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은 길이 아니여!”
무슨 수학 명제 같은 말을 뱉으며 아저씨가 마루에 걸터 앉습니다. 우리 집은 아저씨가 사시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아저씨는 마을에서 동구를 나와 산 밑으로, 언덕으로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바닷가에 있는 우리 집에 오십니다. 아저씨는 마을에서도 잘 걷기로 유명합니다.
봄이면 길가에 움찔움찔 솟아오르는 새싹들이 반갑고, 찔레꽃 피어 있으면 모내기를 해야겠구나 하고, 자귀꽃 피어 있으면 팥 놓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시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발걸음은 언덕마루에 올라와 있습니다. 눈앞에는 이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아따, 바다 색이 조옸네. 오늘이 멫 물이제? 가만있자, 어지께 달이 밝았응께...... 아항, 일곱물이구나.'
'오늘 물때가 으치케 되드라?... 이따가 꾸죽 잡아다 시앙골네랑 막걸리 한 잔 하작 해야 쓰것다.'
그렇게 재미진 요량을 하다 보면 저절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당신네 밭에, 돼지막에, 갱번(바닷가)에 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일로 경지정리가 된 들논 한가운데 농로로 해서 오신 모양입니다. 해찰 부릴 거리가 궁하고,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처럼 한 방향으로만 이어진 길, 그러다 졸지에 툭 끝나 버리는 직선의 길이 지겨우셨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며칠 전 차를 타고 오면서 했던 생각이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야생짐승들이 차에 치어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날은 터널 안에서 죽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냥 빛을 향해 쭉 뛰어 갔으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그냥 쭈욱' 가면 됐을 걸, 그걸 못 하고 죽어 버린 것입니다.
군대에 갔다 온 것 말고는 평생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지금도 기름에 "튀긴"(후라이판에 구운)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는, 그야말로 천연의 인간, 아저씨의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터널 안에 죽어 있던 그 야생동물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에는 쫙 뻗은 직선은 없지요. 그에게는 직선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폭력적인 길이었구요.
사람도 그렇지요. 한없이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 위를 운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혼이 증발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다른 공간도 없이 그저 이 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순간, 정신이 위태로워집니다.
찔레꽃 피어 모내기를 끝낸 논을 보면 그야말로 예술이 따로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작으로 만들어놓은 거대한 행위예술 말입니다. 그 어린 아이의 웃도리 같은 연두색 모 포기들이 바람 따라 와르르 지르는 재잘거림에 감탄만 하던 눈이 어느덧 욕심이 생겼는지, 쫙쫙 그어진 직선의 논두렁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그러다 경지정리 되지 않은 논들을 보면 마음이 찰랑찰랑 좋아합니다.
어느 가난한 마을, 아직 경지정리 되지 않은 논들의 논두렁 선을 봅니다. 한 뙈기 논을 대충 흙무덤 경계만 만들어서 두 집이서 사이좋게 농사짓는 논도 보이고, 무슨 사연인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삐뚤빼뚤 만들어진 논두렁도 보입니다. 형편 되는 대로 그어놓은 그 경계들이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과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논에 꼽혀 있는 벼포기들은 어쩐지 더 순하고 착할 것 같습니다. 산비탈 다랑이 다랑이 논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 다랑이농에서 소를 얼르며 쟁기질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농사꾼들이 얼마나 일이 많은지, 이제 기계가 그 일을 대신해줘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쫙쫙 뻗은 논두렁으로 기계가 수월하게 드나드니 얼마나 좋은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고요? 배부른 예술가 폼 잡는 것 같은 소리라구요?
그게 그렇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농사를 짓는 일이 농사꾼들을 진짜로 살 만하게 만든다면, 나는 내 눈을 잡아 뜯어 고쳐서라도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할 겁니다. 근데 그게 아닙니다. 농기계는 대개 빚덩이고, 그렇게 해서 농약, 비료 팍팍 쳐서 무조건 많이 거둔 작물은 똥값입니다.
