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부랑자였고, 떠돌이였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쉽게 망각한다. 하긴 갈릴래아의 흙바람 속을 떠돌며 올리브 산기슭에서 선잠을 청했던 전직 목수에 대한 기억을 그 제자 공동체인 교회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위성직자들이 잊어버린 것은 훨씬 이전부터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뒤로, 예수는 비천한 무리 가운데서 승천하여 황제의 반열로 승격되었다. 웅장한 유럽의 대성당에 그려진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어디에서 당신의 가난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던 나자렛 예수를 느낄 수 있는가?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만이 성당을 장식하고, 또한 실제로 제국의 법이 온 교회를 다스리지 않는가? 교황청까지 들여다보지 않아도 온 세계의 주교관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일종의 종교적 관료주의가 지배하고 있으며, 사목자들은 고급 관료와 하급 공무원처럼 보인다.
마리아는 궁전에서 잉태하지 않았다
16세기의 천재 화가 라파엘로는 궁정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는 ‘천박한’ 갈릴래아의 예수 대신에 영광의 그리스도만을 그렸다. 라파엘로가 누린 행운의 비밀은 하느님과 성자 예수와 성인들의 초상을 그릴 때 이탈리아의 지배 계급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허영에 아첨하기 위해서 라파엘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물질적인 사치와 위대성을 그렸다.
르네상스 이후 모든 금욕의 자취는 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그리스도교 신사들과 부인들과 처녀들과 신들과 성인들이며,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목을 쳐들고, 배를 불룩 내밀고, 불그레한 얼굴로 한창 잘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들의 황홀감은 그들의 소화 운동을 방해할만한 간섭을 허락하지 않는다. 먹는 것도 잊고 있었다.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메시아를 잉태했다는 비밀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 천사는 그미가 목수의 헛간이 아니라 궁전(저택)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을 때, 울고 있던 부인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위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지런히 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들의 옷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토착화의 관점에서 제작했다는 성화(聖畵)와 성상(聖像), 순교자들의 그림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양반집 도련님을 안고 있는 규수인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는 여지없이 도령이며, 성모 마리아는 때로 왕비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순교자들의 피 묻은 옷가지는 역시 말끔한 양반의 복장으로 둔갑하거나, 극형을 당한 순교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단정하고 깨끗하고 고상하다.
마늘을 다듬고 전복을 까고 옹기를 굽던 시골 아낙네의 모습을 순교자들의 그림에서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고상한’ 유한계급의 모습이 우리 선조들의 신앙이란 말인가? 이 엄청난 역사적 왜곡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대의 어느 철학자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소에게 하느님을 그리라면 당연히 소의 형상으로 그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귀티 나는 성화들은 교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성직자들의 계급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를,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순교자들마저 가난과 동떨어진 고상한 무리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영적 안심을 얻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최소한 무의식 속에서라도 그런 요소가 있지 않았는가 반성하지 않는 교회는 희망이 없다. 교회가 남루한 예수의 모습 속에서 안심安心하는 데 인색하다면, 이 세상의 가련한 중생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서 구원을 청할 것인가.
환청에 사로잡힌 기존 질서
키르케고르는 이런 우스꽝스런 작태를 보이는 전체를 묶어 ‘기존 질서’라고 불렀다. 기존 질서란 결단이 필요하지 않은 세계다. 위험과 순교를 무릅쓰지 않아도 좋을 그런 안전한 질서다. 한스 큉은 말하였다.
"예수 시대의 기존 질서란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자기네 마음에 들게 자기네 자신을 신성화하면서 기존 질서화했던 그런 유대교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시대의 기존 질서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시민적 자기 만족에 빠져 있던 성직 계급과 보수신학, 사제들에게 둘러싸인 주교와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교수로 대표되는 그런 기존 그리스도교다.
기존 질서는 모든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주관보다 훨씬 객관적이라고 뽐내는 듯하다. 말하자면 그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모든 개인을 심판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다. 스스로를 절대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기존 질서는 예수의 시대처럼 오늘날도 다시금 그 유일한 진리의 증거자(예수)에 대해 반감을 느낀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키르케고르의 말마따나 ‘환청’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진리의 소유자이며, 그만큼 거룩하다고 여긴다. 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을 때는 스스로 자기 귀에 대고 “난 참 거룩해.” 하며 속삭이고 제도교회가 내준 신분증을 다시 확인한다. 우리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선언된 ‘교황 무오류설’을 기억한다. 이 엄청난 선언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던 한스 큉은 가톨릭 신학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렇게 기존 질서가 스스로 어떤 신적인 존재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간주되는 것은 기존 질서가 자신의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며, 왜곡이자 자기 우상화이다. 이는 곧 하느님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전통과 관습, 율법과 의식을 ‘교회의 목적’인 것처럼 여기고, 신앙을 종교 상품으로 변질시킨다. 이렇게 소유함으로써 존재한다.
