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핵심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기쁘고 충만한 생활의 원천이다.
<시작 기도>
복음의 그리스도와 내 생활 속에서 매일 나타나는 그분께 제가 열리기를 빕니다.
오소서, 예수여, 친구요 지혜요 목자이시며 빛, 생명이신 예수여!
머튼에 관하여
토머스 머튼이 콜롬비아 대학에 다닐 때, 힌두교 수도자 친구인 브라마차리가 그에게 어거스틴 성인의 <고백록>과 토머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을 읽도록 조언했다. 이러한 충고는 결국 머튼에게 <준주성범> 책을 구입하도록 하였고 특별히 그의 교수 친구인 다니엘 월시의 도움으로 스콜라 신학의 배경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탐험하도록 하였다.
머튼의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관한 이전 경험은 18살 때, 로마에 휴가로 머물러 있을 때에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비잔틴 모자이크 양식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인생에 있어서 최초로 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이 사람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에 관한 개념이 형성된 것은 로마에 있을 때였다”(<칠층산>에서).
후에 가톨릭으로 전향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머튼은 뉴욕시의 성체교회에서 설교를 들었고, 그 때에 그는 다시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를 너무나 감동시켰던 그리스도의 로마 모자이크 양식을 회상했다. 제단 위에 현존하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하여 경이로움으로 가득차서 성체교회를 떠날 때 그는 이 은총의 이 순간에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새로운 세상 안에서 걸었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대학의 누추한 건물들조차 그 안에서 변형되었고 폭력과 소음으로 점철된 이 거리들의 모든 곳에 평화가 있었다”(<칠층산>에서).
수도원 안에서, 전례와 공동체 생활, 성서에 대한 강조와 수도원의 영적 전통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경험을 고조시켰다. 그는 “수도원 생활의 전적인 의미는 육화의 신비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는 성령의 이끌림에 끌려 영원한 생명을 찾으러 수도원에 왔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수도적 삶의 여정>에서)라고 썼다.
육화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머튼은 그리스도의 모상이 우리 각자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주어진 임무는 다른 이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그 모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에 믿음과 애덕으로 응답하는 순간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하느님의 인성과의 초자연적 통합은 그분의 거룩한 아들됨과 본성에 우리를 참여하게 한다. “새로운 것”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이 새로운 사람은 영적으로 신비스럽게 하나의 정체, 동시에 그리스도와 나 자신이라는 하나의 정체가 된다. (<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모든 생명을 성사라고 보는 머튼의 관점은 육신을 취한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섬김의 믿음과 사회개혁에의 참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그의 결단으로부터 발생된다. 심지어 그의 아시아 종교들에 대한 끌림과 동방으로의 여정은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그의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동방의 타종교 수도자들과의 만남을 묘사하면서 친구들에게 보낸 회람 편지 끝머리에 그는 “이 새로운 친구들과의 접촉은 나에게 또한 그리스도와 그분의 내재하는 현존에 대한 나 자신의 믿음에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분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현존하시기를 바라고 또 믿는다”라고 썼다.
<멈춤>
당신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숙고해 보라.
머튼의 말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완전하고도 실존적인 일치의 경험을 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충만하게 “듣고” 십자가의 말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교의적인 신조에 단순히 동의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이기적인 자아가 더 이상 우리의 깊은 행동의 원리가 안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제는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은 이제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19-20; 또는 로마서 8,5-17).
십자가의 말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기까지 순종”(필립비 2,5-11)하는 자기 비움과 일치하여 완전한 자기 비움의 수용을 뜻한다. 참다운 그리스도교에 있어 십자가와 자기 비움의 이러한 경험은 성령을 충만히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모든 풍요로움을 알 수 있기 위하여 (다시 경험에 의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에 반드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선과 욕망의 새들>에서)
성찰
모든 기도의 목적은 육화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사랑스러운 일치를 가져오는 것이다. 머튼은 간결하게 경고한다, “아무도 그가 지금 더 높은 관상에 의해 그 말씀과 직접적인 교통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구실 삼아 그의 내적 생활로부터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내쫓을 수 없다”(<명상의 새로운 씨>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개념과 형상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들은 항상 너무나 작아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담지할 수 없는 것이다.
형상을 응시하든 고요한 관상 안에 집중하든지 간에 그리스도는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머튼은 “우리가 복음을 읽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그림이나 어떤 생각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영혼 안에 하느님으로 계시는 그리스도와 믿음에 의해 살아 있는 접촉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다”(「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모든 형태의 기도들- 전례 기도, 묵상, 염송 기도, 관상-은 모든 진리와 생명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키워 준다.
머튼은 마음의 중심인 그리스도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가치를 찾게 된다. 이 사랑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내적인 현존 속에 자라게되며 더욱 충만하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배우게 된다.
★ “머튼의 말”을 다시 읽으라. 그런 다음 하느님의 광채와 같은 그리스도의 모상에 대해 성찰하라. 당신은 일출이나 일몰을 바라보는 동안 이 모상에 대해 묵상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시작할 때에 이 말로 기도하고 혼란스럽다면 끝날 때에도 이 말들로 기도하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 당신은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현존과 그리스도의 우정을 언제 경험하였는가? 그 사건을 회상하고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쉬도록 그 사건이 당신을 이끌게 하라.
★ 당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개인적 사랑에 대한 감사와 그분의 고유한 부르심에 대한 감사를 깊게 하면서 하루 종일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연습을 하라.
★ 당신의 생활 안에서 그분을 따르도록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당신을 부르고 있는가? 예를 들면, 사랑의 성령으로서 그리스도의 성령을 생각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이 사랑을 어떻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당신 자신에게 물으라.
★ 당신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호흡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려보라. 이제 당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당신 실존의 각 순간에 새로워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생각해보라.
★ 머튼의 이 말을 성찰하라: “그리스도는 사진처럼 당신의 생명을 그분 안으로 통합한다”(「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성찰을 끝마쳤을 때 기도를 쓰라.
하느님의 말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말씀은 모든 것들에게
꺼지지 않는, 세상의 영원한 빛이 되었다. (요한 1,1-5)
<마침 기도>
그리스도의 성령이시여,
저는 제 안에 계시는 당신의 불변의 현존을 잘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당신이 계속해서 저에게 보내시는 사건들 안에서
당신을 알아보게 하소서.
매일 일상의 삶 속에서 당신의 이름이 말하여질 때
당신의 현존을 깨닫게 하고
당신을 위해 저의 마음을 불태우게 하소서.
아멘.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