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을 그렇게 맛있게 하는 집은, 초등학교 졸업식 때 먹은 짜장면 이후로 처음입니다. 어렸을 때 가끔 무슨 날일 때만 먹을 수 있었던 짜장면이 하도 먹고 싶어서, 세상 살면서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짜장면만 실컷 먹을 수 있다면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인생철학을 세웠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또 누군가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 마음이 불안 초조 긴장으로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을 때 짜장면 한 그릇만 먹으면 마음이 풀리면서 느긋해진다고 했습니다.
복음반점 짜장면을 먹으면 그 사람들 심정이 실감납니다. 복음반점 짜장면은 확실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습니다. 짜장면만 맛있는 게 아닙니다. 우동 맛도 기가 막히고 짬뽕은 도시 음식점 어느 해물탕보다 낫습니다. 바다가 가까운 면 소재지 장터에 있는 ‘중국집’이라 조미료를 쓰지 않고 싱싱한 해산물을 팍팍 넣어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반점 짜장면(우동, 짬뽕, 볶음밥, 잡채밥...... 다 포함해서 그냥 짜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이 맛있는 이유는 그뿐이 아닙니다.
면 소재지 복음반점 이야기
“아, 여보세요? 복음반점이죠?”
“예에.”
“짜장면 배달이 되까라우? 지금 아니고 한 시간 뒤에나.”
“집사람이 밭에 가서 안 되것는디라우. 언제 올지 몰르것는디.”
면소재지 가까운 친구 집에 마실 갔더니 일 끝내고 돌아온 친구가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자고 해 전화를 했는데 실망입니다. 그것도 한 시간 전에 미리 전화를 했는데 말입니다. 친구가 기왕에 저녁을 사기로 한 것, 다른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한참 회의를 하다 그래도 결론은 복음반점입니다. 슬슬 걸어가서 먹기로 합니다. 집을 나서려다 혹시나 싶어 다시 전화를 합니다.
“여보세요?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디요, 지금 짜장면 먹으러 갈라고요.”
“아, 아! 안 되는디라우!”
“예? 아까는 배달이 안 된다고 해놓고는, 어째 인자는 먹으러 가는 것도 안 된단 말여라우?”
“그...... 시방 읍에 나갈라는 참이요... 머시냐 거시기... 병원에 가야 쓴당께라우.”
“예에, 쩝! 알것소.”
뭔 놈의 병원에를 해가 다 졌는데 간다냐 싶은 원망은, 맛있는 짜장면을 못 먹게 된 탓에 드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기왕에 바람이 든 것 도로 주저앉아 저녁을 해먹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친구는 늦둥이 아이 손을 잡고 읍에서 음식을 맛있게 하는 다른 친구 음식점에 가자고 나섭니다.
축제에서 만난 복음반점 아저씨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군청 앞 광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군마다 하나씩은 여는 축제를 다음날부터 하는데 전야제 행사로 나훈안지 너훈안지, 쨍하고 해가 뜰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가수들이 온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것에 흥분한 아이가 자꾸 그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하는 수 없이 어른 둘이 아이에게 끌려갑니다.
아이는 사람들 틈새를 잘도 비집고 들어갑니다. 아이를 놓칠세라 어른 둘이 다른 사람들 눈총을 받아가며 아이를 따라갑니다.
“아,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려가며 사람들이 앉아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죄송합니다!”
인사를 한 사람과 눈길을 마주치고 보니 앗! 복음반점 아저씨하고 아줌마입니다.
“아, 난 또 누구라고. 굿 보러 오셨소?”
“아, 예. 여, 여기 계셨네요?”
단골손님들 전화 목소리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아저씨가 내 속이야 알 턱이 없이 이실직고합니다.
“우리들도 아까침에 와서 자리 잡고 앉었소. 여기 쪼깐 비집고 앉어부쑈.”
“아, 아니라우. 쩌 애기 땜에... 보다 가...”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복음반점 양주는 박수를 치고 어깨를 들썩이고 신이 났습니다. 병원에 간다더니 저렇게 멀쩡하게 굿을 보러 왔습니다. 명색이 중국집 간판을 걸고 장사 하는 사람으로서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굿 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거시기... 머시기... 하고 더듬거리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양주가 저렇게도 희희낙낙 하는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그 엄매가 보거나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재미진 것을 못 보고 짜장면 팔고 있으라고? 예! 예! 안 그러시길 백번 잘하셨습니다.
