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버린 '어머니 대지'와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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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버린 '어머니 대지'와 진도
  • 장진희
  • 승인 2023.02.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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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 진도에서

구기자 따는 일을 한다. 세물째인데도 빨간 구기자가 주렁주렁 오지게는 달렸다. 진딧물 때문에 농약 아니면 해볼 수가 없는 농사임을 아는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밭 주인 내외가 농약을 덜 쓰기 위해 얼만큼 애를 썼는지를 아는지라, 마을에서 구기자 따는 일을 해주러 온 열댓 명 안팎의 엄매, 아베들은 알알이 손에 잡히는 이 구기자 붉은 열매를 더욱 애지중지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 도시 사는 아그들한테 보낼 놈은 꼭 이 집 것을 사야것다 맘먹으면서.

“옴메! 다른 집들 구기자에 약 해대는 걸 보믄 어디 구기자 낋에 묵겄습디여?”
“아, 긍께 구기자 농사 짓어놓고도 폴기만 하제 인역은 입에도 안 댄닥 안 합디여.”
“구기자는 아그들한테 뚜드러 패서라도 멕이는 것이람서 그라믄 옛날에는 으치케 농사를 지었다요?”
“아, 그때는 병충해가 시방 같든 안 했제.”
“벌레들도 무장무장 내성이 생게갖고 인자는 오만 약을 무지하게 뿌려야 쓴단께...”
“아, 글고 그때는 농약이 어딨고 금비가 어딨어? 밥은 넘의 집이서 묵고 똥은 집이 와서 싸라고 안 했는가? 개똥도 줏어다 퇴비 만들었는디 먼, 그만치 귀한 것이 퇴비였제.”

이제는 인역들도 농약, 화학비료 아니면 농사 못 짓는 걸로 아는 엄매, 아베들과 나누는 이야기다. 인역들도 그 옛날 그렇게 키운 작물들이 작기는 해도, 종자개량하고 농약, 제초제, 비료 팍팍 쳐서 굵고 보기 좋게 키운 요새 것들보다 짱짱하고 살로 가는 것이었음을 안다.

여든여덟 살 잡순 앞집 엄매는 반침(마루)에 작은 메주콩 다라이를 끙- 소리 나게 내려놓으신다.

“노란콩 꼴새가 이 모양이네. 성한 것도 벌레가 다 묵어부렀어. 메주는 켕이나 종자나 나올랑가 몰르것네.”

정말로 그중 노랗고 튼실해 뵈는 콩알 씨눈에 거의 빠짐없이 검은 점이 박혀 있다. 벌레가 먹은 것이다.

“이랑께 모도 약을 해쌌제.”
“콩에다가도 농약을 해요?”
“오만 디다 다 약을 한디 콩이라고 안 하것어? 옛날에는 이러든 안 했는디.... 그라고 어짜다 벌레가 많은 해는 산에 가서 제를 지냈제.”
“여귀산에 가서요?”
“아니~ 쩌그 십일시 너머 산에... 그날은 일도 안 하고 모도 음식을 해갖고 가서 하룻밤 산에서 지내고 왔어.”

그랬구나... 가물 때 기우제만 지내는 게 아니라 병충해가 많을 때도 제를 올렸구나... 그렇게 ‘어머니 대지’를 달래드렸구나.

어찌 아니었겠는가? 하늘에 땅에 비에 구름에 바람에 해에 달에 어찌 기원을 담지 않았겠는가? 사람이 그 덕에 사는 목숨들 중 하나임을 왜 몰랐겠는가?

언제부터 그걸 잊었을까? 어쩌다 잊게 되었을까? 이제는 누구한테 말을 하자도 들어줄 자식, 손주도 곁에 없이 홀로들 꼬부라져 가는데, 있다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가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살아오셨던 엄매, 아베들 다 지상을 뜨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진실과 지혜를 찾을까?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을 성경책 읽듯이 밤마다 읽는다. 혼자 보기 아깝고,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말 한 마디 할, 글 한 줄 쓸 염치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인디언들의 육성. 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 역사가 구절구절 가슴을 에리게 하는 책.

