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프란치스코 회관 에서 봉헌되는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를 드리러 갔다. 바로 전 주에는 같은 장소에서 메리놀 수녀회 창립 100주년 기념미사를 드렸는데 ‘추모’와 ‘기념’ 사이를 오가는 나의 심경은 혼란스럽고 우울했다. 하기야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도 펑펑 울다가 손님맞이를 하면서 웃어야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사실은 추모미사 전에 ‘사난 살주’라는 다큐 연극 공연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선약이 있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 연극을 보기가 힘들어서 일부러 피했다. 이 연극은 1인극 네 개가 모인 다큐멘터리 연극인데 4.3, 5.18, 4.16, 10.29 참사의 사연들을 엮어 세월호 참사 유족이 직접 출연한다. 보지 않아도 이미 흉통이 온다. 눈물을 잘 흘리지 않은 나는 아픔이 ‘가슴에서 눈까지’ 올라오는 길이 멀어서 더 아프고 힘들다. 연극 제목인 ‘사난 살주’는 ‘살아있으니 살아간다’는 뜻의 제주 방언이란다. 유족이 무대에 올랐으니 그 과정에서 그분은 몇 번을 죽었을 것이다. 창자가 끊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잠시 쉬다가 묵주기도를 했다. 기도지향은 모든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해서다. 신부님이 159명의 별이 된 분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모두 불렀다. 159라는 숫자로 대체 될 수 없는 159개의 우주가 우리들 곁을 떠난 것이다. 아니, 그들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국민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우주를 파괴한 것이다. 무책임, 무능력, 무관심, 뻔뻔함이 낳은 결과다. 잔인한 폭력이다.
오늘 묵주기도는 ‘고통의 신비’를 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내가 묵상한 것을 나눈다.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수난 당하기 전, 게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는 왜 피땀까지 흘리며 고통스러워했을까?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예수는 ‘참 하느님’이지만 ‘참 인간’이었기에 앞으로 겪게 될 수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통을 허락한 아버지 ‘하느님의 부재‘에 대한 절망이 아니었을까? 결국 예수는 자기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택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이유라면 젊었다는 것, 그래서 피가 뜨거웠다는 것, 그래서 놀고 싶고 쉬고 싶어서 이태원에 갔다는 것, 그 사실 때문에 죽음을 당한 내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은 피땀을 흘렸을 것이고 지금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맡길 수 있을까? 하느님이 있기나 하냐고 소리치고 욕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똑같이 하느님의 부재를 느꼈을 것이다.
2. 고통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아무 죄도 없이, 죄라면 가난하고 아프고 차별과 혐오를 당하고 주변부로 몰린 이들과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낸 것, 그들을 고쳐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밥을 같이 먹고 함께 잘 살아가려 한 것 때문에 예수님은 매를 맞는다. 수도 없이. 비참한 몰골이 될 때까지.
이태원 참사를 비롯하여 모든 참사의 부모들은, 참사로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인데 계속 매를 맞는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공동체와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거리에서 눈비를 맞으며 시위를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삭발을 하고 국회에서 권력과 싸워야 한다. 이제는 그만하라고 극복하라고 가짜 위로에 떠밀린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이게 나라가 맞나? 유족들은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맞고 또 맞는다.
3. 고통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예수에게 가시관은 모욕이다. 업신여김이다. 쓸모없음이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모욕이다. 예수님에게 가시관으로 만든 가짜 왕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 이라고 비웃는 이름을 달아준다. 왕 같지 않은 왕, 약하고 가난하고 무능하고 내세울 거라곤 ‘사랑 타령’ 밖에 없는 왕. 그의 곁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무능한 왕을 버린 것이다. 제자들조차도.
참사를 당한 유족들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모욕이었을 것이다. 영정도 위패도 없는 합동분향소 꽃 무더기에 머리를 숙인 대통령 부부는 희생자들을 이름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자 명예훼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언론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근조’라는 글씨가 없는 리본을 달게 하는 어이없는 행동, 유족의 슬픔을 애도하는 척 꾸민 가짜 애도로 유족들을 모욕했다. 지난 2년 동안 책임을 지고 있는 그 누구도 유족들을 만나 머리 숙여 사죄하거나 위로하거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유족들과 같은 자리에 단 1분도 같이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유족들을 모욕하고 혐오하고 2차 가해를 했다.
고통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심하게 맞아서 십자가를 지고 갈 기력이 없다.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세 번이나 넘어진다.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일어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예수는 세 번 다 무릎에 힘을 주어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간다. 마치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십자가는 무엇일까? 대개 우리는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 말 안 듣는 자녀, 그리고 잘 안 풀리는 고민덩어리들이 십자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십자가는 나 자신은 지기 싫지만, 질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그러니까 '사랑 때문에' 기꺼이 받아서 졌을 때 십자가라고 부를 수 있단다. 유족들은 아이들의 죽음 자체가 십자가가 아니라, 그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생기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모욕과 업신여김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십자가일 것이다. 그들은 억울하다고 힘들다고 분노하고 울고 주저앉아 있지 않는다. 분연히 일어나 눈물을 닦고 걷고 또 걷는다. 넘어지더라고 다시 일어선다. 그 길에 피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목소리를 내어주고 십자가를 함께 지고 길을 걸어가는 사랑의 연대를 만난다.
