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세상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또한 세상의 성장을 위해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떄때로 우리는 하느님의 예언적 음성이 되라는 요청을 받는다.
<시작 기도>
오 하느님,
인류에 대한 저의 책임 인식을 높여 주시고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성실한 관심을 갖도록 해 주소서.
제가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저에게 힘을 주시고 저를 파견하소서.
아멘.
머튼에 관하여
예언자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고유한 방법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언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수도자는 참다운 관상가가 되어야 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요나의 징표>에서 토머스 머튼은 수도자적 소명은 참으로 예언적 소명이라고 제시한다:
수도자는 항상 자신을 논리적으로 심각하게 예언자와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도자는 예언자들의 후계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그의 전체적인 삶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된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의 징표이며 증인이 된다.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그러므로 모든 예언들이 그 안에서 실현되는 모든 수도자는 하느님 나라의 증거이며 징표이다. 우리의 실수조차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것이다.
머튼은 수도자로서 그의 삶이 더 나은 미래를 가리키고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실재로 만들도록 요청하는 종말론적 징표였다고 믿었다. 성서의 예언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머튼은 그 구조와 개념의 전락을 겪고 있는 당시 사회를 위해 구세주의 새로운 날을 선포하였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저격되었을 때 머튼은 “감각없고, 잔인한, 어리석고, 병적인 일련의 긴 살인행위가 다시 한번 자행된 경우”라고 비난하였다(<죄지은 방관자의 억측>에서).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하여 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계속된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적 혼란의 시기 동안, 머튼의 예언적 목소리는 외쳤다:
"모든 인간 종족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범죄 및 불의를 거부하고 대항하는 것에 나의 온 삶을 바치려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나의 수도원 생활과 서약에 의해 나는 모든 수용소들, 공중 폭격들, 계획적인 정치 정략들, 사형 제도들, 인종 차별들, 경제적인 독재, 그리고 평화 애호라는 아름다운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인 조직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정치가들, 선전가들, 선동가들의 거짓에 대한 항의로서 수도자적 침묵을 한다. 내가 말할 때는 나의 믿음과 나의 교회가 불의와 파괴의 힘들과 결코 진지하게 제휴할 수 없음을 단호히 선언한다."(<존경스러운 독자>에서)
그가 죽기 얼마 전, 머튼은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하여 그리스도교 수도자들, 수녀들의 모임에서 연설하였다. 그는 청중에게 중국의 박해 때문에 그의 나라를 떠나야 했던 티벳의 달라이 라마의 말을 회상시킴으로써 도전하였다: “지금부터는 형제들이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발로 서야 합니다.” 머튼은 수도자들과 수녀들이 지지를 외적인 구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예언자적 메시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청중들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예언자가 됨으로써 앞에 놓인 길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멈춤>
이 질문을 숙고하라: 하느님은 어떻게 당신이 하느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예언자가 되라고 부추기는가?
머튼의 말
하느님 나라의 도래라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의 장소와 때의 상황 안에서 스스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만큼 비례하여 명백하게 되고 “실현된다.” 주 예수님 안에서의 하느님 구원의 은총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열림, 단순함, 겸손과 자기 희생 안에서 사람들에게 실존적으로 공표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참다운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하고 같은 동시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생명력 있게 적극적으로 적용하며 표현했을 때 그들은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시화한다(Jn 35, 17,21). 그리고 그 사실에 의해 세상에 그분을 가시화 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믿음과 폭력>에서)
성 찰
“바벨탑: 도덕성”이란 제목의 시에서 머튼은 사람들이 그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실존의 지루함으로부터 전환을 만들기 위해 세운다는 그 도시를 비판했다. 바벨탑과 그 도시는 붕괴된다. 그러자 예언자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도시”인 진정한 도시를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진리가 오직 하느님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인정할 때에 낡은 도시의 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붕괴될 거짓 도시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우리는 정치적 국경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도시인 영원한 도시의 시민이 되도록 요청받고 있으며 새로운 실재, 사람과 사회의 새로운 탄생의 증거자가 되도록 불리우고 있다.
