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公私)는 사전에 1. 공공의 일과 사사로운 일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정부와 민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사회와 개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실제는 공인과 사인, 공개념과 사개념, 공익과 사익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게 사용중이다.
현대 사회는 공화국이다. 1인이 재산, 명예, 권력을 독점하던 국가가 아니다. 삼권분립을 이루고 개인도 이제는 혼자서 명예, 권력, 재산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공화국을 의미하는 ‘리퍼블릭’(republic)은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유래한다. 한 마디로 공화국이란 국정이 ‘공적 사안’으로 행해지는 나라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 사용하는 도구가 공화국의 이념을 훼손하거나 공인으로서의 처세가 있을 때 우리는 공화국 일원으로 문제를 제기할수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조국 전 장관에게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고 말했었다. 이는 절대로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조씨가 겪었다는 “고초”는 법을 어긴 자들에게 당연히 따르는 대가로, 그만이 아니라 법을 어긴 모든 이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고초다. 법을 어긴 이가 대가를 치렀는데, 국민들이 왜 그에게 ‘마음의 빚’을 져야 하는가? 빚은 외려 그가 국민에게 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23년 8월2일 이종섭 국방장관과 세 차례 통화한 게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건 것도 이례적이지만, 개인폰을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용산·여의도·서초동에서 흘러나오던 윤 대통령의 사적 통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대통령의 개인폰 사용은 국가안보를 심각한 보안·경호 위험요인이 된다. 도청과 위치추적에 취약하다. 만약 대통령 동선이 개인폰을 통해 실시간 추적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 생길수 있다. “비화폰도 모르는 정신 나간 대통령”(박지원 의원)이란 힐난이 무리가 아니다. 기록이 남지 않는 개인폰으로 업무를 하는 것은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은 업무지시할 일이 있으면 직접 통화보다는 비서를 시켜 ‘연결’토록 했다.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초로 남기듯 일종의 공적 과정을 거쳤다. 윤석열 정권에선 권력자 주변 관리가 공인처럼 되지 않고 있다. ‘사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배우자 김건희 씨의 디올백을 받은 공간도 개인 사무실이다. 그런 점에서 공인과 사인, 공익과 사익, 공개념과 사개념은 확실해야 한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공익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법과 제도 활용해 사익 추구하는 계층들이다. 물론 사익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공직에 진출해서는 안된다. 사익을 법과 제도를 이용해 추구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 운영에서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는 술치(術治)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리고 그런 부정부패를 엄하게 다스려야 나라의 기강이 선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61년 고별 연설에서 특별히 군산복합체에 대해 언급했다. 군부와 산업계가 합작해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데 대한 언급이다. “정부는 군산복합체의 정당하지 않은 영향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이 복합체의 파괴적 영향력은 이미 우리 사이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사력은 전쟁을 하는 데가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미국의 군부와 산업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들은 결국 실패로 끝난 월남전과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공익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계속 퍼져나갔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는 사익을 취하는 행위가 법과 제도를 이용한 데서 비롯됐다. 이것이 당시 금융위기를 분석한 베스트셀러 <자본가들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하자>(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의 결론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내부 집단주의적 행동이다.”
미국 금융가, 의회, 행정부가 공익을 버리고 사익을 취하는 내부 집단주의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는 계속 커지고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나 모든 나라, 모든 조직의 문제는 내부 부패다. 내부 부패를 온정주의로 감싸고 덮어줄 때 몸의 종기처럼 암덩어리가 된다.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진통제 마취제 없이 발라내야 한다.
국민은 능력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지도자는 공익 즉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점차 공익 우선이라는 전제가 사라지고 있다. 국회 지지율은 10% 안팎에 그친다. 국회의원들이 공익 즉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재선, 즉 사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제도 개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송나라 때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정책이 대립하면서 복수정당제도 도입이 검토된 적이 있었다. 구양수(1007∼1072)는 ‘복수정당’을 건의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그의 붕당론(朋黨論)에 근거한다.
“군자는 당파를 형성하지만 공익을 추구한다. 소인은 당파를 형성해서 사익을 추구한다.”
복수정당제는 수용되지 않았다. 군자의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소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정당인도 결국 사익에 빠지게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는 “군자는 공익을 추구하며 편을 만들지 않는다. 소인은 편을 만들고 사익을 추구한다”는 논어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법치와 더불어 술치가 중요하다.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재상이자 사상가 신불해(申不害)는 술치가 부국강병의 첩경이라 주장했다. 그는 공익을 해치고 사익을 추구하는지 살펴보고 바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술치는 전국시대를 거쳐 동양에서 인사행정과 관료제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서 술치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익과 사익의 갈등은 인간 본성에 따라 언제나 어디서나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불안이나 망국은 궁극적으로 사익을 노리고 있지만 모두 공익을 위한다고 하면서 법과 제도를 이용하는 제도와 묵인하는 자들 때문이다. 법치를 활용해 술치를 위반한다. 서양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정복국가와 중세의 종교국가를 거쳐 17세기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에야 비로소 민족국가의 출현을 보게 됐다. 민족국가의 출현이 뒤늦은 서양에서는 법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집단주의가 사익을 옹호하는 법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법치라는 제도는 무능하다. 법치만 주장하는 서양 선진국을 롤 모델로 삼는 시기를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법은 중요하다. 그러나 21세기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도자는 공익과 사익을 구별하는 술치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일본 검술에 ‘이도류’라는 것이 있다. 칼 한 자루를 드는 통상의 검법과 달리 두 자루를 양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쓴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도류의 창시자는 에도시대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다. 평생 진검 승부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가 했다고도 하고 다른 사람이 했다고도 하는 일본 말 중에 ‘육참골단’이 있다. ‘(내) 살을 베도록 내어주고 (대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정도로 얼기설기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자 조어법에 맞지 않을뿐더러 거칠고 사나운 말이다.
유독 이 말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일본을 싫어한다면서 일본 한자 육참골단은 좋아한다. 2015년 5월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육참골단’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한 뒤부터 널리 알려졌다.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가 먼저 꺼낸 표현을 그대로 받아 쓴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몇달 뒤 은근슬쩍 가져다 입에 올렸다. 그 뒤로는 부지기수다.
‘환골탈태’도 정치권 단골 용어다. 직역하면 ‘뼈대를 바꿔 끼우고, 가두던 태반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정치인 개인이나 정당이 강한 쇄신 의지를 나타낼 때 레토릭으로 애용한다. 그러나 원래는 중국 송나라 시대 ‘강서시파’의 창작 경향을 비판적으로 다룬 글에서 왔다. “(원 시의) 본래 뜻을 바꾸지 않고 그 말을 지어내는 것을 ‘환골법’, 본래의 뜻을 잘 헤아려 표현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부른다.”(혜홍, ‘냉재야화’) 강서시파의 비조인 황정견(황산곡)이 옛 시의 형식과 내용을 빌려 자신의 창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이렇게 정의했다. 시승 혜홍의 눈엔 눈속임이나 일종의 표절로 보였던 모양이다.
정치권에는 이 말을 마술 주문처럼 외며 대중의 눈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진짜로 마취제, 진통제 없이 환부를 자르는 수술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성경에 나와 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 마태 18,6-9; 루카 17,1-2)
김흥순
천주교청년연합회 민주화 활동
민통련 민족학교 1기 아태 평화아카데미 1기
전 대한법률경제신문사 대표
사단법인 세계호신권법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