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지난 몇 주가 유권자들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22대 국회의 시간이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는 의원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대들에게 공을 넘기니 잘 해보시라. 대신 나는 다시 나의 본업으로 돌아간다. 책 읽고 글쓰기. 먹고살만해서 심심풀이로 하는 일 아니다. 나로서는 나름 죽기살기로 하는 일이다. 물론 기쁨과 보람도 있고 그렇기에 그 일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나같은 동네 아재들도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도록 돕는 게 정치 아니겠는가.
<더블린 사람들>(제임스 조이스)을 읽고 있다. 20세기 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는 15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학부 때 그중 세번째 작품인 '애러비'(Araby, 1894년 더블린에서 열렸던 바자의 명칭으로 아라비의Arabia의 시적 표현이다)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그때는 극적인 이야기 없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작품이 어째서 그토록 찬사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40년여 년이 흐른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꽤 있다). 세상에는 나이를 먹어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나이를 꽤 먹었다. 떠나기 전에 나도 이런 작품 하나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자주, 열정은 있는데 재능은 없는 이의 갑갑함을 느낀다. 그래도 아무런 열정 없이 시간이나 죽이며 사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다고 자위하며 꾸역꾸역 살고 있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