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은 그분이 마지막에 토한 소리였습니다. 또한 그 말은 그분의 스승께서 마지막 순간에 이미 발언하신 것이기도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고 하셨다지요. 사람이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운명을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지금 결정해야 하겠지요. 너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사랑이 사랑을 부르고, 사랑이 사랑에 응답합니다.
제 선생님은 스테파노입니다. 동료이며 스승이었던 사람, 스테파노는 사도들의 위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가난한 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른바 ‘식탁봉사’를 위해 안수를 받은 일곱 분 가운데 하나였지요. 지혜의 영에 사로잡힌 그분은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하였는데, 그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유다의 사제들 가운데도 사도들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잔뜩 긴장했던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백성들을 부추겨 스테파노를 불경죄(不敬罪)로 최고의회에 고발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자리에서 스테파노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사모하던 분처럼 또한 그들에게 돌에 맞아 무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다만 궁핍한 백성에게 빵을 주었을 따름입니다. 공평하게 나눠지는 빵이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까닭일까요? 어쩌면 그들이 가난한 이들을 두려워하는 까닭인지도 모르죠. 그래요,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함부로 죄인이라 업신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하지요. 예수님 역시 죄인들의 친구요 세리와 창녀의 동무라서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은 염치를 모릅니다. 아무리 그들이 하느님을 성전에 가두어 두고 회당에서 그분을 섬기려 하지만, 그분은 히브리의 하느님, 떠돌이와 노예들의 주님이시니 어찌 하겠어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만, 그늘이 생기는 것은 그네들의 얼굴뿐인 줄 그들만 모릅니다. 거룩한 영이 그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온 땅에서 춤을 춥니다.
빵 굽는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짐승의 먹이처럼 구유에 누워계셨다는데, 저희들의 먹이로 오신 그분께 제가 처음 빵을 드렸던 날이 눈앞에 삼삼합니다. 어머니와 저는 하늘이 맑고 밝은 어느 봄날, 티베리아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그분 발치에 앉아 있었지요. 해가 중천에 뜬지 오래여서 제자들은 끼니를 어찌 때워야할지 웅성거리고 있었죠. 어머니가 자루에 챙겨오신 빵과 생선을 집어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하더군요. 멋쩍게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누군가 제 손목을 잡아 올리며 선생님께 그러더군요. “이 보세요! 저희가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런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뿐이라니까요!”
그분은 이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빵에서 눈길을 돌려 때 묻은 제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셨죠. 너로구나! 하고 반기는 낯익은 얼굴처럼 저를 바라보시고 다가와 품에 안으며 한동안 가만히 계셨습니다. 바닷가의 비린내가 배어 있는 그분의 옷자락에서 아버지를 느꼈습니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저희 아버지 말입니다. 아버지는 밤새 어머니와 무슨 이야긴가 나누시더니,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떠나시곤 이내 돌아오지 않으셨지요. 저는 어부였던 아버지의 그물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고방에 두고, 이따금 찾아가 아비 없는 슬픔을 달래곤 하였지요.
제가 그분께 드린 것은 보리빵 몇 개였고, 그분은 제게 아버지다운 품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자랑하듯이 앞에 세우고 잔잔한 바람처럼 말씀하셨죠. “보세요. 제가 가진 빵을 내어놓는 이 아이의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삽시간에 웅성거리며 여기저기서 빵이 나누어졌고, 오히려 먹고 남을 만큼 광주리에 담겨져 하늘의 축복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지요.
마치 제 손이 햇살처럼 빛나는 것 같았고, 저는 잠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때의 아름다운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제가 이승을 건너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동안, 스테파노의 손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손도 없었습니다. 그는 늘 빈손이었고, 그 손바닥을 거쳐서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났습니다. 빈손으로 행복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고여 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손을 내밀 때, 내미는 거리만큼 세상이 행복해지는 기적을 저는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스테파노, 두 사람은 한 길에서 빛나는 손을 증언하였고, 저 또한 그 길에서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