이런 하느님 경외는 실상 하느님 경멸이며, 이러한 신격화는 실상 세속화라고 키르케고르는 꼬집는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는 순교자가 거의 없고 다만 “각하라며 떠받들리는 고문관들”만이 남아서, 십자가에서 침뱉음을 당한 분을 안정과 명성을 보증하는 ‘위인’으로 만든다고 전했다. 이런 “싸구려 골동품 교회”에서 정작 하느님은 들러리나 바보로 취급당한다. 그는 이런 교회의 참상을 바라보며 <순간>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하느님을 바보 취급하느니 ... 차라리 노름하고 술 마시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살인을 하겠다. 마르텐젠 감독이 ‘그리스도교적 진지함’이라고 부르는 그따위 진지함에 참여하느니 차라리 나의 낮 시간을 볼링장이나 당구장에서, 나의 밤 시간을 노름판이나 탈춤 판에서 보내겠다.
그렇다. 차라리 나는 아예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바보 취급하겠다. 나와 하느님 단 둘만 있는 높은 장소로 올라가거나 야외로 나가 그곳에서 노골적으로 말하겠다. “당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하느님이오. 바보 취급받을 가치밖에 없소.” 나의 삶은 그리스도교를 위한 진짜 부지런함과 열심뿐이라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척함으로써 그분을 바보 취급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겠다."
세상에 저항하는 교회 vs 순응하는 교회
한스 큉은 키르케고르의 생각을 빌어 그리스도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 온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묻는다.
①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져 끊임없이 단지 순례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던 교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립하는 사회에 맞서 저항하던 초기 항쟁 교회가 그리스도의 무적의 진리를 자신만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회, 이미 목적지에 와 있다고 착각하는 교회, 수시로 자신의 위대한 역사를 끌어다 대는 교회, 그러나 세상에 완전히 순응하고 이른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저 시민 사회와 화해를 이룬 개선 교회로 변해 있지 않은가?” 여기서 교회는 불행한 민중에게 위로를 줄 수 없고, 불의한 세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
② “눈에 보이지 않는 청중인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행하는 위대한 모험이랄 수 있는 설교가 하나의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경건한 관찰들과 지극히 예술적인 강연들로 변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설교는 자기의 학식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기회밖에 안 된다. 그리고 하느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침 튀기는 설교자 앞에서 푸대접받고 조롱당한다.
③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극장 안에 있는 관객처럼, 그리스도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다만 비비 꼬인 내면성(영성)에 몰두하는, 고귀한 그리스도의 찬미자로 변해 있지 않은가?” 여기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어떤 결단도 요청받지 않는다. 하느님 앞에서 풍악을 울릴 뿐 몸을 놀려 춤을 추지 않는 무용수와 같다. 그래서 살림이 넉넉한 시민들에게 종교는 색다른 문화적 요구를 채워 줄 뿐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우선 멈춤’
키르케고르는 이 모든 기존 질서에 대하여 “멈추라!”고 항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는 거짓말을 그만두고, 그리스도교를 다시 그 본래의 토대 위로 돌려놓으라는 절박하고 단호한 요청이다. 정직하게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느 편에 설 지 분명하게 태도를 밝히라고 말한다. 사실상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참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냐?
그는 “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최소한 진실 앞에 정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 앞에서는 정직함이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사명을 확인해야 한다. 그 걸음이 아무리 느리더라도, 비록 그저 기어서 앞으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 우리는 엘살바도르의 순교자,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는 비록 보수적인 주교였지만, 친구 사제의 죽음과 처참한 민중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봄으로써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처럼 민중 해방을 위해 헌신할 때나 장군들과 귀족들의 방문을 받을 때에나 그는 항상 정직하였다. 예전엔 세상이 살 만하다고 여겼지만, 일그러진 하느님의 얼굴인 민중의 처지를 알고 나서는 세상의 비참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다. 관건은 언제나 진리에 대한 ‘정직함’에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지금 여기에서 갱신을 시작하는 게 신앙이다.
