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나는 이제 일주일에 다섯 번 일꾼의 집 당번을 하고 있다. 매번 5시간씩 당번일을 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스프를 끓이는 사람과 함께 매일 세시간 동안 스프를 나누어주게 되면 실제로 당번으로서 두 시간을 더 일해야 하는 셈이다. 할 일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짧아서 동동거리게 되는데 실상 자기가 맡은 시간보다 항상 더 길게 일하는 셈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이나 열흘쯤 묵으면서 아침당번을 맡아줄 때에는 겨우 숨을 좀 돌리게 된다. 오늘 다섯명의 수녀들이 찾아와 일주일간 머물 것이라 했다. 그들이 일하러 왔을 때 나는 일층에 있었고 그래서 지하로 내려가 식탁이 치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 곁에 앉았다. 윗층에서 열명이 올라오라고 했을 때 서로 먼저 올라 가느라고 난투가 벌어졌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싸움을 그만 두지 않으면 아무도 스프를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의자에 물러앉아 내 말을 흉내내었다.
6개월동안 매일 아침 이런 남녀들을 보고 난 후에도 내가 이곳에 익숙해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그 장면과 싼 포도주 냄새, 낡아빠진 옷들 그리고 얼룩은 친근하다. 그들의 현실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충격은 이미 낡아버렸어도, 그 친근감은 이 지하실을 채우고 있는 절망감을 전혀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바우어리의 사람들은 단순히 가난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가난은 경제적인 현실을 표현한다. 그런데 바우어리 사람들은 오히려 막장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존엄성과 희망을 빼앗기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에서 사는 것이며, 사랑이나 따뜻함이 없는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실에서 이 사람들과 앉아있을 때마다 나는 그들의 상처받고 지친 얼굴 모습들을 보면서 20세기 전체를 생각하곤 하였다. 20세기는 결국, 가장 최악의 잔인성이 발휘된 시기였으며 모든 인류를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시기였다. 이 지하실의 얼굴들은 아마 인간의 모습을 한 우리세기에 대한 투영일 것이다.
마크 H. 엘리스 /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의 저자. 엘리스는 미국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유다학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다학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그는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쓰고 편집했다. 그의 대표작은 <해방의 유다신학>, <거룩하지 않은 동맹>, <우리시대의 종교와 포악성>, <예언의 미래: 고대 이스라엘 지혜의 재현> 등이 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극우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팔레스티나와의 평화로운 연대에서 찾고 있다. 최근에는 <불타는 아이들: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유대적 관점>(2014), <추방과 예언: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이미지>(2015)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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