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박영근
산길 외로움에 익어
청승으로 피어난 제비꽃
홀로 눈물 삭인 품이
시집살이 한 삼 년짜리 풋며늘아기
옷고름 같은 떨기들예전엔 그저 툭 툭 차버리고 갔었는데
헤어스름 떨어지는 허름한 산길에서
웬일로 마음 밑바닥에 피어난다.
햇살이 고맙고
바람이 반가운
제비꽃그토록 큰 것만 보려
애태우던 세월 한 그늘에
숨어 자라다
못 견디게 솟구치는 울음의 난바닥에
어쩌면 새살처럼 돋는 것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일어나 가자.”(요한 14,27-31)
힘에 의한 평화, 로마의 평화
유다 반란군을 지휘하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로마의 군사력에 놀라 전향한 뒤 유다의 저항군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배자를 경멸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계가 복종하는 지배자를 경멸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로마의 지배에 대항했던 나라가 그 어디에 있는가? 도처에서 그들은 행복을 누리고 있으며, 세계 지배를 한 민족에게서 다른 민족에게 옮겨가도록 만드시는 하느님 또한 지금은 이탈리아 편에 서 계신다. 사실상 강자에게 복종해야 하며, 가장 강한 병기를 사용하는 자만이 권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동물이나 인간에게나 가장 강력한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강자의 법을 하느님과 연관시킬 만큼 로마의 힘을 찬양했다. 따라서 유다 반란군은 ‘로마뿐 아니라 하느님과도 전쟁을’ 치르는 격이 되었다. 우리가 힘을 선택하는 순간에 하느님의 진리는 즉시 정반대로 왜곡되는 것이다. 그 요세푸스는 70년 전쟁 당시의 모습을 “유다인들은 6시간 동안 저항했다. 그러나 병사들이 전멸하자 온 민족이 집과 거리에서 학살되었다. 여인들과 노예가 된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남자가 생명을 잃었다.”고 묘사했다. 이를 신의 질서, 힘의 질서를 거부한 결과라고 보았던 모양이다.
로마의 평화는 이러한 군사력으로 획득된 것이었다. 로마의 동전은 그 평화의 실제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동전에는 완전무장한 채 왼쪽 어깨에 군기를 메고 오른쪽 어깨에는 승리의 여신을 짊어지고 있는 전쟁신 마르스(Mars) 의 모습과 ‘승리자 마르스(Mars Victor)’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초기 옥타비아누스 시대의 은화는 앞면에 평화의 뿔을 가진 여신이, 뒷면에는 군복을 입고 창을 든 옥타비아누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같은 시대의 드라크마 4각 은화에는 한 손으로 평화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평화의 여신이 검 위에 서 있다.
이 평화는 ‘무장된 평화’ 이며, 이 평화를 쟁취한 군단은 ‘평화군단’ 이었다. 더구나 트라야누스의 동전에는 이 여신상이 오른발로 피정복자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 로마가 가져온 평화는 로마인에게는 승리의 평화이지만, 피정복자에게는 굴욕의 평화이다. 한편 티투스 은화의 중앙에는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고 뒤편 왼쪽에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통곡하는 유다 여인이 서 있으며, 앞면 오른쪽에는 손을 등뒤로 묶인 채 머리를 돌려 아내를 쳐다보는 유다인 포로가 새겨져 있다. 이를 보는 피정복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실제로 로마의 총사령관 도미티우스는 다른 민족을 잔혹하게 다스렸다. ‘간청하는 자에게는 동정으로, 도망하는 자에게는 신속하게, 은신처에 있는 자에게는 엄격하게!’ 처신했다. 그는 저항군이 숨어 있는 동굴 입구와 출구를 덤불과 관목더미로 막고, 여기에 불을 붙여 연기를 안으로 밀어넣어서 질식시키곤 했다.
살아 있는 신, 황제에 대한 숭배
세네카의 글을 보면, 네로 황제는 자신을 살아 있는 신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만이 기쁨을 느끼고, 지상에서 신적인 직책을 수행하는 자로 선택되었는가? 나는 민족의 생사를 결정하는 주(主)인가? 각 사람의 운명과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내 손에 달렸는가? 나의 결정이 백성들과 도시에 기쁨의 원인이 되는가? 나의 자애로운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는가? 나의 평화가 통제하는 수천의 검사들은 나의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가? 어느 민족을 멸망시켜야 하고, 어느 민족을 이주시켜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 자유권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서 빼앗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왕을 노예로 삼고, 왕에게 어느 수행원을 딸려주어야 하는지, 어느 도시를 멸망시키고 어느 도시를 존속시켜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나의 판결이 결정하는가?”
