는 것과 창고에서 모아오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행위이다.

이런 행위가 단순하게 살려는 우리의 실천이다. 가장 신속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폐품을 모으고 직접 먹을 것을 기르며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가능할 때마다 생명을 택하는 선택은 할 수 있다. 동물들을 보다 인간적인 조건아래에서 키우고 기르며 적어도 땅에 최소한의 해를 끼치는 일은 할 수 있다.(유기농을 하는 농민에게서 직접 사는 것, 지역에서 키운 것을 먹는 것, 포장을 피하는 것, 식품조합에 가입하는 등).

불행하게도 우리는 건강하고 비폭력적으로 키운 식품이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가능하기 전에 우리사회의 가치관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단출한 먹기가 나누는 식사의 성사가 되고, 음식이 서로 간에 친교와 일치를 만들어주며 자연세계와의 화해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우리 삶의 선함을 반영하는데, 이 음식의 나눔은 가장 생명을 주고 평화를 가져오는 행위들 가운데 하나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2010.9.
원문출처: <The Catholic Worker> 2002년 1∼2월, by 캐롤라인 그리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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