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아우님의 철학
-김지하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세상이 죄입네다. (최제우)잡혀도 좋고
안 잡히면 더욱 좋고때리면 맞고
쫓아오면 달아나고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못 나가면 좋고
나가면 더욱좋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요한 13,21-26)
나와 함께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신하였다
예수님을 팔아 넘길 자는 공동체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사탄은 활동하며 복음적 진실을 가리기 위해 분주하다. 그가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일수록 그 악영향은 더욱 크며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복음적 식별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가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어렵지만 때로는 단순하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그가 누구인지 은밀히 알려주신다. “스승이며 주인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너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한 13,14-18) 즉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려는 사람, 봉사하는데 만족할 줄 알고 지배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곧 선택받은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남을 지배하려 들고, 스스로 진리를 독점하려 들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려 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백성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두고 안타까워하시며 번민하셨다.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13,21)고 말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그가 바로 가리옷 사람 유다였다고 전한다. 실제 유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그가 제자 공동체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었다는 점뿐이다. 그 돈은 공동체의 운영비와 빈민구제를 위해 사용할 요량으로 비축해 둔 것이었다. “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던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유다는 아마도 돈과 관련되어 상징화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돈은 세속 권력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가 예수님을 배신할 사람으로 지목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종교가 돈맛을 알면 그순간 종교는 짠맛과 그 빛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종교가 권력에 맛들이면 서로 섬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정신은 죽어버린다. 그 순간에 영혼은 사탄에게 팔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무는 ‘유다’를 식별하는 능력은 교회가 복음적 진실을 간직하기 위해서 언제나 요청된다.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반대할 사람도 있다. 같은 식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고 마시는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팔아 넘길 자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팔아서 권력과 부유함과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을 존경할 수는 없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에서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게 필요한 시대이다. 교회 안에서도 권력은 복음적 삶을 질식시킬 수 있다. 교회 역시 사회의 일부이기에 사회가 부패하면 교회에도 부패한 냄새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생동하는 성령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서 “주님, 그게 누굽니까?”하고 묻기 전에 혹시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닌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영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부패한 영혼을 식별할 능력이 주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회를 분열시키는가?
교회 역사에서는 때때로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교회가 둘로 쪼개지기도 하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누가 복음의 깃발을 쥐고 있었는지 판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라틴아메리카 교회 역시 처음부터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은 인디오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였고,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러한 학살을 정당하다고 인정해 주었다. 아직 세례받지 않은 사람은 인격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므로 결국 교회의 분열은 교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생긴다. 교회가 민중의 종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교회가 권력자를 대변하고 제도적으로 살아 남는 데 관심을 갖는다면 기존체제를 보존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또한 교회가 지배세력을 날카롭게 비판할 경우, 교회의 대표자들에 대한 박해를 부를 뿐 아니라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및 방송국 같은 제도적인 구조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회적 특권마저 빼앗길 위험이 많다. 교회가 제대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는 수많은 민중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서구 근대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숱한 노동자들이 교회를 떠나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적용하여 개발독재를 반대하고, 민중의 해방을 분명하게 지향했던 것은 메데인 주교회의(1968년)였다. 그 당시 주교들은 교회가 민중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성령의 바람이 대서양을 건너와 가난한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생기를 북돋아 주었던 것이다. 교회는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나 평신도 중심의 교회 밑바닥 공동체를 활성화시켰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해방신학이 나타났고, 교회는 민중사목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든 주교들이 이런 뜻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성령의 바람을 돌이키려는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군부독재 세력도 다국적 기업도 아니었다. 바로 교회 안에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 사무총장인 콜롬비아의 로페스 트루히요 대주교, 벨기에 예수회의 로제 베케망스 신부,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담당 교황청 위원회 의장이었던 세바스티아노 바기오 추기경이 이런 혐의를 받을 만했다. 트루히요 대주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누구든지 공산주의자라고 대중 앞에서 격렬하게 비난하였고 해방신학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1978년 11개 라틴아메리카 나라에 우익 전체주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메데인 주교회의를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미 늙고 병들었으며, 한때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었던 ⌜민족들의 발전⌟과 같은 혁신적인 교황회칙은 더이상 발표되지 않았다.
또한 교황청 관리들은 브라질 교회의 민주적 수평주의를 걱정했다.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2000년에는 교황청이 브라질로 옮겨질 것이라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하였다. 가톨릭 신자의 반 이상이 라틴아메리카에 살고, 그 중에서도 브라질 신자수가 가장 많은 데다가 이 교회가 너무 앞서가기 때문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78년 교황선거에서 브라질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알로이시오 로샤이더 추기경이 교황후보에 올라가기도 했다.
