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그것을 크고 명확하게 말해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We're still here)."
그날은 브라질의 국회의사당, 대법원, 대통령궁이 극우 세력에게 침탈당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룰라가 외친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말은 당시 파죽지세로 흥행하던 영화 <아임 스틸 히어>의 제목과 인기에 빗댄 표현이었다.
브라질에서 개봉한 지 4주만에 250만을 훌쩍 넘겼고, 지금은 브라질 역사상 세 번째로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아임 스틸 히어>. 코메디 영화를 제외하고 이렇게 진지한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린 건 정말 오래간만이라고 입을 모은다. 브라질 극우들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했고, 룰라를 비롯해 브라질의 많은 이들이 축하 메세지를 타전하기도 했다. 약 30개 국가에 개봉되었는데 역시 흥행하고 있다.
<중앙역>,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등의 걸작으로 브라질 영화계의 상징적 감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월터 살레스가 10여년 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들고 왔다.
영화의 배경은 브라질의 6, 70년대 군부독재 시대. 1964년 브라질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20년 이상 군부가 브라질을 통치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증발됐다. 최소 434명이 사망된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지만 군부에 살해되고 실종된 수가 대략 10,000명에 달할 거라고 추정된다. 말 그대로, 쿠데타와 동시에 속절없이 실종되고 살해됐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당시 실종된 전 자유당 의원 루벤스 파이바(Rubens Paiva)의 아들이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아임 스틸 히어>가 이토록 많은 브라질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남편이자 아버지의 실종을 순전히 가족의 문제로 품었기 때문이다. 코스타 가브라스의 <실종>, 루이스 푸엔조의 <오피셜 스토리>처럼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와 실종 문제를 정치적 맥락 속에서 다룬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실종으로 인해 파생된 가족의 상실과 고통, 그리고 존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독 월터 살레스는 이 영화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강제 실종은 독재정권의 가장 잔인한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고 다른 모든 사람을 영원한 심리적 고문에 처했기 때문이에요."
음악, 강아지, 해변, 비치발리볼, 강렬한 햇빛, 안토니오니의 <블로우 업>을 찬양하는 10대 소녀들, 8mm 영사기에 포착된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의 풍경.... 더할 나위 없이 찬연하고 행복하던 중산층 가족의 모습이 묘사되다가 돌연 헬기가 날고, 장갑차가 돌진하며, 아버지가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가는 비극의 풍경으로 급작스럽게 전환한다. 군사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시킨 평화와 일상의 비가,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그렇지만 영화 주인공인 유니스는 고통과 슬픔에만 잠식되지 않는다. 실종된 남편을 찾아다니고, 아이들을 건사하면서도 존엄과 품위를 잊지 않는다.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울었던 주인공 장면을 모두 삭제했다. 절제를 위해서였다. 회고록에서 묘사된 것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유니스는 거의 눈물을 보이지 않은 강인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 대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어느 언론사에서 이 가족 사진을 담기 위해 포즈를 취하게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으라고 요구한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이 밝은 표정을 지으면 안 되잖냐는 것. 하지만 유니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왜 웃으면 안 되나요?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웃어..... 웃어."

영화의 에필로그에 실제로도 웃는 사진이 뜬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정확히 드러내는 샷일 것이다.
좋은 영화다. 클리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신파와 울음을 싹둑 잘라내고 한 걸음 뒤에서 정치 역사가 아니라 한 가족의 역사를 응시한 덕에 그 내밀한 통증과 고통을 함께 겪게 한다. 잘라낸 풀잎 줄기에서 서서히 물기가 배어나오는 듯한 그런 통증과 슬픔이다.
월터 살레스는 코로나가 터지고 보우소나루와 극우 세력이 브라질을 잠식한 가운데 이 영화를 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극우 팬데믹'이 세상을 덮친 가운데 영화를 찍었다고 술회한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싸워온 그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의 심연에 빠져들었는데, 국가가 집단적 기억을 잃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녀도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끈질기게 남편의 기억, 그리고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지키던 유니스가 말년에 치매에 걸렸던 시기는 브라질이 군사독재 시절의 기억을 집단적으로 잃고 극우 세력에 잠식되던 때였다.
결국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기억을 잃게 될 때, 우리가 치매를 앓듯 집단적 기억을 잃게 될 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경고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브라질의 젊은 관객들은 6, 70년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독점했던 군사정부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졌다. 군사정부가 해체될 즈음에 스스로를 모두 사면했는데, 여전히 그 사면법을 수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 기이하게도, 브라질은 한국과 똑같은 평행선을 달린다. 90년대 초반에서야 거의 완전히 군사독재에서 풀려난 것도,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 것도, 심지어 극우들의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폭동도 1년 차이를 두고 똑같이 겪었고, 지금 이 시각 내란수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재판을 놓고 법원 경계 수위를 올리는 것도 완전히 똑같다.
<아임 스틸 히어>는 기억을 붙들던 강직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증언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고통과 굴복하지 않으려는 정신이 교차되는 복잡미묘한 주인공 페르난다 토레스의 연기는 가히 눈이 부시고, <중앙역>의 주인공 페르난다 몬테네그로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씬은 <중앙역>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깜짝 감동을 줄 만하다. <아임 스틸 히어>의 주인공이 바로 <중앙역> 주인공의 실제 딸이기도 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먼저 보게 된. 부디 이 영화가 개봉됐으면 좋겠다. 내란성 우울증을 겪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하고 감흥을 받을 것 같다.
사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장편국제상을 받을 때 우리는 국뽕에 젖어 모든 세계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올해 국제영화상을 받은 <아임 스틸 히어>는 아직도 국내 수입사 중 한 군데에서도 수입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영화팬들을 제외하고 한국 관객 태반이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수입사들아 일 좀 해라. 개봉하면 극장에서 다시 보겠다.
이송희일
1999년 첫 단편영화 <언제나 일요일같이>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다. 성소수자들의 슬픔, 10대들의 외로움과 아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 등을 섬세하면서 강렬한 연출로 그려온 그는, 2006년 <후회하지 않아>로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이끌어 한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후회하지 않아>, <백야>, <야간비행>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홍세화 선생과 대담집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