손님들만 아쉬운 복음반점
아마 양주가 교회를 다녀서 이름이 복음반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일요일에는 짜장면을 안 만듭니다. 그런데 일요일이어도 장날에는 만듭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엿새는 꼬박꼬박 장사를 하느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전날 부부싸움을 했다고 문을 닫고 전날 술을 왕창 펐다고 안 만들고 또 어느 때는 밭에 고추 심으러 갔었다고 전화를 안 받았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몇몇이 짜장면계를 만들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돈을 내며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데 아침에 미리 짜장면을 만들 것인지 확인을 해보고 모여서 가야 합니다. 전화를 받기는 받아도 또 아줌마만 있으면 말짱 꽝입니다. 아저씨가 주방장이고 아줌마는 배달 담당인데 아저씨가 짜장을 다 만들어놓고 면을 삶아 얹어주기만 하면 되는데도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것보다 맛이 없다고 아줌마는 아저씨가 없으면 아예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일주일을 기다렸다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날도 있습니다. 쥔장은 아쉬울 것이 없고 손님들이 아쉬울 뿐입니다. 면소재지에 복음반점 말고 중국집이 또 하나 있는데도 아주 급할 때 아니면 그 집은 잘 가지 않고 그렇게 기다렸다가 먹으러 가는 것입니다.
“하이고, 이 사장! 오늘은 짜장면 맹글어줄랑가?”
“이 집 짜장면 한 번 묵을라다가 목 빠져불것네잉!”
하고 동네 아저씨들이 미운소리를 하면 복음반점 아저씨는 묵묵부답, 웃는 것이 답입니다.
그런 복음반점 아저씨가 참 좋습니다. 그렇게 살아주어서 고맙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의 성화에 아저씨 장사하는 방식, 사는 방식이 참섭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응원하는 마음에 나름대로 아저씨 편을 들어줍니다.
“아저씨, 일주일이나 기다렸다 먹으니까 더 맛있소.”
“아하! 시장이 반찬이고 기다림이 반찬이라더니 이 집 짜장면 맛있는 이유가 다 있당께롱!”
다른 아줌마도 맞장구를 쳐줍니다.
음식은 기운입니다. 똑같은 양념과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어도 조리하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몸이 아플 때 해놓은 음식은 영락없이 맛이 형편없습니다.
생각해보니 복음반점 아저씨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짜장면을 만들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좋지 않은 기운으로 음식을 만든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고 음식이 맛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반점 아줌마 아저씨가 좋아 보이는 까닭
자연은 일년열두달삼백육십오일 같은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어제까지 말짱했던 하늘이 오늘은 천둥 번개 비바람 몰아치기도 하고 또 거짓말처럼 살랑살랑 바람 맑고 햇살 화안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도 자연의 하나라 득도한 사람 아니면 몸 받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마음과 몸이 늘 하나같을 수는 없습니다. 울고 웃고 화나고 즐겁고 처지고 생기 넘치고 변화무쌍합니다. 다만 마음 가는 대로, 있는 그대로 살았다가는 자기도 괴롭고 남도 괴로워 좀 숨기기도 하고 아닌 척도 하고 살 수는 있어도 마음과 몸이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어거지일 것입니다.
도시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 자연스러움을 허락받지 못합니다. 성실이 지나쳐서 모든 욕구를 일에 맞추도록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한결같지 못하면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인간다운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은 저당 잡히고 사는 꼴이지요. 성실하고 한결같은 사람들일수록 어쩌면 사실은 내출혈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24시 편의점 따위 24시간 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설사 교대로 근무한다 하더라도 그 주인의 생활과 삶이라는 걸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인간 자체를, 인생 자체를 돈에다 바쳐버린 삶,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도시 시스템이자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국가 권력은 ‘경제 살리기’를 외치며 사람들을 더 그쪽으로 몰고 있지요.
누구든 그가 어미라면, 그가 하느님이라면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아프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안 아프고 마음 여유롭게 잘 살아주는 것이 어미든 하느님이든 아니, 가까이 있는 누구한테든 가장 큰 보시입니다.
얼마 전 읍에서 횟집을 하는 40대 초반의 여자가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데 급성 간경화에 걸려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돈 버는 것에만 일로매진한 나머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는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복음반점 아줌마 아저씨가 귀하고 좋아 보입니다.
복음반점 아줌마 아저씨는 올해는 아예 농사를 짓기 위해 장사를 쉬겠다고 합니다. 가실이 끝나고야 다시 짜장면을 만들겠답니다. 이번에는 또 몇 달을 기다렸다 짜장면을 먹게 생겼습니다. 돈이 좀 덜 돼서 그렇지 농사짓는 일은 사실 장사보다도 몸과 마음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몸은 고되어도 자유로움이 있어 농사꾼들의 얼굴은 살아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제 그런 농사꾼들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몰고 갑니다. 자기의 시간과 의지대로 자기 분수껏 일해서 분수껏 먹고 사는 그 자유로운 꼴을 보지 못하겠답니다. 기업농을 육성하고 시골 사람들을 농업임금노동자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아직 농사를 짓고 있는 절대다수의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입니다. 나라님이 어미나 하느님의 마음이라면 자급자족농이 늘어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그나마 이 세상의 허파이기 때문입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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