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륭한 업적을 이룩했지만 아무런 갈채를 받지 못한 성인들에게 늘 매력을 느껴왔다. 그래서 오늘날 그다지 잘 알려있지 않지만, 교회와 세계에 심오한 영향을 끼친 피터 클레버(Peter Clever) 같은 성인들을 경탄해 마지않는다.
피터는 1580년 6월 25일,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피터에게 겸손과 순종의 모형이 되었고,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행위도 하느님을 위하여 한다면 그분이 보시기에 위대한 행위라고 아들에게 강조하였다.
그들의 모범은 피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바르셀로나의 예수회 경영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피터는 공책에 이 말을 적어놓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노예라고 생각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나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런 말이 앞으로 얼마나 예언자적인 말이 될지 그는 거의 알지 못했다.
20세에, 대학교에서 학위를 얻은 후, 피터는 예수회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는 1602년에 입회했다. 그리고 나서 수련소에서 3년을 공부한 후, 그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마요르카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피터는 그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마요르카에 살고 있었던 문지기 알폰수스 로드리게스로, 단순하나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는 문을 지키고, 심부름을 하고 자선품을 분배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예수회의 엄격한 학문요건을 갖추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적인 측면에서 알폰수스는 부족했지만, 그것을 신심으로 보충했다. 사람들은 이 문지기에게 영적 인도와 특별한 예언을 구하려고 몰려들었다. 예수회의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알폰수스가 예수회의 수사나 신부의 자격에 못 미친다면, 그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회에 입회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처럼, 피터 클레버도 이 거룩한 문지기에게 끌렸다. 알폰수스는 피터의 부모가 가르쳤던 수많은 똑같은 덕들을 그에게 가르쳤는데, 예를 들면 복종과 애덕 따위였다. 어느 날 피터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알폰수스는 예언으로 피터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피터가 북아메리카의 스페인 영역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그곳에서 피터는 수많은 영혼들을 섬기고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피터는 놀랐으나,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언제나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고 신세계에 복음 전파를 한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래서 그는 가기로 결정했다.
1610년 4월, 피터는 선교를 위하여 항해에 올랐다. 수개월의 힘든 여행 끝에 그는 지금의 콜롬비아인 카르타헤나에 도착했다. 그는 조국 스페인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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