키르케고르는 죽기 몇 주일 전에 쓴 글에서, 호화 유람선, 음악·노래·대화 때문에 밤과 주위의 위험을 망각하고 있는, 천 명의 승객을 실은 꿈에 취한 타이타닉 호에 대한 우화를 통하여 그리스도교가 직면한 위기를 예언한다.
“만일 선장이 수평선의 그 불길한 흰 점(암초)을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알아챈다면, 아무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떤 승객에 의해 최소한 선장만이라도 마지못해 갑판으로 이끌려 나온다면 ... 그런데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매를 잡히지만 귀먹은 척하면서 몸을 돌려 환호성 가운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드는 객실에서 대단히 상냥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사람들의 소란스럽고 방종스러운 즐거움 속에 잠긴다.”
누군가 그리스도교의 배는 파멸로 가는 도상에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항해사들인 주교와 사제, 신학자는 세상과 세상의 오락(“접시와 그릇의 달그락거리는 소음, 선장의 건강을 비는 술잔치”)에 붙잡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를 유심히 듣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 위기를 깨닫고 있는 사람은 영향력이 없는 게 우리 교회의 슬픈 현실이다. 키르케고르가 막판에 한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볼 때 그 흰 점이 수평선에 보인다는 것은 두려운 폭풍우가 몰려오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승객일 뿐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불행한 것은 항해사들의 양심이 무디어졌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짧고 날카롭게>라는 잠언집에서 교회 이데올로기와 그리스도교 진리 사이의 너무나 동떨어진 간격에 대하여 쓴 글을 읽어 보자.
"성당 안으로 화려한 복장을 갖춘 주교와 더불어 지체 높으신 추밀원 각하께서 등장하신다. 귀족 세계의 선택받은 총아인 그 나으리는 선민 중에서도 선택받은 무리 앞에 나서서 자기 자신이 선택한 성경 구절에 대해 감동적으로 강론을 하신다. '하느님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비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라고. 그런데 거기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키르케고르는 이런저런 교회와의 갈등으로 기력이 쇠잔해져서 길거리에 쓰러진 채 마흔 두 살에 평온하고 기쁜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그의 교회는 그의 장례식을 (그의 의지에 반해서 그리고 이러한 수용에 대해 그의 조카가 반대하는 가운데서) 장엄하게 거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적 유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대의 신학자들도 키르케고르가 ‘공식적인’ 신학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의 생각을 무시하였다.
접동새 우는 사연
전라도 무주에 살 때, 5월이면 밤마다 뒷산에서 서글픈 곡조로 소쩍새가 울었다. 소쩍새는 두견화라고 불리는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울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붙은 이름이 또한 두견새다. 그리고 ‘접동새’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이 새의 이름이 다양한 것은 갖가지 시름에 겨운 민중들이 제 마음을 여미면서 저마다 그렇게 지어 부른 탓이라 한다.
한 목숨에 한 이름만 가질 이유는 없다. 인생이 복잡하고 만만치 않은데, 그 한(恨)이 칡처럼 얽혀 있는 파란만장한 살림에 저마다 곡절이 있고, 풀어야 할 회한(悔恨)도 많은 법이다. 김소월의 설움에 겨운 <접동새>란 시를 읽어 본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복되다, 밤이 이슥하도록 접동새 소리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주인은. 밤이 깊을수록 사무치게 그 소리 더욱 크게 울림을 가슴 치며 서늘한 눈매 다듬는 그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다.
교회 권력이 의붓어미라면, 그 시새움에 죽은 누나는 키르케고르 같은 예언자일 것이다. 그리고 아홉이나 된다는 오랩동생은 우리 하느님 백성들이다, 가련한 중생들이다, 소박하고 따뜻한 손을 가진 어린 신자들이다.
누나는 가고 없지만, 동생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밤이 깊을수록 접동새 되어 접동 접동 울고 있다.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이 방법 저 방법 궁리하며 안타깝게 울어 젖히고 있다. 접동새는 온몸으로 ‘슬픔’을 선포한다. 이 시대의 절망과 교회의 한숨을 지치도록 하늘에 탄원하고 있다. 정작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기쁜 소식’은 누구의 손으로 시작되는가? 동트는 언덕 너머에서 달려오는 그 햇발 같은 발걸음은 누구의 발길인가?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출처: 행동하는 사랑, 한상봉, 리북출판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