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세속화와 공무원 사회가 된 사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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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세속화와 공무원 사회가 된 사제 공동체
  • 한상봉
  • 승인 2016.09.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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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세속화 시대, 성직자 권위주의에 대한 유감-6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교와 사제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을 ‘영적 세속화’라고 지적했다. 영적 세속화란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복음의 기쁨」, 93항)이다.

이와 관련해 교종은 “자신의 힘만 믿고 정해진 규범을 지키거나 과거의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면서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규율의 안정성이 “자아도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엘리트주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것을 “교회의 공간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지닌 태도”라고 비판하면서, 이런 태도가 교회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선택된 소수의 전유물’로 전락시킨다고 생각했다.

사제직무를 본당 안에 가두지 마라

전통적인 교회의 관심사를 떠나면, 대부분의 사회적 사안과 의견에서 사제들보다 평신도들이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통상 “똑똑한 사람들도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어린애처럼 무지하다”고 공박을 당하는 것은, 순전히 교리와 교회 관행에 관련된 일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사제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와 직접 결부된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사제들은 기도생활과 교회 내 활동에 대한 제한된 관심으로 신자들을 몰아가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권고한 ‘교회 밖으로’ 나가는 일에는 주저한다. 그곳에서 사제들은 ‘문외한’이거나 평신도들의 지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제가 모든 일에서 ‘해결사’가 될 필요는 없다. 평신도들이 일을 하게끔 맡기고, 자신은 복음적 식별과 영적 지지, 겸손한 동반을 수행하면 족하다. 만사에서 ‘리더’가 되려는 사제들의 욕망은 교회를 교회 안에 가둔다.

사제직무를 교회 안에 가두려는 ‘전통적 사제’들은 복음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심이 없는 성직자들이다. 이런 사제들은 복음화율(지역주민 대비 신자비율)은 강조하면서 ‘복음화’ 자체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성지순례와 신심행사, 회식과 번잡한 회합, 본당 관리업무로 바쁜 일상을 보낸다. 카를 라너는 이런 사제들을 두고 ‘종교 공무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런 사제들은 자신을 복음선교를 위한 사목자로 인식하기보다,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본당의 ‘관리인’이라는 신원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 특히 본당 신축, 개축 등에 부심하는 사목자일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쏟아지는 격무로 인한 ‘짜증’과 더불어, ‘성당을 잘 짓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때때로 명분과 실리가 다른 현상도 여기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성지순례를 빌미로 본당을 자주 비우는 사제들에게는 해외여행의 기회와 현지 미사를 통한 봉헌금 수입 등을 챙기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명분은 신앙심 고취에 두고 있지만, 실리를 챙기는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제들은 이런저런 업무로 늘 분주하지만, 그 일이 ‘복음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사회의 복음화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진=한상봉

사제들도 집무실로 출퇴근해야 한다

복음적 열정이 사라진 사제들이 보여주는 행태 가운데 사제의 기본업무만 행하고 사제관에서 빈둥거리는 사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제관을 사제집무실과 겸하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사제들은 심지어 주일에도 특별한 사안이 없으면 사제관에 머문다. 그러나 사제는 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자들이나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나누어야 한다.

신자들이 접근하기 좋은 위치(성당 1층)에 본당 사무실이 있는 것처럼, 사제집무실도 별채인 사제관이 아닌 신자들 접근이 쉬운 곳에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사목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 사제는 주일은 물론 평일에도 대부분 시간을 사제집무실에서 보내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가령 사제가 정해진 시간대에 늘 사제집무실에 머문다면 누구라도 언제나 사제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당사무실과 연계성도 원활해질 것이다. 사제는 먼저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놓은 존재다.

어떤 경우에는 프란치스코 교종도 지적하고 있듯이, ‘신앙적 열정’이 식어서 본당에서 기본직무만 수행하면서, 사실상 대부분의 열정, 시간과 비용을 사제직무와 무관한 사진, 골프, 음주, 음악, 독서 등 취미생활에 쏟아 붓는 경우도 많다.

