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사보나롤라, 예언의 불길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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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사보나롤라, 예언의 불길 속에서
  • 한상봉
  • 승인 2018.01.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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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분노의 대변자, 미켈란젤로 -3

미켈란젤로, 사보나롤라의 불길 속에서 예언을 접하다

한편 미켈란젤로가 항상 흠모하던 시인 단테가 “너 자신의 황제, 너 자신의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교회 안에서 밥벌이를 했지만, 세속과 교회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고독하게 은자처럼 자신의 길만을 따라 걸었다. 그가 활동하기 시작했던 15세기는 알렉산더 6세 교황의 악취가 흑사병처럼 번지던 때였는데, 이때 불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교 윤리를 강조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도미니코회 수도승이며 산 마르코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사보나롤라는 사자와 같은 열정으로 형식화된 전례와 부패한 교회에 맞서 싸웠다.

사보나롤라는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그리스도교적 삶을 장려하기보다 파괴하는 데 적당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예배를 소멸시켰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성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오늘 다시 로마에 오신다면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을 사람들”이라며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음란한 교회’의 개혁을 호소했다. 그러나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이 용감한 사람을 파문하고, 붙잡아 공공장소에서 교수형에 처한 뒤 시신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사랑을 해치는 자가 파문당한 자!”라는 말을 남겼다.

“저를 잠자리에서 죽게 하지 마시고 당신께서 저를 위해 그렇게 하셨듯이 저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 피 흘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던 사보나롤라를 미켈란젤로는 마음으로 흠모했다. 미켈란젤로는 사보나롤라의 눈으로, 그의 시신을 태워버린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비추는 빛 아래 성경을 읽었다. 사보나롤라의 성직자 비판을 받아들인 미켈란젤로는 이런 시를 썼다.

“그들은 성작을 녹여 투구와 창을,
십자가와 못을 녹여 칼과 방패를 만들게 합니다!
오, 주님, 돈을 벌기 위해 당신의 피를 주전자에 담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로마에서는 당신의 인내도 지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사보나롤라
교황 알렉산더 6세

발터 니그는 “예언자는 무섭고 두려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예언자가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 시대에 예언이 일어나지 않고, 어떤 표징도 볼 수 없다는 것은 가장 무시무시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예언의 중단은 하느님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묘지의 정적이다.

여기서 발터 니그는 예언자를 ‘불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가치나 관념을 파괴하는 폭발력 있는 말들을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내던지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모든 것이 위협 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꺼리고 조소하며 추방한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들을 증오하고 박해하다가 그들이 죽고 나면 비로소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더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사보나롤라를 통해 예언자를 발견했다. 그에게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놀라 일어선 사람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쳐 온 힘으로 백성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바빌론에 의해 유다가 함락되는 것을 지켜본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을 가톨릭교회의 심장부인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그려넣었다. ‘얼음같은 고독’에 싸여 있는 <예레미야>는 아직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예루살렘의 폐허 한가운데 앉아서 오랜 세월 억누른 흥분과 서글픈 탄식을 토해 내고 있다. 예레미야는 종교적 우울로 인해 굽은 상체를 하고, 엇갈린 다리를 하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단단한 고독’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약간 후배인 <에제키엘>은 바빌론에 끌려간 백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에제키엘, by 미켈란젤로

 

예레미아, by 미켈란젤로

죽음을 생각하라_밤의 여신과 모세상

미켈란젤로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것은 율리우스 2세가 주문한, 피렌체의 메디치 경당 조각이다. 공화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한때 당대의 로마권력과 재산을 거머쥔 메디치 가문에 항거했지만, 또한 현실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묘에 들어갈 율리우스 2세 교황의 석관을 만들면서 자신의 생각을 새겨놓았다. 인생에 대한 그이 심각한 태도는 ‘죽음’에 천착하게 만들었고, 석관 위에 조각한 <밤의 여신>은 잠과 꿈의 상징인 가면과 올빼미와 더불어 있다. 해부학상 빈틈없는 여인상의 장엄한 지체는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죽음의 먹이가 될 것을 예감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슬픔을 가슴을 찢는 고통이 아니라 ‘억누르는 침묵’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주목한 ‘밤’은 들판 위에 은빛으로 넘실거리는 그리움을 깨우는 달빛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낭만주의가 아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만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동안 겪은 수없는 고통마저 끌어안는 ‘죽음의 밤’에는 인간의 명료한 이성마저 꺼지고 욕심 없는 평화가 찾아온다. 그는 ‘밤’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오, 밤이여! 너는 무겁든 어둡든
모든 행위에게 마지막 목표를 가르쳐 주기에
환희로 가득 차 있구나!
너를 찬미하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 너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너를 공경하는 이는
지고의 의무를 성취하는 사람이다.......

죽음의 자비로운 얼굴인 밤이여!
너는 심장에 해를 끼치는 모든 비참함을 달래주며
고통으로 한숨짓는 마음이 찾아갈
마지막 피난처다.”

그리고 <밤의 여신> 맞은 편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아우로라, 즉 <새벽의 여신>이 있다. 밤에 대한 깊은 의식은 곧장 새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조각이 놓일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을 다시 짓기로 결정하고, 처음으로 건축자금을 모으기 위해 면벌부를 승인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항거’가 곧 그의 무덤이기도 했다.

이 묘에 놓인 묘비 장식 <모세>는 인간적 감정에 동화되지 않는 존엄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모세는 예언자의 원형이며, 사실상 당대 교회와 교황을 탄핵하고 있다. 처음 하느님을 대면하고, 그분과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히브리 노예들을 예집트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백성에게 ‘십계명’을 전해줄 입법자 모세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려준다. <모세>는 자신의 위업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그러나 영원을 바라보는 눈과 머리의 뿔 같은 위엄을 보여준다.

율리우스 2세 교황의 석관

 

밤의 여신, by 미켈란젤로

 

모세, by 미켈란젤로

[참고]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 발터 니그, 분도출판사, 201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2> 조반니 파피니, 글항아리, 2008
<미켈란젤로의 생애>, 로맹 롤랑, 범우사, 200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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