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우리 손님들은 말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을 안 한다기보다는 아마 말을 못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입니다. 우리 손님들은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하면 지칠 줄 모르고 떠듭니다. 술에 취하면 제발 자기 말을 좀 들어달라고 애걸합니다. 맨 정신으로 국수집을 찾아올 때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도 잘 못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 여섯 개입니다.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빈자리에 앉습니다. 스물네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식당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식사하는 모습과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절입니다. 스님들께서 발우공양을 받으실 때의 분위기와 같습니다. 조용합니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곤 수저 움직이는 소리뿐입니다. 말없이 먹고 말없이 그냥 돌아갑니다.
우리 손님들은 함께 거리에서 노숙하면서 매일 얼굴 보고 함께 지내는데도 동료들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야”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적발달장애인 것 같았습니다. 호적도 없습니다. 주민등록증도 없습니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부를 때 “야”라고 부른답니다. 그것이 자기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은 없는 존재입니다.
아주 오래 전입니다.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제자교육을 받았을 때입니다.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손에 십자고상을 들고 맨발에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오는 프로그램입니다. 미친 사람처럼 십자고상을 들고 맨발로 거리를 다니는 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합니다. 없는 존재였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바로 없는 존재인 투명인간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손님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하는 행위는 무척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손님들은 어느새 자기 존재감을 잊으면서 홀로 설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손님들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할지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게 되고, 서서히 살아갈 의욕을 얻게 됩니다.
먼저 이름을 부르고 먼저 말을 건네고 먼저 인사하면서 손님들의 얼어버린 입술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좋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손님들이 말 하는 것을 연습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손님들이 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간단하게 소감을 말하면 용돈 삼천 원을 드립니다.
2009년에 민들레희망센터를 열면서 베로니카께서 한두 시간 센터에서 상담 봉사를 했습니다. 손님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만 원 또는 이만 원을 도와줬습니다. 소문을 듣고 많은 분들이 왔습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입니다. 손님들이 책을 읽고 공책에 간단하게 소감을 적어서 정한 시간에 발표하게 합니다. 그리고 격려의 박수를 치면서 독서 장려금으로 삼천 원을 드렸습니다. 삼천 원은 노숙하는 이들에게는 큰돈입니다. 몇 시간 전철에서 헌신문을 수집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이 돈이 있으면 만화방에서 밤을 지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용돈은 받고 싶지만 발표가 어려운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심하게 떠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을 물리치고 단 둘이 되었을 때 겨우 발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차츰 발표를 재미있어합니다. 꼭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손님이 말하기 시작하면서 별 다른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일자리를 찾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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