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사람 몫이지 자연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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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사람 몫이지 자연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 장진희
  • 승인 2022.10.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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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7 - 무주에서: 파괴의 힘, 복원의 힘

백두대간 등줄기를 따라 내려옵니다. 대체로 동쪽은 산맥이고 서쪽은 들입니다. 산골에도 사람이 살고 들에도 사람이 삽니다. 길은 사람살이를 이으려고 나는 것이지요.

해발 800미터가 넘는 산등성이 줄기줄기마다 길이 뚫려 있습니다. 한참을 오르고 내려도 마주치는 차 한 대 없습니다. 그런 길을 만들기 위해 이 산, 저 산, 이 줄기, 저 줄기 인정사정없이 깎고 뚫고 벗겨 놓았습니다. 이제 깊은 산맥 어디고 상처 입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멀쩡한 도로를 옆에 두고 좀 더 빨리! 좀 더 편리하게! 외치며 산이고 강이고 문화재고 가리지 않고 직선으로 쫙쫙 그어 새로 만듭니다. 수십억 들여 만들어 놓은 도로를 자동차가 하루 몇 십대(?) 이용하는 곳도 있다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도로가 너무 많다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 돈도 많습니다. 백성들은 돈 때문에 목을 매는데, 부쩍 하루가 멀다 하고 방방곡곡에서 비보가 들려오는데, 나랏님은 무슨 돈이 그리 많은지 사람 살리는 데는 가물고 산하를 작살내는 데는 홍수가 났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최근 들어 팔십 평생 살아온 노인들이 처음 당해본다는 홍수가 여기저기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강 하류에서 홍수가 나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 마을에서 홍수가 나서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과 마을회관을 덮치는 것입니다. 산골 마을에서 큰물이 져서 사람이 죽어 나간 이유를 노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위 산을 까제껴 놓아서 그려. 산이 아니라 벌거숭이 흙이 되어 놓응게 비를 품지도 못하고 그쪽으로 물이 몰리고...... 큰비 오믄 흙이 떠밀려와 계곡을 막고 나무뿌리가 통째로 들려서 떠내려오다 물을 막으니, 이 산골에 기양 흙더미고 나무뿌리고 그 위로 물이 넘치다...... 순식간이야, 물하고 흙하고 나무뿌리하고 한꺼번에 달라드는디, 아, 무섭당게!"

"아, 물이 거꾸로 서서 달려오드랑게!"

"뭔 놈의 수종개량 한다고 한꺼번에 산에 나무고 잡목이고 다 비어내고 어린 나무 심고... 그 나무들이 자라도 그렇지, 그것도 뿌리가 약하디약한 놈으로 심어놨으니 큰물 지믄 그냥 통째로 떠내려오는 것이제."

"하여간 가만 놔둔 디서는 사고가 안 난디 건드려 놨다 하믄 문제여. 뭐 한다고 그렇게 파제끼고 갈고 난리를 피워서 시상에,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느냐고오! 나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랑게!"

계곡과 하천도 그렇습니다. 4대강 삽질도 억 소리가 나는데 강이 아니라 산골 깊숙한 하천이고 계곡이고 '하천정비'를 내세워 삽질이 끊이지 않습니다. 포크레인과 덤프 트럭 업자들만 살 판 났습니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수초도 자라고 멋대로 강돌도 굴러다녀야 큰물이 져도 그런 것과 닿아 한꺼번에 쏠리지 않고 물의 힘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하천정비를 한답시고 강둑을 일자로 시멘트로 발라놓고 자연 그대로의 수초가 깔끔 떠는 눈에 가시라도 되는 양 다 긁어 평평한, 무슨 고수부지를 만들어 놓으니 물길은 거리낌 없이 쏜살같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것입니다.

수초와 바위틈에서 살던 다슬기도 그것을 먹이로 하는 반딧불이도 물고기도 세상을 떴습니다. 그것들 잡아먹고 같이 살던 사람들도 이제 강과 격리되었습니다.

원래 강의 영역이었던 데를 축대 쌓아 길을 만들고 고수부지를 만들어서 물이 불어 넘치면 자연재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해놓은 대로라면 자연은 큰비를 내릴 권리도 없는 셈입니다.

복지예산은 기갈 든 지자체들이 그런 돈은 남아돌아가 아름답기 짝이 없는 계곡의 돌들을 파제껴 실어다 고수부지 환경정리 시키고, 산을 폭파시켜 캐온 네모 반듯한 석축돌로, 시멘트로 강둑을 더 미끈하고 더 높고 더 단단하게 쌓습니다. 그럴수록 물의 힘은 더욱 세져서 그 다음해에는 더욱더 큰물이 집니다.

우리 강토, 우리 산하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어거지를 부려서 찢고 부수고 막고 거덜내는 꼴에 눈물이 납니다. 기운이 다 빠지고 희망이 절벽인 것 같습니다. 이른바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가는 데마다 보이는 것마다 열 받다가는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습니다.

어느 깊은 산골 마을, 거기서도 이미 차 다닌 흔적이 끊긴 산길로 들어갑니다. 산 하나가 반쪽이 잘려나간 곳에 다다릅니다. 몇 십 년 전에 광산이었다가 폐광 된 곳이 있다더니 이곳인 모양입니다. 잘려나간 산 밑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 절망은 사람 몫이지 자연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산은 반쪽이 잘려나간 채 깎아지른 절벽 틈으로 나무도 키우고 꽃도 피우고 물도 흐르게 하고 온갖 새와 물고기도 살게 하고...... 상처 입은 흔적은 내색도 하지 않고 그대로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근처에서는 보기 드문 절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파괴해 놓은 산을 세월의 손으로 명작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이 포크레인으로 긁어놓은 채 방치해 놓은 땅을 보면 제일 먼저 칡이 자리 잡습니다. 칡은 덩쿨을 뻗어 손 닿는 데까지 땅을 덮습니다. 풀씨 하나 품고 있지 않은 맨흙이 드러난 땅, 칡은 멀리서라도 날아온 풀씨 하나 살려내지 못할 깡마른 땅을 덮어 우선 땅이 마르지 않게 있는 힘껏 살아주는 것입니다.

농사 지을 때, 아무리 잘라내도 가지 끝 손톱만큼이라도 땅에 닿으면 도로 살아나 버리는 징글징글한 찔레도 제 역할이 있었습니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일수록, 사람이 긁어놓은 땅일수록 칡이나 찔레나 덩쿨 식물이 기운차게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월이 가면, 세월만 가면 도로 풀도 자라고 나무도 자라고 산이 되고 자연이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으와! 드디어 절망을 버려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파괴해 놓은 동안 인간이 절망적인 것이지. 세월만 있으면 자연은 절망할 것이 없습니다. 그 세월 동안 인간이 손해를 보는 것일 뿐이지요.

강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문제지 언젠가는 강둑도 무너지고 고수부지도 뭉개집니다. 무너지고 뭉개지는 대로 자연의 손에 맡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것입니다. 인간이 버틸수록 인간 손으로 만지작거릴수록 세월만 잡아먹고 그만큼 손해보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파괴의 힘이 세다고 해도, 자연이 가진 복원의 힘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삽질을 보고 그 어리석음에 여전히 분기탱천하지만 이제는 명대로 못 살 만큼 내 속을 갉아 먹지는 않습니다. 다만 같이 값을 치르고 있을 뿐이지요.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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