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 헤네시는 키가 크고 깡말랐다. 그는 그가 많은 세월을 보냈던 남서부의 관개수로 옆을 여전히 활보하는 듯이 도시의 거리들을 따라 성큼 성큼 걷는다. 두툼한 회색 곱슬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지면 머리카락 끝이 자주 똑바로 서게 된다. 땀흘리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는 파랑 색이나 빨간 색 손수건을 이마에 두르는데, 그 모습은 인디언과 너무나 닮아 보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한다”라고 말하는데, 아몬은 인디언, 특히 호피들을 사랑한다.
그의 푸른 색 눈은 애처롭거나 유쾌해 질 수도 있지만 보통은 날카롭거나 응시하는 눈길이다. 곧은 코와 얇은 입술이며 수 년 전 까지 만해도 이빨이 한 개만 있었다. 그는 자신을 “뻐드렁니 헤네시” 라고 부르곤 하였다. 어느날 메인 주에서 온 한 독자가 우리 사무실에 와서 아몬과 만난 후, 고향 마을의 한 작은 대학에서 강연해 달라고 그를 초청하였다. 그 남자는 치과 의사였는데 그래서 그는 아몬의 턱에 남아있던 이빨 뿌리들을 뽑아내고 윗 틀니를 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몇 달이 지난후 뉴잉글랜드 근처에 강연하러 간 아몬은 그 친절한 독자의 병원에 들러서 마취를 안 한 채로(그는 약을 경멸한다) 이뿌리들을 들어내고 새 틀니를 만들었다. 그는 치료를 한 그날 밤에 강연을 하였다. 그는 틀니를 다 만들 동안만 머물렀으며 그 후에 돌아왔다.
현재 그는 잘생긴 남자이다. 거의 70이 다 되었지만 사무실의 많은 20대 중반의 사람들보다도 일에 대한 끈기와 열정에 있어서 더 젊다. 내가 그에게 말한 것처럼 그것은 선물(은총)이자 소명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대하여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신체적인 무능함을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그는 물질과 모든 정신 의학적 이론들을 능가하는 정신을 믿는 위대한 신념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이 자기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다윗들 뿐 아니라 예레미야들도 우리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몬은 채식 주의자이지만 그것을 종교처럼 절대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주의한다. 즉 아침에는 과일을 점심에는 스프를 저녁에는 치즈와 달걀, 야채와 샐러드와 같은 좋은 음식들이다. 사이사이에 그는 파이 한 조각과 뜨거운 쵸콜릿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막에 놓여도 그는 생존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며 그것이 심지어 콩 줄기를 잘게 다져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집집마다 다니며 파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할 것이다. 그는 남서부의 광활한 야채 평원에서 나온 찌꺼기들로 생존했던 것이다. 대추나무 과수원에서 일할 땐, 대추들을 먹고살았다.
항상 옳으며 어떻게 일하고 먹고 단식하고 자고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며 하루의 모든 문제를 대면하는지 안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또한 성가신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아몬의 유일한 두 가지 결점은 다른 이들을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이며 그 자신도 가끔 틀리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그의 결점은 행동에 있기 보다 말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에게서 어떤 분명한 이단적인 것과 애덕의 부족이 나타날 때 “그가 말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그가 행동하는 것을 하시오”라고 저주 선언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우리는 행동하는 것보다 말을 훨씬 더 잘한다. 아몬은 그가 행동하는 모든 것을 볼 때 애덕 그 자체이다. 침대가 필요했을 때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의 침대를 내주었다.
아몬은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방문자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들을 환대하기 위하여 밤을 지새우곤 하였다. 그는 우편물을 수거하고 전화를 받는 일에 항상 성실하였으며 규칙적으로 자기가 일하는 책상에 앉았다. 그는 매순간 책임지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매일 11시부터 3시까지 길거리, 월스트리트, 43번 가와 렉싱톤가 주변, 포담 대학(그는 거기에서 사제들과 수녀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유니온 광장, 혹은 쿠퍼 조합 앞이나 뉴 스쿨에서 보냈다. 사무실 일이 더디거나 비가 와서 거리로 나가지 못 할 때, 그는 28년 동안 나온 <가톨릭일꾼> 신문들의 색인 작업을 하거나 5부씩 묶어 한 다발을 국회 도서관에 보냈다. 그 일이 끝나면 그는 <가톨릭일꾼> 신문의 독자가 되어 수천 쪽을 읽어 내려간다.
그는 하느님나라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기쁜 소식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며 접근했는데, 그의 하느님나라는 사자가 새끼 양과 뒹굴고 아무도 너울로 자신을 가리지 않으며 모든 지친 여정에 동반자가 있는 곳이다. 아몬은 지금 이곳이 바로 시작 할 때라는 신념에 따라 믿고 행동한다.
그의 고유한 작품인 <무정부주의>를 설명하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그가 정말로 싸우고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랜돌프 본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의 건강”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국가와 전쟁이다. 그는 “정부”, “권위” 그리고 “법”과 같은 말들을 마치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는 듯이 퍼뜨리고 다닌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몬 처럼 생각한다면 법정도 판사도 혹은 경찰도 필요 없을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내가 만났던 무정부주의자들은 가장 원칙적이고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인 반면에, 규율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모순되게도 복종하길 거부하고 스스로 통제를 가장 못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분야보다도 아몬이 더 역할을 했던 부분은 단식이다. 나는 그가 지금 피켓 시위 전야에, 고된 시련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안다. 나는 그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어떠했는지를 기억한다. 단식 전날 밤에 그는 과일 쥬스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월요일 7시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는 허드슨과 휴스턴가 까지 여섯 블록을 걸어갔는데, 그곳에서 포스터를 들고 전단을 돌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사무실이 닫혀 있거나 아무도 그를 만나볼 사람이 없을 때)을 제외하곤 매일 8시간씩 그리고 매 시간마다 잠시 휴식을 하며 피켓 시위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음성은 약해졌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4층 침대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사무실에 있는 길고 낮은 탁자들 중 하나에 드러눕는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협력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와 함께 피켓을 돌아가며 들었고, 왔다갔다하며 신문을 배포하고 지나가는 남녀 행인들의 야유를 들으며 있을 법한 공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그들은 수 차례 실제로 그를 보호해야 했다).
왜 단식만 아니라 피켓도 드는가? 라고 어떤 이들은 물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쉽다. 여름날에 길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며 왕래를 바라보고 오직 한 마디 말을 주고받아도 행인들과 말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단식은 내가 몇 번 안되는 나의 경험에서 아는 것처럼 끔찍하고 심각한 대가를 치른다. 어느 해에 아몬은 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단식한다고 선언하였으나, 나는 우리가 끊임없는 위기 속에 있기에 단식을 그만 하라고 말하였다. 늘 한가지 이상의 위기가 있는데, 그러나 어떤 위기가 전쟁을 재촉하는 것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올비스사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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