고통의 신비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그 긴 수난의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이라니! 하느님이라는 분이 저렇게 무력해도 되는 건가?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묵인하는 하느님은 하느님이 맞나? 우리의 희망은 끝난 건가?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다고 한다, 고통이 없는 영광은 가짜 영광이라고 한다.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싫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따르는 사람은 없는 건가? 예수님은 부활했다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부활을 우리는 어떻게 믿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 중에 가장 고통스런 죽음이 자녀를 먼저 보낸 ‘참척’의 고통이라고 한다. 내게는 아들, 딸이 살아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니 유족들 앞에서 어줍잖게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미사 마지막에 유족 대표로 발언을 해주신 상은이 아빠 이상권님의 발언 전문을 올린다. 상은 아빠가 이 발언문을 쓰면서 수도 없이 올라오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분노의 단어들을 누르고 갈고 가라앉히느라 흘리신 눈물의 무게를 짐작하기에 내가 더하고 뺄 그 어떤 단어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참사를 당한 유족들에게 자기 마음 편하려고 하는 가짜 위로나 충고를 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자격은 딱 그만큼의 슬픔과 고통을 당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애도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 옆에 있어 주고 기억해 주고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손과 발을 그리고 마음을 보태는 것이다.
상은 아빠는 발언 마지막에 우리 모두의 안녕을 기도하고 일상의 평화를 바란다. 예수님은 부활하고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한 말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다. 이 평화는 ‘죄없음’ 이란다. ‘무죄선언’인 것이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 정부, 책임자들, 그리고 못난 어른들 모두에게 아이들을 대신해서 선언하는 이 ‘평화’가 그래서 더 값지고 무겁다.
<이상은 아버지 이상권님의 발언 전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은이 아빠 이상권입니다. 내일이면 이태원 참사 발생 2년이 됩니다. 딸아이가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수업을 받다가 하늘의 별이 되어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엄마 아빠가 딸아이의 꿈을 이루어주고자 엄마는 이번 달에 6개월 교리 과정을 마쳤고 저는 9월부터 교리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하느님을 사랑하다 세례를 못 받고 하느님 곁으로 갔을 때 ‘화세’를 통해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상은이가 하고 싶어 했던 세례명 실비아로 ‘화세’를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내년 3월에 같이 세례를 받고 명동성당에서 비록 상은이는 없지만 상은이의 소망대로 엄마 아빠가 대신 결혼식을 하려고 합니다. 또 바티칸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서 교황님을 알현하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하는 소망갖고 있습니다.
상은이와 동갑내기인 스물 다섯 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참혹한 고통과 슬픔을 소설가 박완서님은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필이면 내 자식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지 하느님 한 말씀만 하소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는 쓰잘머리 없는 헛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라고.
강원도로 등산을 갔던 우리 부부는 30일 새벽 6시 뉴스를 보고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고 전날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간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두 달 전 2년여 간의 고단한 공부 끝에 미국 공인회계사를 합격하고 숨 한번 쉬고자 했던 친구와의 나들이가 마지막 소풍이 되고 말았습니다. 용산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태원 골목 참사 현장에서 핸드폰을 주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에겐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 부처님, 돌아가신 아버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상은이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태원 골목에는 국가도, 하느님도, 어느 신도 없었습니다. 압박해 오는 죽음의 공포에 마지막까지 국가를 믿고 하느님을 믿고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아이들의 절규를 외면했습니다. 부활도, 구원도, 영원한 삶이라고 하는 하느님 말씀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악마의 심장에 죽창을 꽂고자 하는 분노가 더 큽니다. 악마를 심판하지 않는 원망이 더 큽니다. 아직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해서겠지요.
이 슬픔 아픔을 극복하고 살아가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면 고통이지만 가슴에 안고 가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의 소망으로 그리고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있는 시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은 더 나은 세상,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반복됩니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것은 기억과 추모를 넘어 새로운 더 나은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 이전의 세상으로 갈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있습니다. 대통령 하나 탄핵하고 바꾼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고 외면하려던 그 가벼움으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탄핵하고 심판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만 했던 10월29일 그날의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정의의 심판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되지만 그 속에는 159명 하나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존엄이, 미래가, 행복이, 우주가, 그리고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159명의 이름이 아픔으로만 남지 않고 어둠을 걷어내는 빛과 희망의 이름으로 남길 기도합니다. 159명의 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살아남아 있는 이 빚짐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딸아이가 잠들어 있는 시골 기차역에서 앞에 걸어가시는 수녀님의 배낭에 달려있는 보라색 리본에서 연대의 힘과 희망을 봅니다. 김밥 한 줄 건네시는 수녀님들의 따뜻함에 힘이 나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는 하느님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150키로 행진과 오체투지를 함께 하시며 손잡아주시고 눈물 흘리며 위로와 연대를 보내주신 수녀님들, 신부님들께 유가족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분들의 소중한 일상이 안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분들의 평화를 빕니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