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지옥을 만드는 사람들
상태바
타인의 지옥을 만드는 사람들
  • 김선주
  • 승인 2024.09.22 1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주 칼럼
사진출처=upload.wikimedia.org
사진출처=upload.wikimedia.org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만든 지옥을 타인의 지옥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타인의 지옥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신념과 행위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이를테면 무능하고 부패한 인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공적 가치와 윤리를 파괴하여 상식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를 만드는 것이 타인의 지옥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지옥은 이들에겐 천국입니다. 자기신념이 너무 강해서 외부 정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신념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 신념은 지성과 회의(懷疑)를 거쳐 얻어진 것이 아니라 무지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무지는 무얼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밖에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무지가 만든 신념처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없습니다.

무지가 만든 신념은 사람을 새털처럼 가볍게 살도록 합니다. 자기가 행하는 일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세계와 인간의 문제를 사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졸저 <기독교인은 왜 악을 선택하는가>는 그 점에 대해 가슴아프게 논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는 무게가 없습니다. 가볍고 단순합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 역시 매우 단순하고 편리합니다.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지옥을 자신은 천국처럼 살 수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은 그들에겐 오히려 천국입니다.

요즘 윤석열을 지지하여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윤석열을 부정하면서 보이는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교묘합니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로 작금의 상황을 퉁치려 합니다. 그것으로 윤석열을 선택한 자기 오류를 합리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부패한 권력자가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퍼뜨리는 게 양비론입니다. 분명한 입장을 표하기 곤란하거나 무지하여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모를 때, 사람들은 그 양비론을 진실처럼 받아들입니다. “누가 하면 별 수 있어? 정치는 다 똑같은 거야.” 라는 무지에 호소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윤석일이나 이재명이나 그놈이 그놈이다’는 논리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양비론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이 만들고 무지에 의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확대 재생산하는 오염물질입니다. 타인의 지옥은 무지에 의한 신념이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편한 방법으로 성서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속사적 관점’이라는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합니다. 성서의 처음과 끝인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을 창조, 타락, 구원의 세 단계를 위해 계획된 일들로 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봅니다. 이런 성서해석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설정하고 세계와 역사를, 그리고 성서의 모든 텍스트를 그에 맞추어 설명하는 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성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하는 것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하기 위해 성서와 세계의 모든 논리와 메시지가 하나의 초점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고 믿는 것은 다릅니다. 우주와 존재와 사랑과 고통과 분노와 환희를 경험하는 인간이 이 세계와 투쟁하며 복종하며, 또는 숭배하며 살아가는 풍성한 이야기들을 단순화시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의 모순된 논리들을 하나의 통일된 논리로 해석하는 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정치논리처럼 가볍고 단순한 해석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것은 타인의 지옥입니다. 사유하지 않고 단순하고 가볍게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타인의 지옥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과 부패조차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려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가 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해 버립니다. 참 편리합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과 기독교의 위대한 발명품이 있다면 아마도 양비론과 구속사적 관점 같은 편리한 도구일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종말이 가까워진다는 게 지금까지 역사의 경험입니다. 문명은 편리한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세계를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고 편리한 생각의 도구를 발명하면 할수록 그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생각의 무게를 덜어버리면 새털처럼 가벼워서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호흡에도 깃털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