크리텐젠은 “황제는 신이 아닐지라도 그의 인격 안에는 신과 같은 힘이 들어 있다. 그는 자신의 신과 같은 힘을 통해 신과 같은 선행을 인간에게 전해준다. 신의 평화(pax deorum)의 결과인 승리 · 평화 · 행복은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에 주어졌다. 그는 인격적으로는 신이 아닐지라도 행위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신” 이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황제를 숭배하고, 황제의 안녕을 위해 공식적으로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다스릴 때부터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록했다. “원로원은 집정관과 사제를 통해 5년마다 나의 안녕을 위해 기원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들 또한 모든 신전에서 나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한편 리옹에는 로마 여신과 아우구스투스를 위한 제단이 있었는데, 황제숭배는 ‘제국에 속해 있다는 증거와 황제 및 로마에 대한 충성의 상징’ 이었다. 로마인들은 황제의 안녕에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 달려있다고 믿었다. 황제는 로마 제국을 대표했다. 그러므로 황제의 무사함을 비는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반역행위에 해당된다.
플리니우스는 총독시절, 그리스도인들을 재판하면서 황제 및 로마의 신들을 위한 종교의식을 행하라고 명령함으로써 로마 제국에 대한 그들의 정치적 충성심을 검증했다. 플리니우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진정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물어 그렇다고 말한 이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면 반역죄로 즉각 사형에 처하곤 했다.
제국 밖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힘에 의한 로마의 평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비판가 첼수스(Celsus) 는 호교론자들보다 더욱 분명하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말한다. 따로 동아리를 만들고 일반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당파주의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하느님과 로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거나 통치자들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남자가 토가(로마 시대의 긴 겉옷)를 입는 것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며,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는 것마저도 포기한다.”
로마 사회에 어울리지 않고 낯설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였던 첼수스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황제를 받들라. 그분과 함께 법을 수호하는 일에 참여하라. 시민으로서 의무들이나 병역의무들을 무시하는 일을 중단하라. 법을 보호하고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적인 일들에서 당신의 몫을 감당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곧 로마의 질서에 순응하며 조용히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의 평화 안에서 혜택을 받고 살면서, 로마의 위대함에 흠뻑 젖어 있던 첼수스는 그리스도교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질서 바깥에서 새로운 평화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으며, 특히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느꼈다. 특히 과부들이나 고아와 노인과 병자들,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과 실업자들과 옥에 갇힌 이들과 쫓겨난 사람들, 순례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곤궁에 빠진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각별한 도움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상호 협력체계는 자발적인 기부에 바탕한 것이다.
그래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라고 말했다.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도망가지 않고 남아서 신자 비신자 가릴 것 없이 병자들을 돌보았다. 이는 로마의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이었다. 이를 두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께서 곳곳에 공동체를 일으키시어 미신과 무례함과 불의에 젖은 인간들의 공동체들에 대항하도록 하셨다. 사실 그런 따위의 사람들이 어디서나 도시 공동체들의 시민대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스승과 교육자 노릇을 하는 하느님의 공동체들은 뭇 겨레의 공동체에 비하여 세상 안에서 천상 등불처럼 그들 속에서 낯선 사람들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황제숭배와 마찬가지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체적으로 또는 근본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검투경기나 야수싸움을 구경하러 원형 경기장에 가서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으며, 군대행진을 구경하러 거리로 몰려나오지도 않았다. 로마 교회의 히폴리투스의 교령에 따르면 군인된 자가 세례를 받으면 그 사람은 사형을 집행해서도 안 되고 군대의 선서도 행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예비자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원해서 군대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서 축출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했듯이, ‘하느님과 인간의 맹기(盟旗) 아래, 그리스도와 악마의 군기(軍旗) 아래, 빛과 어둠의 병영(兵營) 안에 있다는 것은 서로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동일한 인간이 그리스도와 악마라는 양자에게 의무를 짊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군대와 하느님은 서로 반대편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전쟁을 도발하고 맹약을 파기하며 평화를 교란하면서 누구에게나 눈에 띄게 전장으로 출정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통치자들을 더 도와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모든 악령들을 우리 교회는 우리의 기도로써 멸살하노라.”고 선언했다.
예수의 평화
그리스도는 일찍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요한 14,27a)라고 말했다. 아마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잘 기억했던 모양이다. 이미 예수님은 “이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 (14,30) 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적중했고,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로마의 평화를 거부한 대가로 십자가 죽음을 선사했다. 그러므로 로마의 평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 (14,31a) 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목숨을 헌신짝과 같이 버리고서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란 곧 세상의 질서에 맞추어 순응하며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세상에 거슬러 살기로 작정하는 힘겨운 선택을 요청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14,27b) 그분께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분 말씀대로 우리도 “일어나 가자.” (14,31b)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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