푸에블라 녹색 작전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사회적 · 교회적으로 급진화되는 것을 걱정했던 고위성직자들은 먼저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사무국을 장악한 뒤에, 1979년에 개최될 푸에블라 주교회의를 위한 치밀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트루히요 대주교는 베케망스 신부의 도움을 얻어서 ⌜녹색 책⌟이라고 알려진 214쪽에 달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 문서는 메데인 주교회의가 채택한 사회정의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부정하였다. 식민지 시대 교회의 숙명론적 체념을 가르치는 메시지로 가난이라는 중심과제를 회피하였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은 내세를 바라면서 다시금 비참한 생활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비록 모든 것을 빼앗기는 때일지라도 그들은 하느님과 신앙을 풍성하게 소유하게 되는데, 하느님과 신앙 덕택으로 그들은 어떤 인간의 고통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느님 왕국의 인내와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서의 입장이 너무나 편협한 것이었기 때문에 배포되자마자 여기저기서 불만과 항의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에서는 이 문서를 복사해서 보고 토론을 거쳐 수많은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뿐 아니라 대학생 단체 · 노동조합 · 농민연합 · 여성운동 · 신구교 연합단체 등이 모두 논쟁에 참여하였다. 결국 이들은 가난의 원인이 군부의 탄압과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차별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얻었다.
나중에 이 비판적 견해들은 ⌜푸에블라 문헌⌟ 뒤에 1,258쪽에 달하는 부록으로 첨부되었다. 결국 ⌜녹색 책⌟에 대한 이러한 광범한 비판에 응답하여 유력한 주교들이 보고타에 다시 모여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했던 로샤이더 추기경의 지도로 다시 푸에블라 실무 문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메데인 회의에서 가졌던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는 태도를 재천명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만들어진 문서에 트루히요 대주교는 15개의 어울리지 않는 구태의연한 주석을 달아놓았다.
또한 181명의 추가 대표를 임명할 수 있는 권리를 트루히요 대주교가 교황청에서 얻어냈다. 이들 중에는 콜롬비아 육군준장인 두퀘 추기경과 같은 군종 성직자들이 섞여 있었으며, 공식 초청된 평신도 가운데는 기업과 군부를 대표하는 이들도 끼여 있었다. 물론 진보적 사회단체는 전혀 초대받지 못했다. 해방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들은 주교들의 보좌관 자격으로 비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와 호세 콤블린, 세군도 갈릴레아 등이 그들이다. 그마저도 트루히요 대주교는 주교들을 팔라폭시아노 신학교의 높은 담장에 가두어 놓고, 신학자들과 접촉을 막으려 했다(페니러녹스, ⌜민중의 외침⌟, 분도출판사, 421-460쪽 참조).
누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사랑하는가?
그러나 성령의 바람을 완전히 막아낼만한 사람은 없었다. 푸에블라 회의 개막 성명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의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 가운데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제시해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의 특권을 끈질기게 유지하려고 드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짓밟히고 있다고 느껴 자신들의 생존과 권리 확보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때에, 우리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향상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푸에블라 문헌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가부장적 시혜의 대상이 아니며, 탄압의 중요한 희생자들로서 역사를 바꾸어 나갈 담당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적인 사회를 세우려는 투쟁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동반자 또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교와 사제, 수녀들은 복음의 계율에 따라 살고, 정부와 정치운동으로부터 독자성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푸에블라 회의는 명백하게 메데인 회의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것은 아니었으며, 여전히 트루히요 대주교의 발언이 득세하였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피살 위협을 받아오던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만약 주교들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지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군부가 ‘나의 교회를 죽일 것’이라며 울먹이면서 주교회의에서 엘살바도르 정부에 대하여 비판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11개 나라에서 온 추기경과 주교 40명이 서명했을 뿐 대다수의 주교들은 침묵하였다. 결국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3월 산살바도르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총격을 당하고 쓰러졌다.
진정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사랑하는 이는 누구였는가? 로메로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주교가 되었을 때 사제들은 피살당하고 소추당하며 고문당했다. 나는 나 자신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교회의 봉사를 받아야 할 민중이 나에게 자신들을 지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다.” 로메로 대주교는 어느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민중의 ‘목소리 없는 목소리’였다.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예언했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나는 다시 엘살바도르 민중 속에서 솟아 오를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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