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에 들어갈 밥은 내 힘으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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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뱃속에 들어갈 밥은 내 힘으로 만들어야
  • 이원영
  • 승인 2022.05.2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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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이원영
사진=이원영

날이 뜨거워지기 전, 집 주변을 정리했다. 대청소는 아니고 흩어진 쓰레기를 줍고 정리했다. 다음주까지 비 소식이 없어 배추, 상추, 양배추, 파 등이 심겨있는 이랑에 물을 줬다. 주말에 오는 집주인은 한쪽에 자기 밭을 만들고 몇 주를 오지 않는다. 밭에 물을 주지 않아 같이 줬다.

감자꽃을 따주면서 밭을 둘러본다. 작년에 비해 풀이 적다. 비가 오지 않으니 풀도 덜 자란다. 꽂아둔 불두화가 시들어 작약으로 교체했다. 붉은 꽃이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밭에서 쌈채소를 조금 뜯었다. 비빔밥으로 먹으려다 비빔국수로 먹었다. 쌈이 씹히는 느낌이 아삭하고 맛은 고소하다. 국수에 들기름을 부었지만 기름맛이 아니다. 밭에서 자란 열무를 수확한 후 아내가 담은 열무김치는 맛이 담뿍 들었다. 자연에 감사하게 되는 밥상이다.

요즘 <임원경제지>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임원경제지>는 풍석 서유구가 쓴 책이다. 서유구는 경기도 파주 장단에 살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경학에 능통하고 벼슬에 올라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정조가 죽고 정치적 모략으로 작은 아버지와 그의 친족이 유배와 죽음을 당할 때 귀향하여 경제적 자립을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임원경제지>는 113권 54책, 원문 252만7천여 자 분량이다. 사서의 약 40배 분량이라고 한다. <임원경제지>는 농사와 더불어 요리, 식물분류, 가축, 문화예술, 집짓기, 의학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풍석문화재단에서 이 책을 모두 번역하고 있는데 모두 구입하려면 150만원이란 돈이 든다. 욕심이 생긴다.

귀농을 계획하고 유기농과 관련된 서적을 읽는데 대부분 외국 저자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피에르 라비, 루돌프 슈타이너, 웬델 베리, 후쿠오카 마사노부, 스콧 니어링을 뛰어넘는 스승임을 알게 되었다. 임원경제지를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할 지속가능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책에서 마음에 닿는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본다.

내 뱃속에 들어갈 밥은 내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입을 옷은 집안의 아녀자가 공급해야 한다. 천지가 사람을 키우는 공에 내가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천지간에 떳떳한 대장부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많은 이들에게서 배움을 얻었지만, ‘검소’와 ‘염치’를 체화하라는 어머니 한산 이씨의 교훈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한 덕분이기도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늘 낭비를 경계하고 염치를 알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께서 금화산장에 계실 적에, 나는 채소밭에 물 주고 밭 갈아 아침저녁을 올려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밥을 대할 때면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득 차린 음식이 모두 자네 열 손가락에서 나왔구먼. 어릴 적에 나는 부친 충정공께서 땅에 떨어진 밥알을 보시면 반드시 깨끗이 닦아서 입에 넣으시는 걸 보았다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이 쌀알 하나에 농부의 몇 움큼 되는 땀이 들어갔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느냐?’ 요즘 자네 손에 못이 박인 걸 보니,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더 잘 알겠네. 저기 도성에 살면서 눈으로는 쟁기나 보습이며 가래나 호미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배에는 곡식 채우고 몸에는 비단 두르려는 이들이 어찌 천지를 훔치는 도적놈이 아니겠는가?”

40대 중반에 낙척한 풍석은 손에 못이 박히도록 손수 농사를 지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손이 얼마나 많이 갔는지, 그러니 쌀 한. 톨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설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테지만, 농기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베틀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누리려고만 했던 당대 도시 양반들의 풍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산 이씨는 이런 부류를 자연이 만들어놓은 산물을 훔치는 도적놈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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