뺏어가는 놈들만 없으면, 나 먹을 것 내가 지어먹고 사는 농사가 제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뺏어가는 놈이 무서운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한 세상이 무서워졌습니다. 돈만 없지 필요한 것은 다 있는 것이 농사꾼들 살림이었습니다. 돈 만들기에 급급해진 농사꾼들은 이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황폐해져 갑니다.
들논에서도 트랙터, 콤바인, 때 되면 순서 기다려 농기계 가진 젊은이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또 돈도 솔찮이 들어갑니다. 빨리, 많이, 급하게 일하다 보면 골병이 드는 것이지 일하는 만큼 먹고, 하늘이 주는 만큼 먹겠다는 순한 마음이면 일은 일이 아닙니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이 일하는 것이지요.
"요새 뭔 재미로 살간디 통 얼굴을 안 비쳐?"
"재미는 뭔 재미. 일하는 재미로 살제."
그렇게들 대꾸하십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만나면 정말이지 세상이 환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세상이 금방 망할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있던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시골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보고 세상은 절대로 안 망한다고 희망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들에게 가난은 돈이 없을 뿐이지 모든 것이 다 있는 풍요로움이지요. 돈만 빼놓고 다 있는데 무슨 돈이 필요할까요?
(아?...... 예! 그렇다는 얘기지요. 아프면 병원에 가는 대신 뒷산에 가서 약초 캐다 먹으면 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도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 망한 자식이 있을 것이고, 손주들 세뱃돈 마련도 해야겠지요.)
기왕에 다랑이논에서 쟁기질 하는 소 얘기가 나왔으니, 소달구지 얘기 하나 더해야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산꼴짜기 마을 면소재지 장터에 소달구지를 끌고 오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별 장거리 볼 일도 없는데 할아버지는 닷새마다 열리는 장에 거르지 않고 나오시지요. 아침 먹고 달구지를 타고 나와 초등학교 담벼락에, 남들이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선 하나를 차지하고 소달구지를 주차(?)시켜 놓습니다. 장볼 일이라고 해봐야 금방 끝나고 맙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바쁩니다.
시골 장터는 그야말로 '사회적 장'이고 축제마당입니다. 어디 마을에 누구누구네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더라, 어느 마을에 누가 간밤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더라, 온갖 소식을 나눕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얼굴마다 반갑고, 아직 살아 있어 안심입니다.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장날이면 문을 여는 막걸리집을 찾습니다. 이제 부끄럼도 안 타고 홀짝홀짝 막걸리를 잘도 마시는 이웃 마을 할매랑도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렇게 막걸리와 주모가 내준 공짜안주로 배를 채우고 종일 막걸리집을 오가는 사람들 다 댓거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파장입니다.
장터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썰렁해집니다. 폴쎄 취한 할아버지, 이제 하릴없어 비틀비틀 학교 담벼랑에 주차해놓은 달구지한테로 갑니다. 소는 여전히 눈만 꿈쩍거립니다. 하루종일 그 자리에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끄응, 달구지 짐칸에 올라탄 후 그대로 뻗으십니다. 고삐도 없는 소는 저 혼자 알아서 느릿느릿 발걸음을 떼기 시작합니다. 집에 가면 여물은 배불리 주실랑가, 소는 할아버지가 아침에 몰고 오셨던 길을 따라 천천히 걷어갑니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달구지 뒤에서 잠이 듭니다. 소는 잠든 할아버지를 싣고 이랴! 소리도 없이 혼자서 잘도 갑니다.
다음 장에도 또 나온 걸 보면 소가 길을 잃어 집에 못 간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번 술 취해 잠들고, 집에 도착하면 누가 깨워 방에다 눕힐까요? 할멈은 계실까요? 집에 다 오면 할아버지는 저절로 일어나는 건 아닐까요?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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