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는, 갈릴리 그 청년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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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갈릴리 그 청년을 잃어버렸다
  • 김광남
  • 승인 2024.07.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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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오랜 전업 번역자 생활을 마감한 후 소설을 한 편 썼다(평생 글쟁이로 산 이가 글 쓰는 것 외에 달리 뭘 하겠는가). 청년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갈릴리>라는 작품이다. 익숙한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은 전통적인 신학의 언어로는 내 생각을 펼쳐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원고를 읽어본 몇 사람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지만, 출판계에서 닳고 닳은 나는 이런 작품의 한계를 모르지 않는다. 내가 봐도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나 자신이 이미 60대 중반이니 어쩌겠는가. 사람이 자기 한계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고, 꼭 벗어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기독교 출판사 몇 곳에 원고를 넣어보았으나, 보기 좋게 다 퇴짜를 맞았다. 이해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시장성에 대한 회의가 있을 수 있고, 그보다 앞서 소설의 주장이 전통적 신앙과 상충하는 부분이 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섭섭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판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어떤 분이 이 작품의 에이전트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분이 어제 메시지를 보냈다. "어느 공모전에 원고를 보내려고 하니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글 하나 써주세요." 그래서 부랴부랴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하나 써보았다.

공모전에 당선될 가능성?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독자들이 단편소설집도 읽지 않아 꼴랑 단편 하나를 얇은 책으로 만들어낸다고 하던데, 이 책은 원고지 분량이 1500매에 이르는 장편이다. 한 마디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원고다. 그럼에도 에이전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뭘 하는 시늉을 해봤다. 결과가 어찌되든 그분에게는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사실 요즘 책을 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자비 출판을 결정하면 얼마든 낼 수 있다. 아내는 자기가 돈 대줄 테니 얼른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꼰대다.

결국 책을 못내게 되더라도, 이 작품에 들인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평생 예수쟁이로 살았는데 그 양반을 이해하는 일에 그 정도 시간을 들인 게 뭐가 그리 아깝겠는가. 다만 이 보석(?) 같은 작품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지. 

 

소설 <갈릴리> 소개글

1. 1996년 4월 첫째주 수요일. 내가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날이다. 그후로 틈나는 대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 결과 교회에서 배웠던 예수와 크게 다른 예수를 만나기에 이르렀다. 그 예수는 하나님 예수가 아니라 인간 예수였다. 신자로서 나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예수가 신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 숙고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그렇다’였다. 이 소설은 내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인간 예수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다.

2. 소설 <갈릴리>는 청년 예수의 삶을 그와 그의 조상들이 살아낸 갈릴리의 역사라는 맥락 안에서 추적한다. 예수는 흔히 그렇게 불리는 것처럼 유대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갈릴리인이었다. 예수의 갈릴리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예루살렘이 그 중심을 이루는 유대와 사뭇 달랐다.

유대와 갈릴리의 관계는 (적어도 예수가 그 중 하나였던 갈릴리 민초들에게는) 오늘의 대한민국 서울과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 연변보다도 훨씬 더 멀었다. 갈릴리에서 나고 자란 청년 예수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느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는 유대교의 오랜 전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옛날 모세가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놀랍게도 당시에 그는 자기 앞에 나타난 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갈릴리의 산과 해변에서 독자적으로 얻어낸 것이다. 한때 그가 유대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배웠던 것은 사실이나, 결국 그는 요한과도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갔다. 그의 하느님 이해가 유대교의 그것과 너무나 달랐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유대교와 맞서 싸웠다.

3. 소설 <갈릴리>의 주인공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인 유대교가 불온시했던 아웃사이더들에게서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을 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열차게 싸우는 투사다. 하지만 그의 투쟁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무력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력을 통한 투쟁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뤄낼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유대교가 제시하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그가 죽은 후 그 공동체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갔다.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보혈이 아니라 교회의 효시가 되는 공동체였다.

4. 소설 <갈릴리>에서 예수는 갈릴리인으로서 유대교와 맞선다. 신약성서가 예수가 유대교 전통 안에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그 책을 쓴 이들 자신이 유대교 전통 안에서 성장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예수'라는 개념은 고작해야 유대교의 급진적인 개혁자로서의 예수밖에는 그려내지 못한다. 예수는 초지일관 유대교와 맞서 싸우다 죽었던 철저한 갈릴리 사람이었다. 이 소설이 당대의 지배적 종교 밖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갈릴리 청년 예수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의 교회는 그 청년을 잃어버렸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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