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교회
가톨릭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중앙집중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황에서 사제에 이르는 교회 내 행정 책임자를 선출하는데 하느님 백성인 평신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교구나 본당의 주교나 사제의 임명은 엄격히 교회권력자에게 독점적으로 맡겨져 있지만, 그렇게 임명된 교회 책임자가 지역공동체에서 군림함으로써 대체로 더 전문적이고 지적이며 경험이 많고 신학적 자질조차 갖춘 상당수의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주변인으로 남게 된다. 이들은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와 참여에서 배제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세계정의>는 이렇게 권고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교황청에서 제정한 법에 따라 교회의 각 구성원은 의사결정에 한 몫을 지녀야 한다”(46항)
때로는 사제들조차 교회일치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 의견을 내거나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의회와 시노드, 여타 교회모임에서 결정적인 사안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사제들을 대변하는 이들은 모두 ‘주교’들이다. 교회법적으로 사제는 주교의 협조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들이 자발적인 단체를 만들 경우에 때때로 상급사제나 주교의 의심과 험담과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해체 당한다.
환속사제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성직을 떠나는 자는 ‘죄인’으로 간주되는데, <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Sacerdotalis Coelibatus, 1967)에서 이러한 사제들을 “불행하게도 그들 자신이 선서한 봉헌의 책무에 불충실한 자”(83항)로 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여성은 최소한 신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수도자는 남성수도자들의 10배 이상이다. 그러나 교회법상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책임 있는 지도적 위치에서 일할 수 없다. 교황청에서도 사무국이나 위원회, 성에서 직책을 맡지 못해 왔다. 물론 성사와 관련된 사목직을 맡을 수도 없다.
규범적 교리로 제도화된 것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여성사제’ 문제이다. 여성사제 불가의 사유가 ‘예수가 남성이었다’는 생물학적 이유라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신앙교리성에서 1976년 발표한 <명백한 징표 가운데서>(Inter Insigniores)는 이렇게 밝힌다.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이 성사적으로 표현되도록 되어 있는 마당에, 그리스도의 역할을 남자가 맡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리자 사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자연스런 닮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럴 경우 대리자에게서 그리스도의 표상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과거에나 지금이나 남자이시기 때문이다.”
보프는 “그렇다면, 어떤 남자든지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예수처럼 갈릴래아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할 줄 알고 할례를 받은 남자에게 한정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실상 이러한 교회의 전통적인 태도는 바오로 사도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된 세례찬가를 부정하고 있다. 이 찬가는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이랄 것도 여성이랄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 3,26-28)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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