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마다 텃밭에 나간다. 배추를 심기 전 텃밭은 풀만 무성했고 한 쪽엔 직경 3m에 높이 2m 이상으로 흙이 쌓여 있었다. 흙무덤은 하천에서 퍼 온 것이라 억세와 환삼덩굴이 무성했다. 삽 한 자루에 의지해 흙무더기를 외발수레로 여기저기 옮겨 평탄작업도 하고 집 현관 앞에 2평 남짓한 텃밭도 만들었다.
흙무덤이 있던 자리는 조금씩 낮아져 원형으로 50cm 높이로 낮아졌다. 텃밭을 위해 평탄작업을 하고 텃밭의 두둑을 올렸다. 원래 땅은 진흙이고 쌓아둔 흙은 모래흙이라 농사를 위한 흙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계분과 산흙을 퍼와 삽으로 섞어주었다.
땅모양에 따라 일직선으로 두둑을 만들려고 하니 너무 심심한 것 같아 텃밭정원이란 개념을 가져와 모양을 만들었다. 도화지에 아이들 그림을 보면 위쪽 모퉁이에 해를 그리고 빛이 비치도록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생활하는 곳에서 좋은기운이 세상으로 뻗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텃밭모양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양을 만들고 텃밭 작물을 심기 위해 흙을 고르다 보니 난관을 만났다. 모래흙 사이로 억새가 있었다. 쇠그랑으로 긁어내었다. 그것도 한무더기가 되었다. 이렇게 텃밭을 만드는 과정만 1달 이상이 걸렸다.
무엇을 심을까 고민을 하다 배추를 심기로 했다. 초록색 배추만 심는 건 심심해서 브로콜리, 비트, 붉은 배추도 몇 포기 구입했다.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원형 두둑에 브로콜리, 비트, 붉은 배추와 초록 배추를 같이 심어 다양성을, 원형을 감싸고 있는 4개의 두둑에 각각의 작물을 심어 개체성을 표현했다. 혼자 심는 것보다 어린이집 친구들의 힘을 빌어 같이 배추를 심었다.
나보다 배추가 나를 더 걱정하는지 배추는 잘 자라준다. 하지만 배추잎에 구멍이 조금씩 뚫린다. 벌레들이 먹기 시작한것이다. 매일 벌레들과 술래잡기를 한다. 배설물을 따라가면 녀석들을 만난다. 자비심이란 눈곱만큼도 없이 녀석들을 제거한다. 인과응보다. 녀석들도 무자비하게 배추를 먹어치우기 때문이다(이건 순전히 내 합리화다).
텃밭을 가꾸면서 매일 확인하는 것이 있다. 날씨다. 날씨에 따라 물을 관리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날씨만 살피다 전국의 날씨도 함께 본다. 태풍소식은 내 나라를 넘어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보게 한다. 텃밭농사를 위해 날씨를 살피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게 된다.
주변에 과수농사를 짓는 분들이 있다. 복숭아 농사는 수확하고 출하를 마쳐서 올해 농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된다. 퇴비를 뿌려 땅을 가꾸고 내년 농사를 계획한다. 가지를 쳐주고 병충해를 대비하기 위해 방재를 한다. 내년 농사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일에 쫓기게 되고 결과물도 좋지 않다.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특별히 과수농사는 병충해와의 싸움이 크다. 올해 기온이 높아 병충해 중 병보다 충(벌레)이 많아졌다고 한다. 기온이 높은 날이 많아졌다는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큰 것 같아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한다. 한 그루의 복숭아를 키우면서 지구 전체를 바라본다.
대학을 읽으면 첫 장에 이런 말이 있다.
物有本末(물유본말) 事有終始(사유종시)
知所先後(지소선후) 則近道矣(즉근도의)
물(物)에는 근본과 말단(本末)이 있고,
일에는 종말과 시초(終始)가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있다. 농사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이란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자연을 살피는 농사를 하면 근본과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내 작은 텃밭정원에 심은 배추 한 포기를 돌보며 벌레가 많아지는 이유와 날씨의 변화를 추적하다 보면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시대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공동체 모두의 문제다. 조금더 근본을 찾아가면인간의 상상력에 기인한 고통에 대한 공포와 염려다. 그래서 성서는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수확하면서도 내일 먹을 음식을 쌓아두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에 수신제가 제가치국 치국평천하(修身齊家 齊家治國 治國平天下)란 말이 있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뜻이다.
배추 한 포기를 기르면서 이 말의 참뜻을 깨닫는다. 배추 한 포기를 잘 기르려면 환경을 잘 가꾸어야 하고 환경을 잘 가꾸면 지구공동체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반대로 기후위기는 지구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배추 한 포기 가꿀 수 없게 된다. 배추 한 포기를 가꾸며 세상을 보게 되는 아침이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어촌선교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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