머튼에 따르면, “예언자는 그의 삶으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적인 행위를 살아 있게 증언하는 사람이다.” 수도자는 사실상 인생이 사유재산들, 지위, 쟁취, 쾌락추구 그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예언자가 될 수 있다.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만하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의 방법으로 기쁜 소식을 예언적 소리로 외칠 수 있다.
머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헤매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막에서 예언적 소명을 발견한다.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을 잃고 유혹에 빠졌을 때 완전한 자비이신 하느님에게 충실하도록 가르쳤다:
"사막의 정신을 다시 발견하는 것은 충실함, 애덕, 형제적 일치로 돌아가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는 불평등과 억압을 파괴하는 것을 뜻했고 정의와 공평으로의 전환은 참다운 안식년으로 돌아감을 뜻했다." (<논쟁의 질문들>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 각자를 그리스도의 숨겨진 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믿는 것을 배우는 우리 마음의 사막 안으로 끌어당긴다. 사막에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주는 치유의 물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진리의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충동한다. 사막의 소명은 우리에게 세상을 거꾸로 뒤집도록 내몰기 떄문에 엄청난 것을 요구한다. 일단 믿음의 여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모두는 예언자가 된다.
★ “머튼의 말”을 다시 읽으라. 각 문장의 의미, 당신에게 도전하는 것에 대해 숙고하라. 그 구절에 대하여 예수님과 이야기하라.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도록 요청하고 계신가?
★ 당신에게 예언자적 역할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면 누가 될 것인가?
당신이 이 사람 안에서 존경하는 특성을 묘사하라.
이 특성 중의 어느 것을 당신 자신의 생활 안에 통합시킬 수 있는가?
예언자가 되라는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잠시 침묵하며 성찰한다.
★ 머튼은 우리의 문화 속에 침투하는 반(反)영적인 대중정신을 비판하였다. 우리 사회 구조의 양상들, 규범과 관습들, 가치관과 기대들을 나열하라. 당신 자신의 영적 여정에 방해가 되는 두 측면을 선택하여 어떤 방식으로 그 측면들이 방해하는지 성찰하라. 이제 우리의 사회 구조가 그리스도에 더 중심을 두도록 돕기 위하여 어떤 책임감을 우리가 나눌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나열해 보라. 이러한 방법으로 예언적 소명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당신이 가지도록 기도하라.
★ 불의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기억해 보라. 그의 모습과 상황을 마음에 담으라.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고 한번씩 호흡을 할 때마다 되풀이하여 말하라. 그의 고통에 들어가면서 당신 자신을 점차적으로 그 사람과 하나가 되도록 하라. 하느님께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요청하라.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마지막으로 당신의 믿음의 침묵 안에 머물라.
★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의 요구에 따라 불의에 반대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지난 수일 동안 불의의 예를 명백하게 전해주는 뉴스 보도를 깊이 숙고하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불의와 싸울 수 있는 몇 가지 실천적인 방법들을 작성해 보라: 당신의 직장에서 그리고 당신의 일을 통하여, 집에서, 더 큰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적고 그 중의 한, 두 가지를 행하라.
★ 머튼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관심 없이, 다른 이가 필요로 하는 것에 책임지지 않고서는 내적인 삶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제시하였다.
다음의 청원에 매번 다르게 대답하면서 필요한 만큼 많이 반복하라: “나, (당신의 이름)는, .....에 도달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제 다른이들을 돕는 책임을 지는데 실패했던 모든 경우에 대해 용서를 청하면서 짧은 기도를 하라.
하느님의 말씀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넗혀라.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 (이사야 40,3-5)
<마침 기도>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
당신이 제 마음 속에서 말씀하신 것을 제가 듣게 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멘.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