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라는 처서(處暑)가 내일모레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냉큼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겠다. 이맘때면 농촌의 사람들은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되지만, 농촌은 여전히 바쁘고, 이 땅은 한증막이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가을 냄새가 나는 것이 마음 설레기에 충분하다. 시인 정연복은 “8월의 시”에서 이맘때를 다음과 같이 아주 짧게 노래한다.
올해도 어느새
내리막에 속도가 붙는 중초록 이파리들
단풍 들 날 멀지 않으니불볕더위의 심술 쯤
너그러운 맘으로 용서해 주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자.”라는 대목에서 홀연 슬퍼진다. 불교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다.” 곧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진다.”라는 뜻이겠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혹은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 아니더냐?
작금의 언론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광복절 행사가 두 동강 났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또 어떤 언론은 가미가재 특공대가 불러댔던 노래를 틀었다가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지만, 현정부의 요직에 있는 어느 인사는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하여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샀다.
“일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미국의 어떤 작가는 일본의 마음을 <국화와 칼>이라고 표현했다지. 자신들의 마음에 들면 “국화”처럼 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한 자루의 “칼”로 다가온다는 이중적 마음, 곧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마음”이라는 뜻이겠다. 이런 일본의 마음 태도를 이미 너스레를 잘 떠는 미국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본이 패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화꽃만을 칭송해대는 어떤 유명작가가 있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전문)
학창 시절에 나는, 아니 우리는 이 시를 외워 선생께 혼나지 않으려고(점수 잘 받으려고) 그리도 마음 졸이며 읊조리며 밤을 지새웠나 보다. 지금 언론은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노라고 노골적으로 대변(대신 변명)해주기에 무척 바쁘다. <시편> 62장에선 이렇게 말한다.
진정 사람이란 숨결일 따름
인간이란 거짓일 따름.
그들을 모두 저울판 위에 올려놓아도
숨결보다 가볍다.너희는 강압에 의지하지 말고
강탈에 헛된 희망 두지 마라.
재산이 는다 하여
거기에 마음 두지 마라.... 그리고 주님, 당신께는 자애가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십니다.
참으로 인간의 주소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를 코앞에 두고, 태풍“종다리”가 올라온다는 속보가 도배한다. 모든 것을 뒤집어놓게 될 것이라는 당초의 생각과는 달리 이 태풍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질 못 한다고 한다. 아마도 한바탕 더위를 몰고 온다는 이야기겠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시절은 또 한 번 요동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을 옳다고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여기는)” 그 마음 변치 말기를,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중적인 마음은 먹지 않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라고 두 손 모을 따름이다. 여름은 가고 가을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니.
신대원 신부
천주교 안동교구 태화동성당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