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동안, 나는 가끔씩 인근에 있는 호숫가에서 노숙남녀들과 모임을 갖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했는데, 보통 음식을 좀 가져갔고 그러면 몇 시간씩 인생, 신앙, 축구에 관하여, 그리고 비행을 하거나 볼 수 없는 것이 더 나은 초능력인가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풍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전에 본 적이 없는 한 낯선 사람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피곤하고 머리칼은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아마도 노숙인 같았고, 바로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앞을 응시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깨고 싶어서, 손을 뻗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브랜든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거기 앉아서 냉랭하게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침내 불편한 10초 가량의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불쑥 고함을 질렀다: "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나는 너희의 죄 때문에 죽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말은 내가 예상했던 말이 아니었다. 나는 몇 초 동안 충격을 받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저, 난 그냥 당신을 놀렸어요. 내 이름은 지미입니다.”
이상하고도 혼동스러운 대면 후, 우리는 꽤 잘 어울리게 되어 훌륭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며, 나는 지미의 그 말이 실제로 얼마나 사실이었는지 생각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들 중의 하나는 마태오 복음 25장이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나의 보잘 것 없는 형제들 중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예수님은 설명하였다.
지미는 단지 장난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은 심오하고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진실의 소리로 울렸다. 그 소풍 식탁에서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지미는 신비한 의미에서 실제로 예수님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바로 지미 같은 사람들 – 일이 없고, 희망이 없고, 말을 걸 사람이 없는 사람들과 당신을 일치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날 지미는 나에게 중요한 진리를 일별하게 도와주었다. 즉 모든 사람은 그들의 영혼 안에 이마고 데이(Imago Dei)–하느님의 모상을 담고 있다는 진리다. 그렇지만, 지미가 드러낸 것을, 한 작고 생명력이 넘치는 수녀가 훨씬 더 예리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었다.
길의 여인
1948년 여름, 테레사 수녀가 인도 캘커타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숨 막히는 열기가 집으로 되돌아가도록 그를 유혹하였다. 수녀원은 편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수녀는 자기가 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수녀는 길에 누워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여인은 쥐와 개미떼에 반쯤 먹히고 있었다. 거의 죽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여인의 양쪽을 지나갔으나,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작은 알바니아 태생의 수녀는 여인에게 걸어가 조심스럽게 여인을 들어 올리고 마치도 소중한 예술 작품을 다루는 것처럼 여인을 가볍게 흔들며 얼렀다. 수녀는 처음으로 길거리의 사람을 만진 것이다. 수녀는 여인을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그곳의 직원들은 여인을 보았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수녀에게 말했다. 여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녀는 병원 직원들이 여인에게 병상을 줄 때까지 떠나기를 거부했다. 마침내 오랜 언쟁 후, 병원 측은 누그러졌다. 완강한 수녀는 여인이 존엄성을 지니고 세상을 떠나도록 도왔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 길은 계속 되었다.
이 훌륭한 수녀가 거리의 여인을 돕도록 자극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답은 2년 전 한 작은 기차에 있었다. 1946년 9월 10일, 로레토의 테레사 수녀는 연례 피정을 하기 위하여 캘커타에서 다질링으로 가고 있었다. 창가로 히말라야 산맥이 지나는 것을 보면서 수녀는 조용히 기도했다. 갑자기, 수녀는 내면의 호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분명하게 나의 부르심 안에서 어떤 요청을 느꼈어요. 메시지는 매우 선명했습니다. 수도원을 떠나야 했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 살면서 그들을 돕는 일에 나 자신을 봉헌해야 했습니다. 그건 명령이었지요.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순간에, 그리고 그 부르심에 “네”라고 대답하면서, 로레토의 테레사 수녀는 사라졌고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탄생하였다. 1948년 4월 12일, 수녀는 수녀원 바깥에서 살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는 캘커타의 빈민가로 재빨리 향했고, 그곳에서 길의 그 여인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점차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섬기고, 먹이고, 존엄성을 갖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왔다. 수녀의 “부르심 안에 또다른 부르심”은 또한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사랑의 선교회의 목표는 “굶주린 이들, 벌거벗은 이들, 집 없는 이들, 절름발이들, 맹인들, 나환자들, 원하지 않는 사람들,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사회 전체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수녀의 비범한 일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1969년 영국의 리포터인 말콤 먹거리지가 <하느님께 아름다운 것을>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마더 데레사를 개략적으로 소개하였다(후에 같은 이름의 책이 발간되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강인한 의지와 풍요로운 마음을 지닌 성인과 사랑에 빠질 지경까지 세계를 사로잡았다. 1979년에 마더 데레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999년에 미국인들은 그를 “20세기의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뽑았다.
살아생전에 마더 데레사만큼 전 세계적인 대중성을 얻은 성인들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더 데레사가 1997년 죽기 수십 년 전부터 성인이라고 칭송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2003년 10월 19일에 “캘커타의 데레사 복녀”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했고, 2016년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어떤 근거들을 주어야 할까?
모든 사람은, 그의 생명이 자궁에 잉태되는 첫 번째 순간부터 침범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이 그 사람을 원하셨고, 사랑하셨고, 만드셨고 구속하셨으며 그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존엄성이 오로지 개인들의 성공과 성취에 근거한다면, 취약하고, 병들거나 무력한 사람들은 아무런 존엄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존엄성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신 결과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바라보고 마치도 그가 세상에서 유일한 피조물인 것처럼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 심지어 가장 보잘 것 없는 아담의 자녀까지도 존중하시므로, 그 사람은 무한한 가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무한한 가치를 파괴시킬 수 없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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