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ivaldi - Cello sonatas RV40/42/46 - Roel Dieltiens (1991)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마태오 19,16)
연주 홀에서 감미로운 음악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를 잠그는 것을 잊어버린 걸 기억해 냈다. 당신은 자동차 걱정으로 불안하지만 연극 홀을 걸어나갈 수 없어서 음악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들을 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은 교향악이다; 그러나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실제로 너무나, 극히 드물다. 왜 그런가? 그들은 조건과 프로그램이 머리 속에 넣어 놓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다른 어떤 것-집착들. 집착은 삶을 죽이는 매우 위험한 살인자이다.
진정으로 교향악을 듣기 위해서 당신은 오케스트라에 있는 모든 악기의 소리에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북소리만 듣는데 빠져있다면 교향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데 이 북소리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북이나 바이올린 혹은 피아노 중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런 선호는 해가 되지 않는다. 선호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듣고 즐기는 당신의 능력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선호가 집착으로 바뀌게 되면 당신은 다른 소리들에 귀를 막게 되고 그것들을 가치 없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집착은 어떤 특정한 악기에 매달리게 되고 그 특정한 악기에 적합하지 않는 정도로 엄청나게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관찰해 보라: 당신은 당신 자신을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주도권을 집착하는 것에 넘기고 있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지 잘 관찰하라. 이 사람이나 사물에 집착하고 매달리면서 당신은 그 밖의 다른 사물들과 사람들을 배제하고 매달린 사물이나 사람에게서만 절대적인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당신의 집념 때문에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당신은 경직되어 간다. 그러므로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이 대상물 앞에서 당신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히고 맹목적이 되었는지 바라보는 용기를 가져라.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당신은 모든 집착으로부터 이탈하고 싶은 갈망을 느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집착을 떨쳐 버리겠는가 하는 점이다. 포기와 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한번 북소리를 지워버리는 것은 오로지 북소리에만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당신을 굳어지게 하고 무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포기가 아니라 이해이며 깨달음이다.
집착이 당신에게 괴로움과 슬픔을 일으켰다면 그것은 이해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당신의 일생에서 한 번이라도 자유의 단맛을 느꼈고 이탈이 가져오는 삶의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그것 역시 도움이 된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다른 악기들이 내는 소리들을 의식적으로 주의해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당신이 북소리를 지나치게 높히 평가하고 오케스트라의 나머지 소리에 귀를 막을 때 겪어야 하는 손실을 당신에게 보여주는 깨달음을 대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깨달음이 일어나고 북에 대한 당신의 집착이 떨어져 나가는 날, 당신은 친구에게 더 이상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었는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말할 때에 당신은 그의 자만심에 아부하고 그로하여금 다시 한번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자신에게는 마치 당신의 행복이 당신의 친구에게 달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게된다. 오히려 당신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당신과 내가 만나면, 행복이 일어난다.”
그러한 말은 행복이 그의 자아와 당신의 자아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당신들은 둘 다 행복을 각각 자기 덕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말은 당신들 둘이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해주거나 당신들의 만남이 가져오는 좋은 경험을 하도록 해준다. 당신들은 서로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만남에서 생겨나는 교향악을 즐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의 상황이나 사람 혹은 일로 옮겨 갈 때에 당신은 어떤 감정적인 찌꺼기도 없이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 당신은 교향악이 다시 들려오는 즐거운 발견을 하게 되며 다음의 상황에서,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의 상황에서 다른 멜로디를 연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삶의 한 순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내내 움직일 것이며 그때마다 현재에 온전히 몰두하고 동화되며 과거로부터는 거의 가져가는 것이 없어서 당신의 영(정신)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고 공중의 새와 들의 꽃들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거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무 것에도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교향악에 대한 맛을 키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온 마음과 온 영혼과 당신의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삶만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하늘의 새처럼 언제나 영원 속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방해를 받지 않으며 여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
예수회 신부로서 인도 푸나에 있는 사다나 사목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18년 동안 피정 지도, 기도 연수, 영성 치료 프로그램 등에 중점을 두고 일했다. 지은 책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일분 헛소리>, <개구리의 기도>, <깨어나십시오>, <종교 박람회> 등이 있다.
<출처/ <사랑으로 가는 길>, 안소니 드 멜로, 참사람되어 200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