“...부모들은 내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도록 고삐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공간에 대한 감각과 함께 대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검은 산을 수없이 여행했다. 그곳에는 시간을 초월한 것이 있었다. 산들은 너무 나이를 먹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 앉아 산들바람에 귀를 기울이면 나무들이 부스럭거리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 작은 통나무 집에서 살았다. 집안의 장녀로서 나는 샛강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또 땔감으로 쓸 장작을 주워 오고, 엄마를 도와 음식을 만들고, 강에 가서 빨래를 했다.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내 책임이었다. 그 무렵은 힘겨운 시기였지만, 엄마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겸손함을 배우게 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매우 풍성한 삶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단숨에 돌아갈 것이다.”

한 인디언 여인의 이 얘기는 우리 엄매, 아베들 삶의 모습, 아니 우리들 어린 시절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례로 꼽히는, 30년 넘게 교도소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 지도자 레너드 펠티에는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원주민들은 대지를 지키는 수호자들이다.”

그렇다. 어쩌면 글을 알고(진도의 엄매들 중 어림잡아 70%가 문맹이다.) 글로 이야기를 전하거나 듣고, 보일러로 겨울을 나고 수세식 변소와 세탁기와 온갖 전기제품을 쓰고 비닐류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살림살이를 하는 요즘 세대는 시골에서 살더라도 이미 원주민이 아니다.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세대는 지금의 엄매, 아베들 세대로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이미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미국식, 소위 서구식 문명에 길들여진 문화적으로 국적 불명의 인종들이다.

지금 우리가 받아들인 문명의 역사, 곧 미국의 역사는 유럽 제국이 다른 대륙의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것보다 훨씬 무차별적인, 처음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인간과 생명, 자연에 대한 살육과 침략과 약탈의 역사였다.

레너드 펠티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장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정통성, 풍부한 정신 세계, 그리고 독특한 문화와 오랜 전통 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더불어 슬프게도 그 역사 속에는 비극과 속임수와 종족 말살 정책이 함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둑질이 행해진 곳이 바로 이 아메리카 대륙이다.”

라고 말한다. 그 비극의 역사 속에서 인디언들은 얼굴 흰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려는 눈물 겨운 노력을 하며 아메리카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는 아메리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서구 문명의 폭탄을 맞은 지구 전체를 향한 것이며, 실제로 지구 곳곳의 방사능 유출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인간의 얄팍한 ‘문명 맹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지구 초토화 전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살아온 이 땅을 차지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에 대해선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매년 똑같은 땅에다 똑같은 곡식을 심으며, 벌레들을 죽이기 위해 독을 뿌려 댄다. 곡식이 바뀌지도 않고 땅이 휴식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연히 토양은 메말라간다. 그들이 뿌리는 농약은 새들을 죽이며, 매년 그 제초제들이 흘러가 이 나라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물들을 독으로 바꿔 놓는다... 핵 연료 지지자들은 원자로가 매우 안전하게 건설되기 때문에 그것이 녹을 염려는 전혀 없다고 사람들에게 거듭해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봐왔듯이 인간이 만든 어떤 기계나 발명품도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이 세운 것은 어떤 것이라도 그 목적을 다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만든 장치에 적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우주적인 법칙은 그것들이 결국에는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 백 마디 말보다 인디언의 한 마디 말이 귀하여, 종일이라도 그들이 한 얘기를 전하고 싶다.

이 슬프고 뒤숭숭한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말하자면 인간의 삶의 원형(原形)은 어떤 것인지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그러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전하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 인간이 원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왜 우리는 이런 혼돈과 불행과 온갖 병을 안고 살게 되었는지 그 뿌리가 보인다. 인디언들은 인간의 몸을 치유할 때 몸과 영혼을 함께 치유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원형이 없는가? 레너드의 말처럼 아메리카 원주민뿐만 아니라 우리 원주민에게도 있다 뿐이겠는가? 우리 스스로가 부정하고 팽개쳐버린 우리 조상들의 얘기 말이다. ‘어머니 대지’ 품에서, 말하자면 천지신명 전에 순하고 착하게 생명을 이어온 우리 엄매, 아베들의 삶 말이다. 가마솥에서 퍼낸 뜨건 물 한 방울도 마당에든 수채구멍에든 함부로 버리지 않고, 풀뿌리 하나와도 지렁이 한 마리와도 서로 존중하며 살아온 우리 엄매, 아베들의 삶 말이다.

