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에 나는 학교를 다녔다. 생일이 빨라 일 년 빨리 학교에 입학했다. 뭐가 뭔지 모른 상태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거다. 물론 나보다 한 살 더 먹었다고 해서 세상이나 학교를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꿈 속을 헤매듯 학교와 집을 오갔던 것 같다.
체육시간이면 달리기를 했다. 달리기는 늘 등수를 매겼다. 1등, 2등, 3등… 1등을 하면 모두가 좋아한다. 운동회에서 1등을 하면 상품도 좋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1등이 되고 싶어 열심히 달리고 달렸지만 6년을 다니면서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 운동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부도 재능이 없어 중간에서 약간 더 위인 수준이었다.
학교는 1등과 상위권만 칭찬했다. 그 안에 들지 못하면 벌을 받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성적이란 등수에 따라 누구는 칭찬을 받고 누구는 벌을 받는다면 당연히 1등 언저리에 있을 때 재미도 있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나는 늘 자신감이 없었고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뚜렷한 기억이 하나 있다. 수업을 마치면 교실 청소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섬길 때 하느님은 기뻐하신다는 설교를 기억하고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이 칭찬하면서 “너는 청소부를 하면 잘 하겠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칭찬을 받아 좋았지만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그 말이 정말 칭찬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오늘 사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직장과 직위를 얻어 소득수준을 높이고 부를 늘려 다른 이들의 서비스를 받는 삶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학업이란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실적이란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타인을 밟고 일어서는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다. 이런 방식은 자기가 알던 모르던 타인에게 폭력, 약탈, 살인, 차별을 일삼는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리자는 없다. 승리자는 또 다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누구를 위한 승리이며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오늘 옥바라지선교센터와 함께 하는 황푸하의 노래집 <함께 부르기>를 받았다. 그의 노래집은 곡을 쓰게 된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 묶여있어 더 깊은 감성으로 노래를 듣고 부르게 된다. 그의 노래를 한 곡씬 찬찬히 듣던 중 한 노래가 나를 잡아끈다.
위대한 패배
우리들이 정복한 건 얼마나 작은 것들 뿐이었나
우리들과 씨름한 건 얼마나 거대했던 분이었나
나는 당신을 이기지 않겠소
영원한 것을 사랑할 뿐이오
나는 당신을 이기지 않겠소
내가 진정 바란 건 오직 위대한 패배
우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
우리 사회에서 위대한 패배가 존재하나? 승패를 나누는 경쟁의 목적이 나 자신에게, 또는 내가 속한 동아리가 볼 때 무가치한 것이라면 위대한 패배는 가능하다. 그런 게임에서 승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치관에 따라 게임의 법칙은 뒤틀리고 왜곡된다. 그리스도교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나? 자본주의라는 게임의 법칙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은 공존할 수 있을까? 승자독식은 성경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와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부정적 대답을 내놓는 것이 그리스도교라면 우리는 위대한 패배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위대한 패배>란 곡에 대한 설명 끝에 황푸하는 릴케의 시 하나를 인용한다.
“우리가 얻으려 애쓰는 것, 그것은 얼마나 하찮은가, 우리를 손아귀에 쥐려 하는 존재,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가!”(릴케의 시)
우리가 이제껏 정복한 것들은 무엇인가. 땅, 국가, 권력, 명예, 자본….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찮다는 시인의 시선 하나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가치들은 하느님 나라라는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진다. 이런 관점에서 패배는 위대할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는 위대한 패배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대로 간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어촌선교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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