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음, 내가 몸을 괴롭히고 혹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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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음, 내가 몸을 괴롭히고 혹사하는 이유
  • 이슬
  • 승인 2021.11.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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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칼럼-살면서 한 마디
그림=이슬
그림=이슬

그동안 일하던 식당을 나올 때 쯤, 사람들은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곧 나아질 것이고 채워질 것이라는, 기약 없이 흘리는 영양사의 말에도 희망을 가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몇 번씩 애를 써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는 결국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화와 욕을 퍼붓는다. 그것이 꼭 우리를 봐달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며칠만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들에 부들거리다가 사람들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라고 포기해 버린다. 그렇게 신뢰감이 무너진 사람들은 그 때부터 자신의 실속만을 찾기 시작한다. 제 일과 남의 일을 구분 짓고, 점점 더 예민해져 서로 책임을 묻고 서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금이 가고 있다.

회사에 지금의 힘든 상황을 수정해달라는 요청과 몇 번의 인력 충원 요구를 했었다. 그럼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그들은 결국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대거 퇴사하겠다는 말을 시작하자 조금은 꿈틀거리는 듯 했다. 처음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겠다고 했다. 직원들을 한 사람씩 면담하기 시작하면서 곧 알게 되었다. 기업에서 가장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중간 관리자일 거라고.

중간관리자들은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직접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을 시켜야 하고, 원칙과 절차를 중요시해야 했으며 어떤 격한 상황이 일어나도 품위를 지켜야 했다. 이 사람들은 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최선을 다했어, 하고 말하고 노동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또 역시 나도 최선을 다했어, 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이상한 능력이 있는 듯 했는데, 평상시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을 연습하는 사람들처럼, 분명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그 이야기들 끝마다 돌아오는 말은 단 한 가지뿐이였다.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거다. 자기도 최선을 다했다는 거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들이 품위를 유지하면서 꺼내는 말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 같아서 높은 담벼락 아래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여태껏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고 나 따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도리어 내 쪽에서 몇 번을 설명해도 들리지 않는 건 처음부터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내내 전을 구워내느라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범벅이 된 얼굴이 배식대 앞에 선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 얼굴은 방긋방긋 웃으며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를 녹음기처럼 소리 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힘이 곤두박질하는 걸 느낀다. 기껏 여기까지인가. 기껏 몇 개월 남짓으로 한계에 다다라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절망하기도 한다.

며칠만에 다시 일이 추가되었고 의지하던 어르신조차 나가게 되었고 요구사항들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동안 견뎌왔던 힘이 다 소진 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들은 이 시간 안에 이 시급으로 이 일들을 한 사람이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쯤에 나는 하나씩 고장 나던 몸이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었던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있고자 했을까.

기름이 튀어 올라 팔을 덴 곳에 수포가 차오르던 날에 나는 이상하게 그것을 보면서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히루종일 가스불 속에 있다 보니 기관지 염증이 심해져 기침을 해대며 몸살을 앓아내던 밤에도, 발뒤꿈치가 아파 절뚝거리며 걷던 날들에도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마다 느끼던 팔의 통증에도 어디에 부딪혔나 알 수 없게 들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도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결국 데인 팔이야 그냥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미련하게 버티다가, 그 주변으로 알레르기가 번지면서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로 바로 병원으로 직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내몸을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를. 아프다가 아프다가 일찍 떠나간 동생을 생각하면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몸을 괴롭히고 혹사하는 것이 일찍 떠나보낸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죄스러움과 어떤 노여움에 대한 갚음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안녕하시고, 뭐를 그렇게 맛있게 먹길 바라며, 뭐가 그렇게 고마운 건지,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어깻쭉지가 아프도록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하필 내가 일하는 여기가 병원 직원 식당일 줄이야.

동생이 갑작스럽게 아프고 급하게 수술을 하고 또 다시 재발하여 마지막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까지 병원 안에서 고생하는 모든 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동생을 대신해서 그렇게 하염없이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같은 병원은 아니더라도 밥하는 일로,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로 여기 병원 사람들에게 대신 그 고마움을 갚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고 보니 동생이 아프기 시작하고 우리 곁에 머물다간 시간도 딱 이만큼의 시간이였네.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런 것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면, 마지막으로 일하는 그 날까지 조금 더 많이 더 정성스럽게 인사하고 조금 더 상냥하게 이 시간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한 생각으로 깊숙이 묻으려 했던 뜨거운 것이 마구 비집고 올라온다. 또 이내 퍼질러 앉아서는 훌쩍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한마디 거들어 준다. "그거랑 그거는 상관이 없는 거거든요!" 순간 너무 현실적인 답안에 터져 나온 웃음처럼, 내 안에 파묻혔던 내 감정에서 쑥 빠져나온다.

사람들은 가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기도 한다. 정당하지 않은 일의 양과 보수임을 알면서도 세상에 빚을 진 사람처럼 무언가를 갚아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모질게도 몸을 훈련시키나 보다. 스스로 슬픔에 슬픔을 더 엮어 가는 줄도 모르고. 기어이 스스로가 죄인임을 자처하며 벌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얼마간, 어쩌면 평생 동안도 그 속에 자신을 가두고 옭아매어 위안을 얻으려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너무 외롭고, 외로워서 안쓰럽다.

그 날 꿈속에서 다시 동생을 만났다. 아프다고 자꾸만 넘어지고 힘들어 하는 모습만 보이더니, 그 날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있는 곳에 불쑥 찾아왔다. 갑자기 들어 온 녀석에게 놀라서는 어떻게 된 거냐고, 괜찮으냐고 물으니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제는 병이 진짜로 다 나았다고 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화들짝 깨어났다. 꿈인지 생시인지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니 그놈이 ‘누나야 고만 됐으.’ 거기까지도 충분하다고 정말 애썼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내 무의식이 일으킨 꿈이였나 아니면 그 놈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었나. 환하고 편안해진 얼굴을 보니 이제 동생은 정말 좋은 곳에 도착한 것 같다. 가까이 볼 수는 없지만 가끔 우리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떤 말들을 전하고 있고 아직도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녀석을 보낸지 벌써 일 년이다..

 

이슬 비아
세상에 온 의미를 찾아가는 촌스러운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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