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운 성인들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마더 데레사도 이 생명의 일에 자기를 바쳤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존엄하게 대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더 데레사는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첫 번째로 중요한 주제인,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의 모범이 된다.
1910년 출생 때부터, 아그네스 보야지우(마더 데레사)는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 사회가 무시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까지 존경하도록 양육을 받았다. 매일 밤 아그네스의 어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식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특히 절망에 빠진 여성들을 환영하였다. 돌볼 사람이 없는 나이든 과부들, 거처할 곳이 없는 노숙 여성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은 미혼모들 등. 아그네스의 남자 형제는 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절대로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이상하게 쳐다보면, 이렇게 말씀하곤 했죠, ‘비록 우리와 피를 나눈 친척들이 아니고, 비록 가난해도 그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이러한 방문객들을 통하여 아그네스는 처음으로 “가장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한 예수님”을 발견하였다. 마더 데레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가치 있게 보게 된 것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거나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며, 그들의 직업이나 경력,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모상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존엄성은 그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을 닮아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1700항). 이처럼,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남자와 여자는 거룩한 모상을 담고 있기에 자기 안에 헤아릴 수 없는 존엄성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자주 마더 데레사가 왜 그렇게나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존엄성을 존중할 수 있는지 물었다. 대답할 때에 마더 데레사는 그들의 손을 잡기를 좋아하면서, 천천히 한 손가락씩 흔들며 설명한다; “너는 내게 그것을 한 것이다.” 그의 마음은 복음 전체를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마더 데레사는 예수님이 최후의 심판에 관하여 가르치는 마태오 복음 25장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세상 종말에 우리의 주님은 사람들을 그들의 애덕 행위에 따라 심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친절하고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너희들은 오너라 …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너희는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였을 때 나를 환영해 주었고, 벌거벗었을 때 나를 입혀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나를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있을 때 나를 방문해 주었다.” 그러나 그분의 놀란 청중은 묻는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굶주린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으며, 목말랐을 때 당신께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예수님은 대답한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보잘 것 없는 형제 중 한사람에게 한 모든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마더 데레사에게, 이 구절은 단지 신심적인 비유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을 묘사하는 구절이었다. 그의 전염되는 기쁨과 무한한 연민의 비밀은 모든 사람 -모든 마비된 사람들, 모든 나병 환자들, 모든 병약한 사람들, 모든 고아들–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에 있었다.
어떤 힌두교인 남성이 한번은 마더 데레사에게 접근하면서 그와 마더 데레사 둘 다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데, 차이점은 그와 동료일꾼들이 어떤 것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는 반면 마더 데레사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연민이 넘치는 이 수녀는 사람들을 단지 “해야 할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니었다. 수녀는 사람들을 도왔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더 데레사의 ‘아이들의 집’에서 하는 매일 기도
가장 사랑스러운 주님, 제가 오늘과 매일 당신의 아픈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그들을 돌보고 당신께 데려가는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 그렇게 해 주십시오.
비록 당신이 성급한 이들, 가혹한 이들, 비이성적인 이들 같은 아름답지 못한 모습 속에 숨어 계셔도, 제가 여전히 당신을 알아보고 “예수님, 나의 환자시여, 당신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가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 이렇게 보는 신앙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저의 일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환상을 쫓아가지 않고 모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소망을 채우는 일에서 언제나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 사랑스런 병든 이여, 당신이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표현할 때에 그 모습은 나에게 얼마나 두 배로 사랑스러운가요! 그리하여 당신을 돌보는 일이 저에게 허락되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요!
가장 다정스러운 주님, 모든 고결한 소명의 존엄성과 그 수많은 책임들을 제가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 소명을 차갑게, 불친절하게, 혹은 성급하게 수행하여 불명예스럽게 하는 일이 결코 저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 하느님, 당신이 예수님으로서 나의 환자일 때에, 모든 아픈 이들 속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만이 오로지 저의 뜻임을 보시고, 저의 부족함을 참아주시는 나의 환자 예수님이 되시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믿음을 크게 해 주시고, 저의 노력과 일을 이제와 영원히 축복해주십시오. 아멘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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