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바닷가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섬이었던 땅이 이제 연육교가 놓여 육지와 다름없이들 살지만, 귀한 것들을 버리고 돈과 욕망과 편리함을 위해 달려가는 세상에, 섬이었기 때문에 아직 살아 남아 있는 것들이 많은 땅입니다. 그러나 이땅도 빠르게 세상이 달려가고 있는 쪽으로 함께 휩쓸려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땅이 품고 있는 귀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도로 다리를 끊어놓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맑은 날이면 왼쪽으로는 윤선도가 수십 명 종을 거느리며 낙원을 만들어 놓았던 부용동이 있는 보길도, 한라산 산신령이 지리산 산신령 초대를 받아 가던 중에 쉬어 갔다는 산신바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며 소작쟁의가 치열했던 암태도 등 신안의 크고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옷자락을 잇대며 누워 있고, 또 서남쪽으로는 진도군에 속하는 유인도, 무인도의 수많은 사연들이 건너다 보이고, 또 남쪽으로는 추자군도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이 직선으로 늘어서 있고, 그 뒤 수평선 위로 거대한 꿈처럼 떠 있는 한라산이 건너다보이는 '여귀산'이 있습니다.
그 아래, 어느 때 조상들이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소나무숲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있습니다. 이름도 '죽림'이지요.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라고 읊었던 [관동별곡]의 정철이 이곳 섬마을 죽림에는 와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굽이굽이 구부러진 해안선 쪽으로 마을에서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마을 사람들 논밭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시앙골이라 부릅니다. '소외양간골'이 그렇게 발음되다 굳어진 것이랍니다. 썰물 때는 바닷가 바위들과 이어지다가 밀물 때면 섬이 되는 바위의 이름은 '소당바우'입니다. 소 여물을 끓이는 솥뚜껑 바위라는 뜻이지요. 또 마을쪽으로는 질마재도 있고, 똥꼬바구도 있습니다. '소똥꼬' 말이지요.
70년대까지 이곳 시앙골에는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이라고 좋은 디가 시상에 어딨어?" 라고 늘 말하던, 그래서 군대 다녀온 것 말고는 이곳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자칭 '시앙골 도지사'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첩이 출몰한다고, 독립가옥은 철거하라는 박정희 정부의 명령으로 집을 허물고 하는수없이 마을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금 '시앙골 도지사'의 음택은 시앙골을 한눈에 굽어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앙골 논밭이 끝나면 고동이든 톳이든 반찬거리를 해가는 갱변(바닷가)으로 이어지고, 산으로는 조상님들 계시는 선산이 있습니다. 약나무나 산나물을 해가는 산입니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우리 집은 바닷가 산 밑에 있습니다.
마을에 연을 잘 만들었다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십니다.
뒷산에 나무 하러 오셨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처음으로 우리집에 들어오셨습니다.
크지 않은 눈에 가늘게 초생달 같은 눈매를 만들며 웃곤 하시는 할아버지는 그날 우리집에 들어서며, 늘 그렇듯이 애써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으음! 색다른 분위기네."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분위기 타령을 하시는 게 재미있어서 말을 더 시켰더니 할아버지가 이으십니다.
"들리나니 파도 소리, 보이나니 만경창파...... 흥타령 사설만이로 아조 조용하네잉. 밤에는 불빛이 없어서 좋것소."
"예. 저 건너 구자도 불빛만 보이고 밤에는 깜깜해요."
"그랑께 좋제. 사람이고 짐승이고 작물이고 밤에는 잠을 자야 쓴디 아이, 인자는 이 시골에도 마을마다 그눔의 방범등 때문에 밤에도 훤하니 불을 켜놓은께 나는 아조 징해라우. 마당에 노란 빛이 훤한께 잠도 짚이 못 들고...... 새복에 짚은 잠 좀 잘락 하믄 차소리 붕붕 거리제 마을회관에서 스피커가 왕왕 찌껄여쌓제."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우선은 반갑습니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고, 없는 도둑 하나 잡으려고 달아놓았는지, 밤마실 다닐 길 밝히느라 그런 건지, 하여간에 방범등 때문에 잃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전에 전기 안 들어올 때 밤에 여그 시앙골 잔등으로 전깃불 귀경하러 왔었제. 태풍 올락 하믄 배들이 쩌그 수평선 위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떠 있단 말이시. 암치케도 그 자리께가 태풍 불 때 질로 괜찮헌 덴갑디다."
"예, 저도 봤어요. 여기하고 추자도 가운데쯤에 그렇게 배들이 늘어서서 환하게 떠 있데요?"
