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를 벙어리요 귀머거리라 불렀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들이 제게 보여준 것은 짜증이요 역정이었지요. 그들이 화를 낼수록 그들이 윽박지를수록 저는 더욱 사나와집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저도 모르게 그리 되는 것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한 느낌이 목을 조여오고 마음이 엉킨 실타래처럼 어수선해지면 이내 입에선 거품이 부글거리고 박박 이가 갈리며 몸은 시체처럼 뻣뻣해지더군요.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멀리 제 곁에서 달아나고, 더러운 영에 사로잡혔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저는 못된 영에 단단히 붙잡혀 손 써볼 도리가 없는 형편없는 아이였던 셈이지요.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 천형(天刑)에 처해진 아이였던 셈이죠. 지금은 옛일이라 생각하며 지워버린 과거였지만, 그 시절을 떠올릴 때는 아직 다 삭혀지지 않는 아픔이 남아 있나 봅니다. 가끔씩 옆구리가 쿡쿡 아파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도 쉬지 못하고 들일을 나갔답니다. 뙤약볕 아래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 저녁바람이 불면 기운이 나는지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바깥에서 무엇을 하다가 돌아오는 지 전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아버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뾰족하니 배운 기술이 없어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고, 병약해서 남의 밭일이라도 도울 근력이 되지 않았지요. 어찌 보면 불쌍한 인생이지요.
우리 집은 마을 끝자락 언덕바지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따금 그 언덕에 않아서 하루 종일 한 마디 말을 건넬 아무도 없이,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니 어머니 속도 어지간히 탔을 것입니다. 다른 남정네처럼 씩씩한 사내를 꿈꾸었을 어머니의 마음은 온통 원망으로 가득찼을 테지요. “어이, 이놈의 집구석! 변변한 것이라곤 있는 게 없어.”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팍팍하니 말버릇처럼 이 말을 내뱉고 주워 담고 내뱉고 되풀이하였지요.
저는 한 번도 어머니의 다정한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긋한 눈길을 받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단잠을 한번 자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늘 바쁘거나 아니면 우울했습니다. 아버지를 꼭 빼닮은 제 얼굴을 지겨운 눈초리로 쳐다보곤 하였지요. 어머니, 엄마, 저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제가 싫은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울면 어머니가 저를 더욱 미워할 것이기에.
점점 말수가 적어지더니 아예 말을 잃어버리고, 듣고 싶은 소리가 없으니 귀를 닫게 되더군요. 마음속으로만 제가 저에게 수없이 말하고 제가 저의 소리를 한없이 들었지요. 그마저 탁 가슴이 막혀버리면 그 소리가 몸부림이 되어 침으로 거품으로, 뒤틀린 사지로 튀어나오다가 이내 고요함,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온몸이 살아있음을 거부하더군요. 호흡마저 멈출 때가 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놀라서 야단법석입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제 얼굴빛을 살피고, 도무지 어루만져 주지 않았던 손길들이 제 몸을 흔들고 주무릅니다. 그러면, 아, 졸립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 날입니다. 웬 덥수룩한 사내들이 저들끼리 뭐라고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리더군요. 제게도 무슨 말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혼곤히 졸음에 겨운 제 귀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더군요. 우유부단하고 항상 무기력했던 제 애비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한 사내가 울타리처럼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 올리더니 지긋이 오랫동안 제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의 품인 듯 편안했습니다.
이때 제 귀가 열리기 시작했나 봅니다.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시며, “그렇게 믿음이 없어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자기를 믿지 못하는 자는 아무도 믿지 못하고, 누구도 그를 믿어주지 않아요. 먼저 아버지가 바로 서야 아이들도 제 자리를 찾아가지요.”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그렇겠죠. 선생님만 믿습니다.” 하고 몇 번이나 자신에게 말하듯 다짐을 두었습니다. 그 때에 그분이 단호한 말씨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제 몸은 더 이상 그분 앞에서 응석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던 것을 그분이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게 믿음으로 명령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 명령이 저를 안전하게 지키는 굳건한 울타리가 되고, 제가 그 안에서 마음 편히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아, 그분이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 손을 말입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 손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