우리 엄매, 아베들은 식구 중에 누가 병이 생기면 ‘씻김굿’을 했다. ‘씻김굿’은 단골이라는 치유사의 영적 치유 행위였으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부여반도(한반도)’ 자연 속에서의 쉬임 없는 노동은 그 자체로, 요샛말로 하자면 우주와의 교감이자 명상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의 엄매, 아베들은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힘 때문에 마음과 영혼의 힘을 잃지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진도의 노래뿐만 아니라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의 대중가요 속에도 그 건강한 역사는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인간들이 하도 못살게 구는 바람에 이제 더 이상 생명을 보듬을 수 없을 만큼 ‘어머니 대지’가 늙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상초유의 지진, 해일, 태풍, 폭우, 이상기온.......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할 수밖에 없는 문명의 이기로 인해 지구와 인간, 생명의 몸이 모두 병들어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위 ‘생태계’는 엉망이 되었다. 멧돼지나 병충해처럼 소수 종만 창궐하고, 가축이나 인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온갖 신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주위에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암 등 온갖 병과의 투병 소식은 정말로 겁이 더럭 날 지경이다. 아직 오십 이짝 저짝 나이들인데 말이다.

조금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말을 한다. 때가 되었다고. 가까이 왔다고. 좀더 구체적으로 2012년 동지 무렵이 그 때라고 한다. 아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든 것을 쓰고 버리는 문명의 행태로 보면 그것이 백 년 뒤든, 십 년 뒤든, 일 년 뒤든 끝장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간단한 산수로도 계산이 나온다.

이런저런 개인사로 인해 진도를 뜰까 하고 전국을 싸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서울 살 때 버스비만 달랑 들고 찾던 남한강, 북한강, 여주, 이천, 두물머리, 능내... 그 아름다운 강줄기가 어찌 되었을 것인지 차마 끔찍해서 그쪽으로는 발길을 돌릴 엄두도 못 내고 서울에서도 좀 먼 곳으로. 그러나 이미 내가 본 산천이 아니었다, 불과 십년도 안 된 사이에. ‘전국토는 공사중’이라고 팻말이라도 붙여야 할까? 정말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곳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진도는 “초토화 전략”이 덜한 곳이었다. 그래서 도로 진도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세상 어디라고 이 대책 없는 파괴와 약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인가?

진도군은 깡촌 골짜기까지 상수도 공사를 해놓고 산 좋고 물 좋아 아무런 오염원 없이 먹을 수 있는 물을 철철 넘치게 놔두고도 굳이 스무 가지도 넘는 약품으로 처리한 장흥댐에서 끌어온 광역상수도 물을 먹으라고 한다. 그러고도 물 부족을 이유로 내세운다. 정말로 물이 아쉬운 곳에만 하는 공사라면 왜 마다하겠는가? 지진 등 지구의 용트림이 인간의 상상을 앞지르고 있고, 일본 핵시설 파괴로 인한 방사능 유출에서 확인된 것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고 일어나고 말 것인데 그 먼 데서 끌어오는 물에 주민 모두가 목을 매야 한다는 말인가? 그 공사로 한동안 ‘진도는 공사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공사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달랑 ‘지중선 공사’라고만 쓴 세모 판대기 하나만 세워 놓고, 도로가 아니라 누더기 걸레를 만들어가며 진도를 통과해서 제주로 전기를 보내려는 공사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기업체인 한전의 손을 들어주고, 군수도 양해를 하고, 주민들도 합의를 해주어서 그렇게 되었단다. 덕분에 돈 버리고 몸 버려 가며 반대운동을 했던 몇몇이 보름이 멀다 하고 재판정에 불려 다니고 있고, 이제 반대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진도 땅을 돈과 권력에 눈먼 자들이 유린하고 있다. 한밤중에도 제대로 된 야광 표지판도 없이 아무 데서나 공사차량이 튀어나오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며 주민들의 차량을 위협하며 질주하고 있다.

