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피터 클레버 , 극도의 악행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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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터 클레버 , 극도의 악행을 바라보며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3.0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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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성 피터 클레버 2

16세기가 종교와 과학의 혁명시기라고 정의된다면, 17세기는 팽창의 시기였다. 신세계는 새로운 필요를 의미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정착자들이 새로 정복한 땅을 경작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금광과 은광에서 일할 일꾼들도 필요했다. 정착자들은 먼저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눈길을 돌려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만들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탄광의 섬뜩한 환경 속에서 강제로 노역을 시켰으나, 곧 이들이 보통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여건의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착자들은 대신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당시 성행하고 있었는데, 찰스 5세 황제 같은 군주들이 노예무역을 추진하고 이윤을 취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신참 정착자들이 뒤를 따랐고 그들은 기니아, 콩고, 앙골라 등 서아프리카 해안으로부터 노예 노동력을 얻어내었다.

서아프리카의 노예상들은 노예를 붙잡거나 두 당 4 크라운씩 주고 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노예 1명당 보통 200 크라운을 받고 팔았다. 이 엄청난 이윤은 대부분의 노예상들이 어떤 노예의 건강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많은 노예들이 신세계로 오는 배 안에서 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어도, 여전히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노예상들에게, 노예들은 버릴 수 있는 물건이었고 이윤의 열쇠가 되었으며,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 아니었다.

대서양을 건너는 여정은 수개월이 걸렸고, 노예선 위의 조건은 말할 수 없이 더러웠고 비인간적이었다. 노예들은 하루 종일 쇠사슬에 서로 묶여 있었고, 음식과 음료가 조금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방출하는 오물이 사방에 깔려서 질병이 창궐했다. 노예선이 매번 항해할 대마다 약 1/3의 노예들이 운송 도중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터가 카르타헤나에 선교를 위하여 도착했을 즈음에, 이곳은 번창하는 항구 도시로서 신세계의 대표적인 노예시장이 되어 있었다. 만 명씩의 새 노예들이 매년, 대부분은 서아프리카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가톨릭 지역민들은 그들의 교회가 공개적으로 노예무역을 고발했어도 값싼 노동력을 환영하였다. 바오로 3세와 우르반 8세 등 교종들은 격렬하게 노예 제도를 단죄하였다 – 우르반 교종은 이 제도를 “극도의 악행”이라고 외쳤으나, 돈이 벌리는 이 사업은 계속 번창해 나갔다.

이런 상황은 지역의 사제들을 무기력하게 느끼도록 했다. 노예선이 계속 도착할 때에, 사제들은 간청했고 더 나은 인간적 조건들을 외치며 항의했다. 이에 거의 모든 노예 주인들은 그들의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는 식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노예들은 성사에 관하여 거의 아무런 종교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세례가 곧 억압이 되었다. 그들에게 세례는 또 다른 굴레였다. 뜨거운 철의 굴레 대신 찬물로 족쇄를 차는 일이 되었다.

피터는 카르타헤나에서 초기 수년을 보내는 동안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는 노예무역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지 깨달았고, 이것을 멈추기 위하여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심했다. 이 거대한 불의를 진압할 수는 없어도, 노예들의 존엄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적어도 고통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느꼈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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