"그때가 은제였으까? 첨 전깃불 들왔을 때가? 진도대교 놓이기 얼마 전이었응께 한 팔십이삼년도나 되까? 암튼 알전구 불빛이 참 그때는 그라고도 신기했제. 전깃세가 비싸서 오래도 못 써놓고 밤에 뭣 좀 할락 하믄 서로 언능 불 끄라고 소리를 질렀제. 지금은 뭔 전기가 남아돌아가서 이라고도 밤새 불을 써 놓은가 참! 여가 도채비가 겁나게 나오든 덴디...... 글고 본께 밤에도 그라고 훤하게 불 써놓은 담부터 도채비를 못 봤네."
"여기가 도깨비가 많았던 데라고요?"
"그라암! 물때가 저녁 물때여서 여그 갱변에서 꾸죽이고 고동이고 잡다 나믄 까딱하다 어둑어둑해져서 도채비 땜시 고생한 사람 많었제."
"도깨비가 어떻게 사람을 고생시키는데요오?"
"아, 언제는 괴기를 솔찮이 잡어오는디, 그랑께 괴기망태기가 무춤하니 무거웠단 말이시. 아, 근디 이눔의 괴기망태기가 자꼬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는디, 카만 본께 도채비가 장난을 치니라고 괴기망태기를 자꼬 잡아댕기드란 말이시."
"도깨비가요오?"
"아, 내가 그전에도 도채비란 놈을 만내봐싸서 안디, 긍께 도채비였당께. 그때는 질이 이라고 좋았당가? 포도시 사람 한나 걸어댕길 만한 길인디 길옆으로 풀이 바짓가랭이를 잡어댕겨쌌고, 하이간에 도채비가 장난 칠라고 그란갑다 하고, 잡어오는 고기를 한나 떤져주믄 착 받는 소리가 나고, 그때는 또 금방 안 무거워져. 아, 그라다 또 쪼금 가믄 도저히 미고 올 수가 없을 맨치 또 천근만근이 되분단 말이시, 그래 또 한나 떤져주믄 또 착 하니 받는 소리가 나고는 또 안 무거워지고...... 아, 마을 보이는 쩌그 잔등까지 가는디, 아따 그때 일을 생각하믄...... 하이간 땀을 뻘뻘 흘림시롱 고기를 한나 한나 떤져줌시롱 집에까장 으치케 으치케 왔는디 오메, 집이 온께 그 많한 괴기가 한나도 안 남었드랑께. 집이 오자마자 기양 이불 뒤집어쓰고 울 각시 보듬고 오들들 떰시로 포도시 자고 인났는디, 사람들이 뭔 길바닥에 괴기가 떨어졌다고 뭐라고 해쌌드라고. 새복에 일찌거니 시앙골 넘어갔다 온 사람 말이 아, 여그 시앙골서 마을까지 괴기가 줄줄이 떨어져 있드라네."
"세상에!"
"그 많던 도채비가 다 어디로 가불었는가, 인자 도깨비도 없는 시상이 되야부럿네."
기나긴 겨울밤이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던 귀신 이야기며 도깨비 이야기를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할아버지 말마따나 마을마다 밤새 켜져 있는 방범등 때문인지, '넋 떨어진' 세상이 되어버린 때문인지 도깨비들은 세상을 떠버렸습니다.
밤에 나가 하늘을 보면 빛 한 줄기 없이 깜깜한 시앙골에도 마을쪽이나 읍쪽의 하늘은 벌겋게 떠 있습니다. 멀리서 하늘 위로 떠 있는 벌건 빛 때문에 이제 이 외딴 곳에도 칠흑 같은 어둠은 없습니다. 도깨비는 칠흑 같은 어둠이라야 살 수 있을 텐데, 이제 도깨비를 만나기는 글러버린 모양입니다.
병근이 집 앞에 들깨가 이상합니다.
병근이 아베는 젊어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도시 나갔다가,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더구나 그렇게도 팔팔하고 건장한 사람이 무슨 고혈압인가 하는 병이 난데없이 오는 바람에 도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고 있는 천상 농사꾼입니다. (고혈압? 촌놈이 도시 살다 보면 맨 혈압 오를 일 천지였을 것입니다. 고혈압 안 걸리는 것이 외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새벽이면 제일 먼저 들로 나오는 젊은이입니다.
"아니, 이 집 들깨는 왜 이 모양이여어?"