이런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이삼 년이면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 대지’의 살 속을 찢고 헤집어 ‘어머니 대지’의 살 속과 그 젖을 먹고 사는 생명들에게 끊임없이 해댈 전기고문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 종족말살의 싸움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최후에는 ‘어머니 대지’를 지키는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 했다. 우리 진도도 그 싸움 속에 같이 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제주 송전 반대 싸움은 이 파괴와 약탈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 문명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제주에 전기를 보낼 수 없게 될 그때 ‘어머니 대지’의 살 속에 박혀 있는 저 쓰레기들은 또 어찌해야 좋을까?

물질적인 풍요 말고는 사실은 팍팍하기 짝이 없는 시절 탓에 잊어가는 우리 진도의 엄매, 아베들 입에서 수천 개가 넘는 진도아리랑 가사가 도로 줄줄이 흘러나오기를 기원하며, 나 자신 그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이 세월을 건너야겠다는 다짐을 사족으로 단다.

듣는 '고려장' 기분 나빠요

부모를 버리는 비정한 자식의 행태를 빗대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을 흔히들 씁니다. 학교에서도 고려 시대에는 그런 불효막심한 풍습이 있었다고 배웠구요.

"제 속 짚어서 남의 속 안다"고 그건 혹시 후대 사람들의 마음자리와 생각으로 고려장을 이해한 평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언제부턴가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15세기 일본의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농촌 공동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마을에서 기근이 들어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은 충격적으로 그린 영화인데 그중 우리의 고려장과 비슷한 죽음에 대한 묘사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고려장'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지혜로운 죽음의 방식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손주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할머니는 드디어 결단을 합니다. 이미 노동력을 잃은 자신의 입 하나를 덜기로 한 것이지요. 날을 잡아 사람들에게 그날을 알리고 평생 가르쳐주지 않았던 귀한 것이 나는 산 깊은 자리를 며느리에게 알려주고 평생을 걸쳐 터득한 지혜를 빠뜨리지 않고 물려줍니다.

그날이 되어 깊숙히 감추어 두었던 귀한 술을 내어 잔치를 하고 마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함께 치르는 일종의 장례식인 셈이지요. 그러고는 아들 지게에 올라탑니다. 아들은 산꼭대기 높은 데 있는 '고려장터'까지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갑니다. 의식(儀式)을 행하듯 종일 험한 산길을 오르는 아들과 어머니의 그 하루 길이 기가 막히게 가슴을 울립니다. 이미 해골이 뒹굴고 있는 '고려장터' 한귀퉁이에서 할머니는 하늘 가득 내리는 하얀 눈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같은 마을의 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집안에서 이미 결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지게에 오르지 않으려 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강제로 지게에 태웁니다. 자식들을 살려 종족을 잇기 위한 아들의 선택입니다. 할아버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게에서 바둥거리다 가파른 산길에서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죽음 자체가 공포가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공포입니다.

이 영화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고려장'이 고려나 중세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음직 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손들의 곤경 앞에서도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려장'은 천하에 불효자식이 하는 짓이었겠지요.

한자 어원을 흥미롭고 설득력있게 탐구하여 설명해주는 한 선생님의 망할 망(亡)자 풀이에도 그 꼬투리가 들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뜻하는 망자(亡者)에서 망(亡)자는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ㄷ모양)에서 담 너머로 머리만 내민 모습이라는 설명입니다.

옛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마을 뒷산쯤에 마련된 '곳집' 비슷한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맞이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망자( 亡者)를 찾아가 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천년대 한국에서 일어나는 '한국장(葬)'의 풍속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버려진 부모가 끝내 자식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는 지점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보다는 훨씬 영적으로 성숙했을 것 같은 고려 시대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고약한 풍속도를 고려장으로 비유하는 것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고려장, 고려장 하지 마세요. 듣는 고려장 기분 나빠요."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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