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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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 박병상
  • 승인 2023.02.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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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칼럼

드디어 임플란트 시술을 마무리했다. 한동안 오른쪽 턱으로 밥을 먹었는데 왼쪽도 동참하니 편해졌지만 익숙하지 않다. 혀가 왼쪽으로 음식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 곧 익숙해지겠지. 어려서부터 잇몸이 약해 치과를 자주 다녀야 했다. 잇몸이 약한 어머니를 닮았는지 모르는데, 외할머니는 젊어서 틀니를 했으니 그럴 게 틀림없다. 임플란트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틀니로 밥 먹었을 텐데, 틀니는 언제 개발되었을까?

요즘 태어나는 아이의 기대수명은 남자도 80세가 넘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큰아이는 10년 가까이 친밀하게 지내는 이성 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생각도 아기를 낳을 생각도 없다. 결혼해 낳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80세 기대수명 주장을 믿지 않는다. 지진과 감염병,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몰고 올 재난을 왜 무시하는가.

희한하게 큰아이와 둘째는 같은 해 맹장 수술을 했다. 물론 며칠 입원해 간단히 수술했고 지금 두 녀석 모두 무척 건강하지만 한 세대 전이라면 위험할 수 있었다. 두 세대 전이라면? 사망으로 이어질 공산이 컸다. 한 20년 전 원인 모를 혈흉, 폐에 피가 차오르는 현상이 생겨 한 달 가까이 입원한 적 있다. 다행히 재발하지 않았는데, 즉시 입원하지 못했으면 위험할 수 있었다. 한 세대 앞이었다면 아찔했을 것이다,

생명공학의 윤리 문제로 논의가 활발할 때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수명을 두고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영양이 개선되고 개인위생이 철저해지면서 선조보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었지만, 의료기술이 뒷받침하기에 가능했다고 의학자가 주장했다. 부정할 수 없지만 문제를 제기했다. 낙태로 희생되는 태아의 생명,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배아로 희생시킨 생명은 통계에서 빠졌다고 지적한 것인데, 과학자들은 어이없어했고 생명공학자는 생명을 연장하려는 연구라고 역성들었다.

코로나19는 3년 만에 위력을 잃어간다. 공항과 고속도로를 타고 인구가 밀집된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 수많은 변이로 인류를 괴롭혔는데, 이제 인류의 눈부신 과학기술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양상이다. 과학자와 축적된 지식, 그리고 자본과 화석연료를 즉각적으로 제한 없이 동원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압한 것인데, 기후위기는 새로운 감염병의 창궐을 경고한다. 영구동토에 얼어붙은 과거의 척추동물이 녹으며 미지의 바이러스를 인류사회와 생태계에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인류의 찬란한 과학기술은 능히 이겨낼까?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과학기술은 화석연료가 지원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를 빚을 수 없다. 화석연료는 자본을 동원해 퍼 올릴 텐데, 과학기술은 자본과 권력이 진두지휘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은 호기심으로 자연의 진리를 파악하지 않는다. 기술과 만나 거대해지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과 패권을 노리는 권력에 편승한다. 생명공학과 반도체공학이 그렇다. 핵 관련 산업이 그렇다. 자본과 권력은 거대해진 과학기술의 성취를 위해 막대한 화석연료를 제공해야 한다.

플라스틱이 없었으면 코로나19는 제압할 수 없었다. 수많은 진단 도구와 시약 용기, 그리고 주사기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을 몰랐던 시절, 의사는 사용한 유리 주사기를 살균해야 했다. 그랬다면 코로나19는 면역 없는 인류사회를 파국에 몰아넣었을지 모른다.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의 산물이다. 신속하게 백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과정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고 대부분 화석연료였다. 화석연료를 동원하지 못했다면 세계의 많은 인구가 사라졌을지 모른다.

2004년 남아시아를 뒤흔든 지진과 그 자리를 휩쓴 쓰나미로 40만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불가항력이었다. 2011년 동일본을 뒤흔든 뒤에 휩쓴 쓰나미로 4기의 핵발전 시설이 폭발했다. 핵발전소 폭발보다 쓰나미 희생자가 훨씬 많았지만, 실상일 뿐 결말은 확실하지 않다. 방사선 피폭으로 사람만 대대로 피해 보는 게 아니다. 태평양에서 오염될 생태계는 훨씬 광범위하고 인류사회에 미치는 폐해는 계속될 것이다. 지진은 불가항력이었지만 핵발전소 폭발은 허술한 과학기술이 원인이었다.

얼마 전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뒤흔든 지진으로 3만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외신은 20만을 예상하는데, 하도 처참해 뉴스 화면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희생된 이를 마음 깊이 추모하고 가족에게 조의를 전하고 싶은데, 짐작하기 어려운 이재민의 고통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지진이 빈번한 지역에 인파가 밀집하지 않도록 사전에 통제할 수 없었을까? 강을 따라 무너진 고급 아파트는 지진대 위에 있었다.

언젠가 저녁 약속이 있어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교대역에서 내렸다. 아니 내리려 했지만, 승차 인파에 밀려 들어가야 했다. 간신히 빠져나가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는데, 이따금 밀지 말라는 외마디 외에 시민들은 무표정했다. 그 시간의 일상이라는 거였는데, 잠깐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지진이 발생한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랬다면 불가항력일까?

멀지 않은 과거, 서울 강남 일원은 한적한 농경지였다. 지진이 생겨도 큰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활발한 튀르키예와 시리아 접경도 인적 드문 산악이나 농경지 아니었을까? 쓰나미가 휩쓴 남아시아와 동일본의 해변도 한적했고 911테러로 3천 명 가까이 사망한 맨해튼은 허드슨강 주변은 인간이 살지 않던 구릉이었다. 재난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무섭게 나타난다. 재난 규모가 흉흉하게 커지는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농경사회였다면 지진과 테러, 그리고 감염병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화석연료를 막대하게 동원하면서 도시가 커지고 이동이 빨라졌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빠르게 퍼질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보기에는 배양접시와 다르지 않다. 화석연료 부작용인데, 위기에 몰리는 기후변화도 화석연료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고 식량을 넘치도록 공급해주는 화석연료 덕분에 인류는 80억을 돌파했고 도시는 전에 없이 밀집되었다. 화석연료의 문제를 모르지 않은 자본과 권력이 대책을 고민한다지만 본질과 거리가 멀다. 더욱 많은 화석연료를 동원하는 대책이 아닌가. 돈과 권력을 염두에 두는 과학기술과 개발이 그렇다.

‘열역학 보전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다. 정교할수록, 거대할수록, 빨라질수록 에너지 소비는 커지고 폐기물이 늘어난다. 석유 태우는 자동차를 수소자동차로 바꿔도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 화석연료가 일으킨 문제를 화석연료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데 어떤가? 우리는 화석연료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가? 멀지 않은 미래세대의 생존이 위험한데 우리는 화석연료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제라도 상상하면 어떨까? 두 세대 전의 경험을 되살리면 되는데. 그 시절 조상이 불편하거나 불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60플러스기후행동 공동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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