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보다 밥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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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다 밥을 먼저
  • 서영남
  • 승인 2022.03.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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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2000년 11월에 겁도 없이 25년 동안이나 재미나게 살았던 수도원에서 나와서 어쩔 줄 모르고 거리를 헤매다가 동인천역을 지나다니면서 배고픈 사람들이 비참하게 길거리에서 줄을 서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그릇의 밥을 먹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줄 세우는 사람들의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고 설교하고 그것도 모자라 길게 기도까지 한 다음에야 다 식어버린 밥을 먹게 하는 가슴 아픈 모습을 보았습니다.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설교를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아팠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이루셨을 때 배고픈 사람들에게 깍듯하게 사람대접을 하십니다. 모두들 둘러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앉아서 식사하도록 따뜻하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십니다. 

출소한 우리 형제들이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덤으로 거리에서 주린 배를 채우는 분들에게 한 그릇의 밥보다 사람대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 내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이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언제든지 차와 커피도 돈이 없어도 마실 수 있도록 2003년 4월 1일에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내어 놓은 소년처럼 저도 가진 것을 전부 털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삼백만 원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배고픈 사람이 많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어 넘쳐난다는 데도 배고픈 사람이 많은 이유는 나눔이 불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충분한 물질이 주어져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나누어 가진다면 물질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픈 사람이 많아지면서 필요에 따라 나누지 못하고 힘대로 가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들과 대립들, 경제적인 문제들과 갈등들은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바로 나눔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별 것 없다는 우리의 삶을 이웃과 조금씩 나누기 시작할 때 해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식사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로 가지 않는 눈칫밥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보통 음식점처럼 일반요식업 등록을 했습니다.

예산도 없이 다만 착한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해 나아가는 민들레 국수집입니다. 커지기보다는 작게 나누었습니다. 민들레의 집, 민들레 꿈 공부방,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민들레 책들레, 민들레 가게, 민들레 희망센터, 민들레 진료소,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장학, 필리핀 다문화 모임, 교정사목, 민들레 포장마차로 작게 나누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 문을 연지 어느 새 19년째입니다. 2022년 4월 1일이면 20년째가 됩니다. 놀랍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처럼, 하느님을 쏙 빼 닮은 것처럼 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사실 물질적으로 빈곤하다고 해서 가난한 게 아니라 물질보다 하느님을 더 우위에 두는 것. 우선순위에 두는 것. 명예나 권력, 돈보다도 하느님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 살 때 가난한 사람이 되고 하느님을 만나고 행복하게 살게 되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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