결국 교회의 관료화는 복음적 열정의 감퇴와 상관이 있다. 이럴 때, 사제 공동체는 점차 공무원 사회로 변질된다. 한편 공무원 사회가 ‘승진’에 목을 매듯이, 교회 안에서의 지위[권력, 영향력]를 탐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6월 21일 각 나라에 파견된 교황대사들과 교황사절들을 만난 자리에서, “야심 있는 이들, 주교직을 노리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우리는 주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기업 안에서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고위성직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사제들에게 여전히 커다란 ‘유혹’이라고 본 것이다.

오히려 교종은 주교 직무와 관련해, 자신이 바라는 주교는 “신자들 가까이 있는 사목자, 온유하고 인내심 있으며 자비로운 아버지요 형제”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는 ‘군주’로 군림하지 않고, 영적이며 실제적인 가난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심이 없고, 출세 지향적이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난의 영성’ 안에서 겸손하고 청빈한 인물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줄곧 교회 안의 출세지상주의를 비판해 왔다. 이와 관련해 교종은 지금도 교회가 “음모와 책략에 뒤엉켜 있다.”고 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주교나 사제들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의미를 지키려면 바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제들

또 다른 방식으로 영적 세속화에 물드는 사제들도 있다. 특별히 ‘성령운동’과 관련된 사제들이 많은데, 대중적 열광주의에 기대어 추종자들을 모으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제들도 있다. 이들은 피정시설과 수용시설, 연구소 등 다양한 내용과 방식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대형건축물을 짓고, 대대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하면서 공적 사업을 사실상 ‘사유화’ 한다.

이들은 공적 위계 안에서 권력화 되는 길을 포기하고, 공적 교회 체계 밖에서 개인적 능력을 발휘해 ‘우상’으로 군림한다. 이 안에는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재테크 개념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복음은 실종되며, 종교는 상품화 된다.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프란치스코 교종 류의 제안들은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치부된다. 이들의 무의식 속에서 교회는 다만 일신의 영달을 위한 ‘활용대상’이 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본인은 ‘영적 각성과 열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진=한상봉

이처럼 영적 세속화에 물든 사제들은 만사를 “높고 먼데서 바라보고” “다른 형제자매의 예언을 거부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다른 이들의 잘못을 계속 들추어내며 겉치레에 집착한다.”고 교종은 지적한다. 실상 사제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타인의 비판’이다.

신학생 시절에는 선배들과 교수신부들의 질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마침내 사제서품을 받게 되더라도 보좌신부로서 시어머니인 주임사제의 ‘말없는 또는 일방적인 훈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 전체가 계급화 되었다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적어도 성직사회 자체는 철저히 위계적으로 현존한다.

군대에서 병장계급장을 달면 내무생활이 편해지듯이, 사제들은 주임사제가 되고서야 안도한다. 파란만장한 구비들을 용케 견디었구나, 스스로 다독인다. 따라서 주임사제 급에 이르면 사제들 상호간에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상호 비판과 충고는 사라진다. 특별히 재속사제들은 수도자들과 달리 ‘공동식별’의 기회가 적으며, 대부분 교회 안에서 ‘독립적인 지휘관’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하사관이나 사병에 해당하는 수도자, 신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게 되는데, 정작 비판적 논의가 사제 자신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런 사제들은 이미 충분히 관료화되었으며, 받을 고초를 이미 다 겪었다고 생각하며, 본당 안에서는 ‘리틀 주교(little bishop)’로 기능한다. 이때에 심성이 유약한 사제는 자신에게 사제신원과 관련한 비판이 들어올 때 “나도 사람이야!” 라는 말로 방어함으로써, 더 이상의 비판을 미리 가로 막는다. 이를 두고 교종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껍데기뿐인 영성과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저희를 구하소서!”(「복음의 기쁨」, 97항)라고 기도했다.

교종은 이처럼 ‘깊은 영적 세속성’의 늪에 빠진 교회를 두고 “선으로 포장된 끔찍한 타락”이라고 탄식했는데, 여기서 빠져나오는 해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사명을 지속하며, 가난한 이들을 향한 투신을 계속해야 한다.”(97항)는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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