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한 줄기 빛처럼 의연히 버티어준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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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 한 줄기 빛처럼 의연히 버티어준 한 사람
  • 가톨릭일꾼
  • 승인 2024.08.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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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예수의 길 월례미사-김성 신부 강론 전문

오늘은 강론에 앞서 조선시대 여섯 가지 가훈(육훈 六訓)을 가진 집, 한 가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육훈의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입니다. 조선시대는 계급사회로써 양반 신분을 유지해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회이므로 최소 소과인 ‘사마시’ 즉 생원과나 진사과에 급제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벼슬이 높으면 권력을 탐하게 되는데, 이때 권력투쟁에 휘말리면 보복을 당해 가문이 몰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경계하여 부와 권력을 함께 가질 수 없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입니다. ‘돈이 돈을 번다.’ 는 말처럼 욕심을 부렸다면 이 집안은 더 많은 재물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 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는 것은 그 이상의 재물을 소작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의 땅주인들은 수확물의 70-80%를 소작료로 받는데 이 집은 소작료를 50% 이하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토지를 내놨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 집에 소개해 이 집이 토지를 매입하게 도왔습니다.

셋 째는 ‘손님이 찾아오면 후하게 대접하라’입니다. 조선시대엔 주막이나 객사 등 오늘날 여관처럼 영업하는 숙박업소가 있었지만 부잣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 집은 조선 팔도에 소문이 나서 경상도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들러서 공짜 숙식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집은 일 년에 쌀 3천 석을 소작료로 거두어들였는데, 그 중 1천 석은 집안 식구들의 양식으로 썼고 나머지 2천 석은 손님 접대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썼습니다.

네 번째는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입니다. 흉년에 사람들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기에 싼 값에 땅을 내놓습니다. 심지어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윳돈이 있는 부자들은 이때가 재산을 늘리기 좋은 기회라며 헐값에 땅을 사들였습니다. 오늘날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 생계가 급한 사람들이 재산을 헐값에 처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흉년에 어려운 사람이 싸게 내놓은 재물을 사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그것을 철저히 금하고 대신 돈을 빌려줬습니다. 남의 아픔을 이용해 재산을 늘리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섯 째는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입니다. 이 집 사람들은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해서 보릿고개 때에는 쌀밥을 먹지 않았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집안 살림을 맡은 여자들에겐 근검 절약 정신이 몸에 배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시집온 며느리는 3년을 무명옷을 입게 하였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입니다. 이 집은 손님을 대접하는 것 외에 사방 백 리(40km)안에 가난한 사람들을 책임지는 것을 의무로 여겼습니다. 이 집을 중심으로 사방 백 리는, 동쪽으로 감포/ 서쪽으로 영천/ 남쪽으로 울산/ 북쪽으로 포항까지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을 책임지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 덕분에 이 집만은 당시 활빈당이 부잣집들을 습격할 때 이 집만은 피해갔다고 합니다. 이 집은 바로 경주 최부자 집입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경주 최 부잣집은 1600년대부터 28대손까지 이어지는데 일제 강점기 때 가장은 “최준”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최준’에게 1914년 어느 날, 안희제라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안희제는 만주에서 3년 동안 항일투쟁을 한 독립운동가로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붙인 ‘백산상회’를 부산에 세웠습니다. 이 회사를 통해 독립자금을 마련,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필요했기에 안희제는 최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고 최준은 ‘임시정부 재정부장’을 수락하게 됩니다.

백산상회는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꿨는데, 1927년 해산때까지 이익금 대부분을 상해와 만주로 보냈습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안희제가 맡았는데 그는 1942년 일제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이듬해 8월에 순국했습니다. 해방 뒤 최준은 백범 김구의 요청으로 서울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를 만납니다. 김구는 최준에게 낡은 장부를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 선생,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소.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저희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주셔서 고맙소. 3천만 동포가 최 선생의 공로에 감사하고 있소. 이 장부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내 준 사람들과 그 자금 내역을 기록한 명세서올시다.”

최준이 장부를 보았더니 자신이 안희제에게 건넨 돈과 장부의 기록은 한 푼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습니다. 최준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경교장 2층 마루로 나가 안희제의 무덤이 있는 남쪽을 향해 절을 하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백산, 나를 용서해 주게. 내가 자네에게 건네준 돈의 절반이라도 상하이임시정부에 전해지면 다행이라 여겼는데……. 미안하네 그려.” 최준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허공을 향해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그 뒤 최준은 “대구 대학”을 세워 최 부잣집 모든 재산을 쏟아 부으며 ‘혼자 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경주시 교동에 있는 고택도 모두 넘겨줬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가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고 채수근 해병을 위하여, 또 정의를 위해 의연하게 싸우고 있는 박정훈 스테파노 대령을 위하여, 또 이 땅에 진실과 정의를 위해서 함께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사랑과 자비라는 말은 참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이라는 말에는 참 인색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정의와 진실이라는 말에는 바로 불의와 거짓이라는 어둠의 세력이 분명히 드러나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참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도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는 참 큰 함정이 있습니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바로 불의에 눈 감는 것이며, 거짓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립’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난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당신 스스로 가난해지시길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자렛의 가난한 어린 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합니다. 여관 방도 구하지 못하여 마굿간에서 태어나고 말구유에 뉘여집니다. 이 구원자 그리스도에게 가장 처음 경배를 온 이들은 목동, 그것도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 이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로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합니다.

그분은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오신 ‘가난한 예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박정훈 스테파노 대령을 위로하고 연대합니다.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 의연하게 꿋꿋하게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내 동기 박정훈 스테파노 대령에게서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봅니다.

제가 속한 수도회가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수도회이기에 저의 화두는 늘 ‘순교’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순교자들은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영웅이나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그러한 고문과 죽음 앞에 의연한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러할 수 있었던 힘,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그들의 의연함은 바로 꺾을 수 없는 어떤 격을, 어떠한 경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순교라는 말에서 ‘죽음’을 떠올리지만, 사실 순교의 본 뜻은 ‘하느님 계심’의 증거, ‘하느님 나라’의 위대함을 증언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하느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라고 정의합니다.

요즘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 지 목격합니다. D급의 지도자가 F급의 인사들을 발탁하는 어마무시한 일들을 목격합니다. 상식도 최소한의 도덕도, 양심도 내동댕이치는 후안무치,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일상으로 목격합니다. 참 한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거부, 거부, 거부의 시대상을 목격합니다. 특히 채해병 특검을 거부하는 이러한 상황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래도 한 줄기 빛처럼 의연히 버티어준 한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그의 올곧음이, 그의 당당함이, 그의 진실이 정의의 꽃이 되어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로 인해 정의의 촛불이 일파만파 온 나라로 퍼져나가리라 기대하게 됩니다.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오늘 복음에서 천명해 주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또 박정훈 스테파노와 이 땅의 진실에 목마른 모든 이들과 함께 해 주시리라 굳게 굳게 믿습니다. 아멘.

 

김성 신부
한구순교복자성직수도회
제주 면형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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