"아, 글쎄 이상하당께라우. 온 들이 다 비어가는디 이놈의 들깨는 깻잎만 이라고 오글오글 매달려 있고, 꽃도 안 피고."
꽃 진 자리에 줄줄이 매달려 있어야 할 들깨가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 왜 그러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보니 들깨 밭 위에 방범등이 보입니다.
"아하! 이 방범등 때문이여."
"머시라고라? 전등 때문이라고라우?"
"아이, 내가 전에 살든 디 근처에 깻잎 특산물 단지가 있었는디 거그 지나다 보믄 들깨 하우스들이 밤에 들판이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있드라고. 그라믄 들깨가 안 열리고 깻잎만 계속 무성하대."
병근이 아베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됩니다.
"아무리 그란다고 이라고 들깨가 안 열렸으까?"
"여기 보랑께. 여기 쪼로로 한 줄로는 들깨가 열렸잖은가? 이 줄이 뭔 줄이여? 전봇대 때문에 불빛이 가려진 데 아닌가?"
"아, 진짜로 그라구만이~ 시상에!"
"아이, 저 시앙골 가는 디 새로 생긴 방범등 때문에 그 밑에 논에 나락이 안 된닥 하등만."
"아, 불 켜 놓으믄 나락 안 되는 것이사 알제만."
"병근 아베 밤에 잠은 잘 자는가?"
"아, 나사 맨 쪽잠 자고 인나서 새복에 동터올 때까지 할 일도 없제 징하당께. 기달리다 기달리다 어짤 때는 하도 징해서 기양 깜깜한 디 일 나왔다가 밭에 있다보믄 그때 하늘이 삔해 온당께."
"저눔의 전등 땜에 더 그란 것 아녀? 아이, 그라고 들깨만이로 셋째가 안 생기는 것이 혹시......"
"아따, 벨 소리를 다허요. 참!"
"어짜든지 시바(셋째아들)든지 니바(넷째아들)든지 많이만 낳아. 다 못 키믄 내가 델다 키워줄텡께 잉!"
밤을 빼앗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의 나무들은 소음과 대기오염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밤에 푹 잠 잘 수 없는 빛 때문에도 더 맥아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아름다운 나무를 옮겨다 심어놓고 밤에도 구경시킨다고 불을 환하게 비춰놓은 것을 봅니다. 잠 안 재우는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심지어 목포에서는 유달산 전체를 조명시설로 밤새 비추고 있습니다. 목포의 밤하늘은 정말 기괴합니다. 또 시골에서도 가로등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동구의 당산나무들이 참 안쓰럽기 짝이 없습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언제부터 그런 어거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는지.......
시골에서 달빛은 쪽달이라도 발밑이 환하게 보입니다. 하물며 보름달은! 와아, 완전히 해입니다! 달빛을 받은 산과 들은 낮보다 훨씬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또 달빛이 없으면 별빛으로 먼 길을 다녔다고 했습니다. 달 없는 밤 올려다본 하늘의 은하수와 쏟아질듯 반짝이는 수많은 별.
칠흑 같은 어둠일수록 별은 빛나고 하늘은 가깝습니다. 지상의 모든 것을 까맣게 재우고 난 후에야 하늘이 제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별을 보고 천지기운을 읽고 앞날을 내다봤을 것입니다.
지상의 것들이 어둠에 잠기면 올려다 본 하늘이 외려 고향입니다. 내가 저기 어디 만큼에서 왔는지, 어느 별로 돌아갈 것인지, 시방 여기 와서 무엇 하러 살고 있는지, 저토록 반짝이는 하늘에서는 지금 내가 알 수 없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도 지상을 뜨면 어느 별에서 또다른 사연을 이어갈지......
해가 지상의 것들만 비추는 낮에는 보이지 않던 우주가 한눈에 보입니다. 우주에 티끌 같은 존재 하나가 우주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나 하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낮과 밤이 있는 것은, 그래서 하루 두 번씩 천지가 개벽을 하는 것은, 해가 비치면 지상을 돌아보고 해가 지면 하늘을 마주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사는 사람은 못된 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산에 나무가 그토록 푸르른 것은 아마 밤새 우주의 기운을 오롯이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별빛과 하늘의 기운을 듬뿍 받은 존재는 그 기운이 세상을 맑게 할 것입니다. 지상을 밝히고 우주를 밝힐 것입니다. 그 이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어려서 밤하늘을 보면서 외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별 하나 꽁꽁, 나 하나 꽁꽁
별 둘 꽁꽁, 나 둘 꽁꽁
별 셋 꽁꽁, 나 셋 꽁꽁
................................."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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