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속적 통치자와 유대관계를 끊고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과 함께 복음적 청빈으로 돌아가 박해와 고문과 죽음 앞에서 두려움 없이 예언자적 용기를 지니고 고난받는 종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리라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까”(보프)
제도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세상에 증거하는 신도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공동체를 조직화 한 교계제도, 교리, 전례, 경전, 전통을 일컫는다. 이런 제도화된 조직을 통해 공동체는 안정과 일치, 복음전파와 통치에 필요한 구조를 갖추었다. 어떤 신앙공동체도 제도화 없이 존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도화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교회의 제도화가 권력을 낳고, 교회독재에 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권력이라도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는 액튼 경(Load Acton)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
주교란 누구인가
본래 그리스도교는 ‘변혁의 산물’이었다. 유대교는 초기교회를 “나자렛 예수를 숭배하는 유대인 분파”로 보았다. 그러나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자신들의 신앙공동체를 유대교와 구분하여 ‘그리스도교’(Christianismo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나름의 의식과 교리와 생활방식을 지닌 신도들의 공동체라는 뜻이다. 이들은 단지 유대교의 연장이 아니라 예수의 복음적 삶을 따라 살면서 새 시대, 새 사람, 새 약속을 제시하였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힘은 신앙과 순교자들의 용기였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주교 없이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주교로부터 생긴다.”(필라델피아 3,1)고 말했다. 또한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변자이며 하느님의 대변자”(마네시아 3,1, 스미르나 8,1)이며 “주교는 하느님의 사자이며 그리스도와 같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교권주의와 상관이 없다.
성 이냐시오는 주교는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의 박해로 체포되어 107년 로마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순교했다. 그는 압송 도중 그리스도, 교회조직,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7통의 편지를 써서 스미르나 등 여러 교회에 보냈다. 이처럼 이냐시오가 말한 ‘주교의 권위’는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는 몸인 공동체가 선출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초에 신앙공동체들은 투표로 자신들의 사제를 뽑았고, 뽑힌 사제는 자신을 선택해 준 공동체에 매이는 몸이 되었다. 로마에서 제시하는 후보 명단 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심지어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국가행정관이라는 공직을 맡고 있었으며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공동체 주교로 호출되었을 때 자신이 이제 막 회심한 사람이라고 항변했지만, 히포의 공동체는 그를 설득해 주교로 삼았고, 391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어떤 공동체는 그 도시의 방문자를 주저앉혀 주교로 삼았고, 결혼한 사람도 주교가 될 수 있었다.
제국교회의 출현
초기교회는 불법적 종교로 제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자, 점차 호교론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제국에 이로울 것”이라는 그리스도교 옹호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미누치오 펠릭스는 <옥타비우스>(Octavius)에서 “그리스도교인은 현 시대의 철학자이며 과거의 철학자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인이었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311년 갈레리우스 황제가 ‘관용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선포했으며, 로마법에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교회는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제국의 불법종교에서 공식종교이자 신성한 제국 이데올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사제들을 이교도 사제들과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재정적 지원도 제공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는 <복음의 준비>에서 이 정치종교적 사건을 “구원사의 정점이며 성경적 약속의 실현”이라고 해석했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아예 국교로 선포했다. 이때부터 이교도는 “미친 자”로 간주되었고, 정치-종교적 질서에 대한 반역자로 처벌되었다. 이렇게 교회는 주변화된 집단에서 ‘보편교회’가 된다.
이후 제국의 지도자들이 교회에 관여함으로써 이교도의 그리스도교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이교화가 진행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313년까지도 그리스도교는 제도라기보다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제국에 편입되자마자, 교회는 제국의 법률, 교구조직, 관료적 집중화, 지위, 직함 등을 물려받게 되었다. 교회와 종교의 개념 역시 로마화 되어 법률적 지위를 얻었다. 신앙(fides), 성사(sacramentum), 성직(ordo), 백성(plebs), 교회(ecclesia) 등.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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