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 따망이 결혼을 했다. 따망(Tamang)부족의 주요 종교가 불교이므로 비나의 결혼식 주례는 승려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지진으로 비나가 사는 빈민촌이 거의 전부 무너진 이후 우리는 텐트촌에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울산에서 천연염색을 하는 지인이 옷 만들고 남은 조각 천을 보내와 우리는 버려질 천으로 수공예 장신구를 만들어 한국으로 수출(?)을 해왔다.
같은 마을의 세 명의 여성이 더 합세하여 따망 여성들과 함께 일해 온지 어느새 일 년 반을 넘기고 있다. 비나는 우리가 지진 긴급 구호물자를 가져 갈 때부터 주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마을의 유일한 대학생인 비나는 어린이들에게 예쁜 나나(따망 부족어로 누나, 언니를 말함)이자 우상이기도 한데 같은 마을의 청년과 연애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 장소는 아홉 개의 수로가 놓인 우물이란 뜻의 너우다라였는데, 우물가 옆엔 힌두와 불교를 혼합한 작고 낡은 사원이 있었다. 평소엔 행락객들이 놀던 자리였는데 제 철을 맞은 듯 결혼식이 서너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이른 아침 7시부터 카트만두 분지의 원주민인 네왈(Newar)족의 비나야 결혼식이 있어서 갔었는데 오후의 비나 결혼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네왈들은 브라흐만-체트리 보다 교육열이 더 높아 통계에서도 제일 높은 상급 학교 진학률을 기록한다. 네왈들이 우수한 두뇌로 상업과 예술 그리고 건축과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영리한 부족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의 바름’이란 의미의 비나야는 일본에서 공학 박사를 취득 한 뒤 귀국 하여 숲을 살리는 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이다.
네팔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나타나 조용히 필요한 일을 돕던 비나야는 건축가로 전문직에서 일하는 같은 부족의 여성을 색시로 맞아 들였다. 중산층이자 최고의 교육을 받은 비나야의 결혼식은 화려하고 성대하였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원색의 파티의상을 차려입은 수 백 명의 하객들로 북적거리는 비나야 결혼식장에서 어색함을 느낀 나는 서둘러 비나의 결혼식으로 가야 했다.
대나무와 바나나 줄기로 장식된 비나의 결혼식 제대는 야크 버터로 채워진 촛불로 둘러 싸여 있었고, 비나의 부모님은 딸의 행복을 바라는 불을 하나씩 붙여 나갔다. 자연에 가까운 따망 부족의 불교식 결혼은 비나야의 힌두식 결혼과 무척 달랐다. 고급 파티 팔라스에서 열린 비나야의 결혼식과 달리 비나의 잔치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조리한 소박한 음식이 있었고, 태양 볕이 조명이자 난방이었다. 비나에겐 금목걸이, 귀 거리와 반지, 브라스 밴드로 없었다. 대신 허름한 양철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빈민가의 주민들이 부르는 노래와 춤으로 쓸쓸한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자체 언어를 가진 따망(Tamang) 부족의 '따'(ta)는 말(horse)을 의미하며 '망'(mang)은 티벳어로 무역상을 가리키는데 어떤 문헌에 의하면 송나라 때 티베트를 거쳐 네팔로 이동한 말 타는 군인의 후손인 몽골족으로 구분된다.
지난 해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히말라야 가까운 북쪽 지역에 살고 있는 따망족들은 인신매매에 가장 크게 노출된 위험군의 집단에 하나다. 그래서 누와콧과 신두팔쪼크로 구호 활동을 나가서 여자 아이들에게 또 부모들에게 지진을 기화로 인신매매범에게 팔려 가면 절대 안 된다며 캠페인을 병행하였다.
이상하게도 따망족의 가부장들은 현금을 싸들고 와 딸을 데리고 간다며 내 놓으라 하면 덜컥 돈을 받고 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도 팔아버리는 따망 남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회 글에서 ‘유엔 여성’과 여성 단체들이 인권의 날까지 펼치는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캠페인에 ‘빈곤’ ‘문맹’ 그리고 ‘조혼’이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조혼, 즉 어린이 결혼이 네팔의 고질적인 아동인권 침해 요인임은 어제 오늘의 지적 사항이 아니다. 우리 장학생들도 10학년 이상 즉 15세 전후로 아이들이 시집을 간 뒤 중도에 학교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부모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겠지만 하층 빈곤 계층의 생활과 직업적 안정을 위한 교육의 기회를 더욱 적극 부여해야 하고 본인들도 내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적인 지원도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비나, 이제 스물 두 살의 비나는 대학교 3학년인데 결혼을 했다. 신랑 수딥은 림부족으로 영국 군인으로 은퇴한 시민권자인 부친에 기대어 영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결혼은 네팔에 남아 있는 모친을 부양할 합법적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가 동기가 되었다. 그래도 비나는 조혼이 아닌 본인의 의사로 결혼하게 되었으니 행복한 출발이라 하겠다. 그래서 비나는 그 마을의 아이들에게 더 닮고 싶은 나나가 된다. 이주야 이제 이들에게 세계 어디로든 일자리를 찾아 가는 것은 당연지사, 인신매매만 아니라면 그것은 아주 행운에 해당되니 비나의 행복한 출발에 축복을 빌어 준다. 결혼식 일주일 후 새 신랑 수딥은 영국으로 떠났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